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디지털영상 | 리뷰

아련하게 물들은 디지털 시네마, “콜드 마운틴(Cold Mountain)”

2004-02-09




바라 본 인상이 하도 강렬해 시간이 흘러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을 때 흔히 “뇌리에 박혀 잊혀지지를 않는다”라는 말로 표현하고는 한다.

해지는 저녁 노을이 그려내는 오렌지 빛일 수도 있고 폭풍에 일렁이는 파도가 만들어내는 검푸른 빛의 인상일 수도 있지만 흔하지 않은 만큼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경험했다 하더라도 마음대로 아무 때나 꺼내어 기억해낼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닌데...

얼마 전 관람한 (국내에서는 2월 20일 개봉 예정) 안소니 밍겔라(Anthony Minghella)의 “콜드 마운틴(Cold Mountain)”에 펼쳐진 존 실(John Seale)의 시네마토그래피가 나의 기억 속에 꼭꼭 숨어 있는 그 뇌리에 박힌 인상을 눈 앞에다 그대로 펼쳐 내어 감탄에 감탄을 더하게 만들고 있다.

스토리 때문도 아니었고 배우들의 연기 때문도 아니었다. 순수한 색채적 인상이 언젠가 경험해 내 머리 속에 기억되어 있는 그 인상과 꼭 일치하는 데서 오는 그런 감동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멋지게 오면서 재삼 아카데미 상에 빛나는 DP(Director of Photography) 존 실의 솜씨에 감탄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콜드 마운틴”의 이 색채 인상성이 컴퓨터 색보정을 통해 이루어낸 디지털 필름 마스터링(Digital Film Mastering)의 결과라고 한다. 존 실의 카메라 워크 못지 않게 컴퓨터의 역할이 컸다는 얘기가 되는데...

프레임스토어씨에프씨 (www.framestore-cfc.com)의 디지털 컬러리스트 아담 글라스만(Adam Glasman)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디지털 필름 마스터링. 도데체 무엇이며 어떻게 이루어냈는지 그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디지털 필름 마스터링 (Digital Film Mastering)은 10여년 전 코닥 시네온(Cineon) 및 퀀텔의 도미노(Domino) 시스템이 개발되어 필름 스캐너를 통한 이펙츠 샷이 가능해지면서 탄생한 용어로 디지털 인터미디어트: DI (Digital Intermediate)라고도 부른다.

오래된 영화의 복구 등을 비롯해 여러 용도로 사용되고 있지만 필름 네거티브를 스캔해 불러들여 필름 색상의 보정과 교정을 하는 컬러 그레이딩이 주된 기능이기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디지털 컬러 그레이딩 (Digital Color Grading) 자체를 가리키는 뜻으로도 혼용되고 있으며 마스터 그레이딩(Master Grading), 컬러 그레이딩(Color Grading)으로도 불리우고 있다.

DI는 촬영된 필름 네거티브를 스캔해 2K (2048X1556) 이미지 상태로 컴퓨터로 불러들이면서 시작된다. 컴퓨터로 불러들여져 정보화되었다는 의미는 모니터를 통해 필름을 볼 수 있음을 의미하며 적절한 프로그램으로 마우스나 키보드, 태블릿 등의 주변기기를 이용해 색상의 교정 및 수정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그림2 참고]

전통적인 필름 그레이딩이 화학 약품과 빛을 이용해 Red, Green, Blue와 같은 색조를 입히거나 밀도 조절을 통한 명암을 조정하는 일에 국한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특정 프레임, 특정 부분, 특정 색상 만을 마음대로 선택해 교정 및 수정하는 것이 가능한 DI는 컬러리스트나 시네마토그래퍼의 표현의 폭을 그야말로 무한대로 넓히고 있는 셈이다.

DI는 수정된 프레임들을 다시 스캔해 필름 네거티브로 인쇄하면서 끝나는데 전통적인 그레이딩에 비해 드는 비용이 한 영화당 12만달러에서 25만달러로 만만치 않은데다 소요되는 시간이 많게는 몇개월까지 든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얼마나 정확하고 깨끗하게 스캔해 낼 수 있는냐의 문제, 모니터의 디지털 색상이 프로젝트된 영화의 색상과 얼마나 일치하느냐의 문제, 응용 프로그램의 인터페이스 및 기능과 관련된 문제, 나아가 16mm, 35mm, 65mm 등의 필름 포맷 지원과 관련된 문제 등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광고 및 뮤직비디오 등의 비주얼이펙츠나 영화의 타이틀 및 예고편을 편집하는데 국한된 기술이었던 DI가 영화 제작의 주요 수단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시기는 영화 전체를 그레이딩 한 영화 “플레젠트빌(1998)”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이 후 영화 제작의 필수 신기술로 급부상해 21세기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메이저급 영화의 경우만 들어도 “반지의제왕(2001-2003)”의 70%, “아멜리에(2001)”의 100%를 포함해 영화 전체를 컴퓨터 그레이딩 하는 경우만도 수십 편에 달할 정도로 널리 이용되는 테크닉이 되었다
[그림 3, 그림 4 참고]


DI를 거친 필름 정보는 그대로 광고, 타이틀, 예고편, DVD 등에 그대로 이용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영화 제작자들이 전통적인 그레이딩 방식보다는 DI를 선호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극장용 필름과는 별도로 거쳐야 하는 여러가지 포맷용 제작 과정을 단 한번의 DI로 해결할 수 있는 까닭이다.

DI는 2D, 3D, 라이브액션 및 CG 등으로 많게는 수백개의 레이어를 가진 프레임 각각을 스크린에 투사되는 완성된 상태로서 거의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해 주어 이펙츠 영화 제작에 있어 특히 효과적인 도구로 인정되고 있다. 이 특징은 이펙츠 영화가 많이 제작되는 현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디지털 그레이딩의 빠른 확산을 가속시키고 있다
[그림 5 참고]

촬영에 필연적인 요소인 필터나 조명을 비롯한 기타 고려 사항에 대한 제약이 없이 원하는 효과를 빠르게 가감할 수 있는 특징도 영화제작자들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에 따라 전적으로 DI에 의존하는 감독과 DP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으며 DP 및 디지털 컬러리스트의 경계와 역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연두색 풀밭을 배경으로 드러나는 에이다(니콜 키드만)의 파란 드레스, 희다 못해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눈을 배경으로 하는 인만(주드 로)의 검은 실루엣, 진흙탕 전장에서 폭발음과 함께 퍼지는 노란 빛의 연기, 아름들이 나무 숲에 아롱거리는 에메럴드 나뭇잎 등등... “콜드 마운틴”의 색 공간에는 선명한 색상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그레이딩의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하지만 그 느낌에 있어서는 디지털로 이루어낸 결과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조용하고 차분하다. 어디고 색 자체로 튀는 경우가 없이 모든 색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영상 속에 어우러져 있으면서 마치 오래된 사진을 보며 한때는 선명했지만 아득하게 잊혀진 이야기가 두서없이 떠오르는 듯이 순간순간 살짝살짝 그 빛을 내고 있었다.

자신의 작업을 “감독이나 DP가 원하는 느낌을 최대한 살려내는 것이었으며 특별히 목표로 한 것이 있다면 디지털의 느낌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표현하는 아담 글라스만의 디지털 자연미의 세계.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콜드 마운틴”에서 DI의 비중은?

약 2200개 샷으로 이루어진 “콜드 마운틴”에서 DI를 거치지 않은 샷은 하나도 없다. 기간은 지난 해 9월에 시작해 12월에 끝냈으니 약 3개월 걸린 셈이다. DP 존 실과 함께 작업한 기간은 총 3주인데 이 기간 동안 영화의 80%에 해당하는 분량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편집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잘려 나가 결과적으로는 DP가 없는 상태에서 밍겔라 감독과 필름 에디터인 월터 무크(Walter Murch)와 함께 그레이딩 과정을 마쳐야 했다. 대략 영화의 50% 정도가 되는 분량이다.


“콜드 마운틴”에서 DI의 역할은?

영화의 전반적인 느낌은 DP 존 실의 카메라 작업에 의해 이미 잡혀져 있었다. DI는 DP가 원하는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보다 시각적으로 강조해 표현하는데 주로 사용되었다.

영화의 스토리가 에이다(니콜 키드먼)가 살고 있는 농장과 인만(주드 로)이 있는 전장 사이를 오가면서 전개되기 때문에 장면이 바뀔 때마다 분위기 변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주는 것이 기본적으로 필요했고 인만과 에이다가 함께 지내는 농장 생활에는 밝고 따뜻한 색을, 점차 암울해지는 상황을 묘사하는 데는 차갑고 탁한 색상을 더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선상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그림 6참고]

사라(나탈리 포트만)의 오두막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장면의 경우에는 채도를 20-30% 정도까지 낮추기도 했다.


사용한 도구는?

기본적으로 필름라이트(FilmLight Ltd., www.filmlight.ltd.uk)가 개발한 ‘노스라이트(Northlight)’ 스캐너, ‘트루라이트(Truelight)’ 컬러매니지먼트 시스템, ‘베이스라이트(Baselight)’ 컬러 그레이딩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

‘노스라이트’는 스캔하는데 프레임 당 2.5초가 걸려 실시간 스캔이 가능하지 않지만 후에 필름 네거티브로 인쇄할 때 프로젝트된 다른 어떤 스캐너보다 스크린 영화와 같은 느낌을 전해주는 것이 장점이다.

‘베이스라이트’는 소프트웨어 기반 필름 그레이딩 유닛으로 속도 면에서는 하드웨어 기반에 못 미치지만 보다 유동적이고 전통적인 그레이딩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친근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고 있어 사용하기 편한 이점이 있으며 ‘트루라이트’는 모니터와 영화 사이의 WYSIWYG(What You See Is What You Get)을 이루는데 탁월한 소프트웨어다
[ 2페이지의 그림 2 참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에이다와 루비(르네 젤웨거)가 침대에 누워 있는 가운데 에이다가 촛불 아래에서 책을 읽는 장면이다. DI를 통해 에이다의 머리가 만들어내는 웨이브에 하이라이트를 더하고 웨이브가 그려내는 구불거리는 곡선을 조금 흐려준 다음 화면의 가장자리 부분의 색조를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등불에 하이라이트를 더해 주는 등의 처리를 했는데 디지털 그레이딩의 흔적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느낌을 최대한 살려낸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그림 7 참고]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영화 도입부의 전투 시퀀스다. 약 5분간 지속되는 이 시퀀스는 반 이상이 디지털 필터가 적용된 효과 샷으로 이루어져 있다. DP 실은 애초 포화가 뿜어낸 연기로 자욱한 이 장면의 연출에 그래드 필터 (grads: 다양한 밀도의 컬러 필터)를 이용했다.

하지만 카메라 이동에 따라 필터를 이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 사용된 것이 디지털 그래드 필터인데 이를 통해 연기가 없는 화면에 디지털 연기를 더할 수가 있었다. 복잡했던 것은 필터를 각 레이어마다 적용해야 하는 것과 보다 자연스러운 효과를 위해서 필터 자체를 액션과 상응하도록 프레임 별로 애니메이트해야 했다는 점이다
[그림 8 참고]


DI의 장/단점이라면?

전통적인 화학적 그레이딩은 이미지를 어둡고 밝게 하거나 전체적인 컬러 톤을 바꾸는 정도 밖에는 할 수 없다. 반면 DI는 색조, 대비, 채도 등등을 매트(Mattes), 마스크(Masks) 그리고 각종 톤 조절 툴(Keying Tools)을 이용해서 전체적 또는 이미지의 특정 부분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오토컨폼(Auto conform)이나 리컨폼(Reconform) 툴, 그리고 옵티컬(Optical): 예로 디졸브(dissolves), 리니어 스피드 체인지(linear speed changes) 등도 쉽게 만들어 적용할 수 있다.

단점이라면 제작 후 추가로 드는 경비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실제 카메라 촬영 시 따르는 노력과 경비, 시간을 고려하면 큰 단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제작 시간을 단축시켜 제작비 자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DI의 미래는?

얼마 안되어서 DI는 영화 제작의 필수 과정으로 자리잡으리라 생각한다. 이 경향은 아카데미 시네마토그래피 상에 지명되는 작품만 보아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콜드 마운틴”을 비롯해 “신의 도시(City of God)”,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Master and Commander: The Far Side of the World)”, “시비스킷(Seabiscuit)”. 이 중에서 타이틀에 국한된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DI를 거친 영화로 알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현재의 2K (2048X1556) 해상도 대신에 4K (4096x3112) 해상도, 다시 말해 더 좋은 화질이 가능해지는 등의 기술적 진보와 함께 더욱 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얼마 전 데니 보일(Danny Bolye)의 영화 “28일 후(2003)”를 DVD로 보았다. 미친 듯이 난폭해지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런던이 배경으로 전 장면을 DV로 촬영해 화제가 되었던 영화인데 전체적인 색조나 조명이 공포를 자아내기에 충분할 만큼 드라마틱하게 연출되어 모처럼 공포가 무엇인지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런데 그 드라마틱한 효과가 모두 디지털 필름 마스터링을 포함한 후반 작업으로 이루어낸 결과라고 해 다시 한번 크게 놀란 적이 있다. 달랑 DV 몇개 만으로 전문적인 조명 기술이나 베테랑 DP이어야 이루어낼 만한 효과를 후반 작업에서 이루어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디지털 그레이딩의 이 파워는 사실 전통적인 DP들의 카메라워크에 대한 인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장면의 연출은 물론이거니와 가능하다 해도 상당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장면의 연출도 쉽고 간단한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파워 툴이 생긴 것이니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예를 들어, 비가 오면서도 해가 나는 날의 이상야릇한 장면을 촬영한다고 치자. 한쪽은 황금 빛이, 다른 한쪽은 회색 빛이 들고 낮게 깔린 짙은 회색의 구름 사이로 언뜻 언뜻 주황색 비스르한 빛이 스며나오는 그런 날에 푸른바다 빛 드레스를 입은 여배우가 꽃분홍 솜사탕을 먹는 장면이다.

이런 샷은 해와 비가 오락가락 하는 그런 날을 마냥 기다리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각종 조명 장비와 필터 등등을 사용하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DI의 세계에서는 보통 조명 아래 촬영된 평범한 샷을 스캔해 컴퓨터로 불러들인 후 이미지의 여기 저기를 클릭하며 조명과 컬러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연출해낼 수 있게 된다.

“콜드마운틴”를 통해 처음으로 DI에 접한 DP 실도 “모든 샷들을 하나씩 일일이 살펴보고 수정할 수 있는 이 기술의 맛을 보면 빠져나오기 어렵다”고 얘기하고 있듯이 쉽고 간편하며 간단하게, 그리고 저렴하게 각종 효과를 낼 수 있는 DI는 영화 감독들은 물론이고 DP들이나 컬러리스트의 비전을 펼쳐낼 수 있는 훌륭한 도구로 빠르게 자리잡을 것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