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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디자이너 곡 소리 나게 만드는 사사 편집 디자인

2005-01-25


기업의 고루한 역사서 정도로 기억되는 사사는 일반적으로 ‘독자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책 속에 흥미요소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무거운 텍스트와 이미지들로 가득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국내의 이러한 사사들이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일본의 사사 형태를 답습하며 출발했던 것이 비주얼과 가독성을 고려해 세련되고 친근하게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판촉물 디자인 전문 업체인 ‘디자인 유니크’에서는 단행본처럼 본문이 주가 되어 쉽게 읽혀지는 사사를 직접 제작해 화제가 되고 있다. 기존의 정통형 사사와 비전통형 사사의 장점만을 뽑아 한국 사사의 업그레이드 판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은 ‘디자인 유니크’의 <삼성중공업30년사> 를 통해 사사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자.

취재 | 권영선 기자 (happy@yoondesign.co.kr)

기업의 역사와 성장 비결을 단 한 권의 책에 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의 오랜 기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기획, 진행, 집필, 사진 촬영의 업무가 끝나야지만 비로소 편집 디자인과 제판, 그리고 인쇄·제본 공정으로 연결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30년사> 의 경우 자료수집기간 및 원고집필기간이 12개월이나 걸렸고, 사진 촬영 및 원고 감수기간이 약 2개월, 인쇄를 포함한 디자인기간만 5개월이 걸렸다.
뿐만 아니라 6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을 빠짐없이 사진의 중요 순서도에 따라 강약을 조절하여 일일이 레이아웃을 알맞게 구성하는 일은 디자이너들의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투자되었다. 총 1년 7개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밤낮없이 작업한 결과물임을 감안 하다면 이번 작업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큰 프로젝트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다른 사사와는 달리 현황화보를 본문 앞으로 배치하고, 연혁화보는 본문 뒤, 즉 부록 앞으로 배치해 사진자료의 식상함을 없앴다.


이번 <삼성중공업30년사> 는 634페이지로 구성이 되어있다. 페이지가 많은 만큼 읽는 사람을 고려해 가독성에 많은 신경을 썼다.
페이지의 연속성, 각 장과 절의 유기적인 조화 및 텍스트를 고려해 본문편집에서 정형적인 틀을 깬 변형 1단 레이아웃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소컷 정도로 사용되는 연혁사진의 크기를 중요도에 따라 강조함으로써 사진을 통해 역사를 이해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였다.
그 동안 이런 방법이 사사에 응용될 수 없었던 이유는 보통 1,200매(원고지 기준)에서 많게는 6,000매가 넘는 방대한 분량을 일일이 이런 식으로 편집하는 것은 무척 힘든 작업일 뿐만 아니라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사사는 기업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는 ‘최상의 기록집’이다. 기업의 역사와 성장 비결을 정확하게 수록하여 경영사뿐만 아니라 홍보물로 활용함으로써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사는 보다 정확한 역사를 바탕으로 제작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편집물과 달리 복합한 절차와 제작과정을 가지고 있다.
먼저 사내에 사사 제작을 위한 팀을 구성하고 용역 대행사를 선정하게 된다.
그리고 1,2차의 자료 수집을 거쳐 회사의 내부 외부의 자료를 연도 별로 정리하는 작업을 가진다.
그 후 인터뷰와 자료 학습을 통해 원고를 집필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사사 제작의 70%을 차지한다.
1차 원고 정리와 수정이 끝나게 비로소 디자인과 표지 구성을 진행하게 되고 분해 및 제판 검수를 통해 최종적으로 사사가 확정이 된다. 인쇄와 제본까지 보통 10년사 1년, 20년사는 2년의 제작과정을 가지게 된다.

사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을 것 같으면서도 실상, 자료를 찾으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자료가 필요한지 자료목록을 먼저 작성하고, 문서 자료와 사진자료, 그리고 제품 등 기타자료로 분류하여 철저하게 자료들을 수집해 나가야 한다. 셜록홈즈를 방불케하는 이런 자료조사는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써야 하는 사사에 있어 무척이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문적으로 사사를 집필하는 작가가 따로 존재하며,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회사에 상주하며 집필을 시작한다. 집필은 철저한 자료조사와 임원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루어지며 보통 사사의 70% 이상이 집필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삼성중공업30년사> 사를 위해 준비된 사진자료들은 대략 1500컷 정도이다. 이 중 800컷만이 사사 제작을 위해 쓰였으니 원래 사진의 반 정도가 떨어져 나간 셈이다.
보통은 원고와 사진은 따로 분리가 되어 디자이너에게 전달이 되는데, 기획팀에서 먼저 내용을 파악하고 이 부분에 들어갈 사진군을 만들어주게 된다. 사진의 선택 범위가 너무 많다 보니, 모두 썸네일로 프린트를 하고 사진을 거의 외우다시피 하여 진행이 된다.
내용과 어울리는 사진을 추리고 레이아웃을 잡아나가는 일은 디자이너에게 순발력보다는 깊은 안목과 통찰력을 요구한다.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를 기술해야 하는 사사의 경우에는 얼마나 사실을 잘 반영했는가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디자인을 진행하게 된다.
내용도 그리 눈에 띄지 않고, 디자인도 크리에이티브 하지 않아 쉽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사사만큼 디자이너의 손길을 많이 거치는 디자인이 없다. 옛날 사진 자료가 많다 보니, 대부분의 사진자료는 수정과 보정 작업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중에서 20% 이상은 합성작업을 통해 진행이 된다.
뿐만 아니라 본문의 내용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디자인을 하다 보니, 많은 제약을 감수하고 편집 디자인을 진행해야만 한다.
보통 300면이 넘는 볼륨 있는 편집물을 디자인하는 것은 디자이너에게 물리적으로 많은 노력과 고통을 동반하게 한다. 1년이 넘는 제작과정을 거친 사사 디자인은 많은 디자이너들의 노고로 이루어진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을 우리가 평가할 때 디자인적 요소를 고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디자이너들, 혹은 기획자들이 사사는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업들의 치열한 역사를 이해하고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담는 일이다.
‘디자인 유니크’의 김종규 디자이너는 <삼성중공업30년사> 를 통해 여전히 두꺼운 분량과 딱딱한 방식 때문에 일반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사사를 훨씬 더 쉽고 세련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을 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 동안 읽혀지지 못했던 사사의 기본 틀을 과감히 걷어내고, 시대적 감각에 맞게 글과 사진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이번 <삼성중공업30년사> 의 경우 일반 사사와 많은 차이점을 두고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 담긴 사사라고 하더라고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글만 빽빽한 사사, 그것도 500페이지 1000페이가 넘는 분량을 재미있게 읽는 다는 것은 많은 무리가 따른다.
이번 프로젝트는 잘 읽혀지는 사사를 만들기 위해 정통형 사사와 비정통형 사사의 장점만을 취하여 만들게 되었다.
기업이 출범하여 세월의 경과와 함께 일어난 각종 사건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는 정통형 사사의 형식을 따르되, 지루하지 않도록 많은 사진 자료를 이용하여 단행본의 편집 방식처럼 중요한 사건의 사진은 크게 부각을 시키고, 모든 레이아웃을 글의 내용에 알맞게 맞추어 구성하였다. 그림만 보아도 어떤 사건이 중요한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타이포그라피의 운용에 있어도 부, 장, 절의 반복으로 복잡해지기 쉬운 본문 편집을 최소화하였고, 제목이나 라인 등에서만 시도되었던 별색 활용을 본문의 주요내용에 활용하면서 타이포의 크기에 변형을 줌으로써 가독성은 물론 이독성을 제고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이런 방식은 독자들이 그림과 글이 어울려 한 권의 소설을 읽듯 사사를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많은 역사와 전통을 가진 <삼성중공업30년사> 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어떤 디자인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었는지 궁금하다.

최근 들어 대형 판형들을 통해 사사가 발간되는 경우도 있지만, 홍보의 역할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인 경우가 많다. 너무 커서 읽기에 불편하고 책꽂이에 오래 보관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보존과 기록의 측면을 고려하고, 5*7배 정판형의 약점을 강화하기 위해 가로의 크기를 더 강조함으로써 사진활용에 있어 장점을 배가시켰다.
그리고 삼성중공업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따뜻하고 고급스러운 수입지와 금속 조형물이 대비를 이루도록 표지를 제작하였다.

사사의 편집 디자인의 경우 많은 제약이 따른다고 들었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가장 큰 에로사항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식으로 극복했는지 궁금하다.

30년이나 된 기업의 역사를 사실에 근거하여 서술한다는 것은 짧은 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몇 년씩을 생각하고 시작하는 장기 프로젝트이다.
그만큼 자료에 대한 다각적인 취재와 수집, 그리고 올바른 자료해석에 대한 지루한 논쟁이 수도 없이 진행이 된다. 집필된 내용이 회사의 모든 임원진을 거쳐 검수가 이루어지고, 확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수정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편집 디자인은 대개의 경우 디자인에 따라 문단이나 글의 내용을 줄이기도 하는데 사사의 경우에는 이러한 복잡한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거의 원문에 손을 댈 수가 없다.
원문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디자인을 진행해야 하는 에로사항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진 자료의 경우 중요도 순에 따라 퀄리티가 좋거나 나쁘거나를 따지지 않고 모두 나열이 하기 때문에 디자인적 요소보다는 철저히 회사의 입장에서 모든 디자인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자료의 사실적인 나열도 중요하지만, 디자이너로써 가지는 자료의 포장에서 오는 첨예한 대립들은 사사 디자인의 가장 큰 에로사항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 또한 사사 디자인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절제되어 있는 디자인 속에서 사실적인 역사의 재현이야 말로 몇 백 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디자인으로 남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삼성중공업30년사> 를 내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재 한국의 사사는 과도기적 현상에 봉착해 있다. 브로슈어나 애뉴얼 리포트에 비해 디자인화 되지 못한 것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10년 혹은 30년, 50년의 역사를 다루는 책인 만큼 화려한 그래픽이 들어가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원치 않는다. 다만, 회사가 젊어지고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깨닫고 있는 만큼 기존의 사사들은 서서히 변화하려는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 또한 기존의 관습들이 아닌 색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서 있다.
'역사서가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힘들다' 라고 생각 하지만, 이제는 비쥬얼과 가독성을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사가 점점 더 많이 읽히고 사랑 받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많은 기획자와 디자이너들이 사사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고민한다면 반드시 누군가는 만들어가야 할 이 의미 있는 작업의 수준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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