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아트 | 리뷰

아이들은 꿈을 찍는다

2011-02-01


어린아이들의 미소는 힘이 세다. 자기 키만한 물동이를 이고 먼 길을 걷거나 어린 힘에 부치는 밭일을 하더라도 그들은 해맑게 웃을 줄 안다. 어린아이들이 느끼는 행복의 척도가 어른의 그것과는 분명 다르기 때문일 거다. 포토그래퍼 김영중이 잠비아와 몽골에서 만난 아이들 역시 그러했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이른바 ‘문명’이 정의하는 ‘가진 것’이 없어도, 그들은 동시대의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웃고, 울고, 공부하고, 논다. 포토그래퍼 김영중과 차풍 신부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꿈꾸는 카메라’는 그렇게 예쁜 미소를 가진 아이들에 대한 기억할만한 기록이다.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사진제공 │ 꿈꾸는 카메라(cumca.co.kr)

포토그래퍼 김영중은 IMF 전까지 소위 ‘잘 나가는’ 광고 사진작가였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미녀들만을 피사체로 담아온 그는 금융위기를 계기로 이화여대 앞에 조그마한 사진관을 차리게 된다.

“광고사진을 찍을 때도 돈을 많이 벌어서 좋았지 그리 즐겁지는 않았어요. 광고를 그만 두고 난 후 사진을 안 할 수는 없어서 일반인을 상대로 한 샵을 냈지요. 그때 증명사진을 찍으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들’의 얼굴을 보기 시작했어요. 그 작업이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빈티지 사진작가에요. 인화지와 필름도 직접 만들어서 쓰고 자유롭게 사진작업을 했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제가 생각하는 사진에 대한 생각들을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꿈꾸는 카메라는 이런 그의 사진작업으로부터 태동했다. 사진가가 ‘찍고’ 일반인이 ‘보는’ 수직적인 구조의 사진작업이 아닌 수평적인 작업을 고민해오던 김영중은 어느 날, 태백의 어느 학교의 아이들과 함께 그들의 시선이 담긴 사진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도시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 아닌, 시골아이들과의 작업은 그에게 ‘시각은 심성’이라는 확고한 확신을 심어주었다고.

“꿈꾸는 카메라를 함께 하고 있는 차풍 신부는 제 제자이기도 해요. 그 분이 어느 날 동기신부를 만나러 잠비아에 가는데 함께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쪽에서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가져왔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차풍 신부가 이 참에 제가 하던 작업을 그 곳에서 진행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묻더군요. 꿈꾸는 카메라는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들은 그 곳에 있는 이천 명의 아이들에게 스물 다섯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일회용 카메라를 나누어주었다. 아이들이 찍은 총 4만 5천 장의 사진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들의 작업을 현상하는 일이 지난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 후반작업에는 초등학생, 선생님, 사진 전문가 등의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했고 그들이 골라낸 사진들 중에서 좋은 사진을 선별해 지금까지 17회 정도의 전시회를 진행했다.

“특별히 배우지 않았다고 아이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기회가 없을 뿐이지요. 문화가 없을 뿐이지 문명에서 뒤쳐져 있지 않은 거에요. 사진의 구도는 그들의 시선과 심성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구도를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 거죠. 사진을 보면 정말 옷들을 깨끗하게 입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입고 다니는 애들이 없거든요? 자신들이 가진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선 거죠. 지금까지 아프리카 사진전이라고 하면 슬프고 비참한 사진들, 희망이 없는 절망스러운 모습들밖에 없었어요. 철저하게 타인들의 시선으로만 바라본 거죠. 사실, 거기 사는 애들은 그냥 굉장히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가요. 사진에도 자신이 생각하는 나름의 최상을 담아준 거고요. 어떤 게 진짜 아프리카일까요?”

김영중은 소박하게 시작한 이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끌어나가려고 생각 중이다. 그간 잠비아에서 몽골로 행선지를 확장해나가면서 그들이 협찬 받은 것은 개인의 책 협찬을 비롯한 아티스트들의 재능기부가 전부였다. 이제 그들은 아이들에게 하나의 문화를 선물해주는 것을 넘어서서 일종의 시스템을 제공하고자 한다. 기업과의 다양한 프로모션에 대한 고민이 그 시작이다.

“단순하게 빈곤지역에 빵이나 약을 주는 것보다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개인의 경우 보지 않는 영어도서를 기부해 주신다던가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는 방법이 있겠고, 기업의 경우는 기업의 브랜드나 네트워킹을 기부해주실 수 있겠죠. 작년, 모 업체와는 아이들의 사진을 달력으로 만들어 그 달력을 하나 사면 아이들에게 줄 카메라가 하나 기부되는 형식의 논의를 진행한 적이 있었어요. 아이들의 사진 혹은 우리와 함께 하는 아티스트들의 아트웍을 기반으로 기업과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사진은 사실 무서운 도구이다. 찍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피사체가 왜곡되고, 그 왜곡된 진실은 고스란히 보는 사람의 시야로 전달된다. 하지만 이 말을 바꿔 생각해보자. 사진이란 찍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아름답고 희망적인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는, 소중한 매체가 될 수도 있을 테니.

“여기 이 사진들을 보세요. 모두 한창 볕이 좋을 오후 두 시경에 찍힌 사진이에요. 사실 이 시간은 너무 더워서 새도 안 날아다닐 시간이거든요. 이 시간에 나와서 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그 아이들이 카메라 앞에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세바스티앙 살가도는 사진을 통해 소외 받은 계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베네통의 사진은 정확하고 치밀합니다. 아담스의 사진은 학자답고요. 이렇듯 작가들마다 미학적인 기준들이 뚜렷하듯이, 4만 5천장의 잠비아 아이들 사진을 보면서도 우리가 뭔가를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은 불쌍한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입니다. 저희 전시회에 오신 분들은 굳이 얘기를 안 해도 같은 것을 느끼고 가시는 것 같아요. 좋은 카메라가 좋은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25회의 기회 앞에 그 아이들은 최선을 다했지요.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그런 점인 것 같습니다.”

facebook twitter

이은정
잡지디자이너 과심은 여러분야에 관심은 많으나 노력은 부족함 디자인계에 정보를 알고싶어함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