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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카를 과시하는 3가지 방법

2011-11-16


자동차는 크기와 성능, 가격과 디자인, 승차감과 안전성 등 여러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가지며, 리무진에서부터 스포츠카, 경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종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차격의 구분은 자동차의 성격과 스타일을 알려줄 뿐 아니라, 이 차를 소유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말해준다. 예를 들어 리무진은 첨단 기능을 탑재한 고급스러운 스타일의 비싼 차라는 사실 외에도, 이 차를 타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명예와 부를 누리고 있는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는 사회적인 위계를 따르는 대표적인 물건이기도 하다. 부장이 사장보다 더 큰 집에서 살 수 있고 더 좋은 옷을 입을 수는 있어도, 자동차만은 더 좋은 차를 타기가 어려운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글 | 이옥분 디자인학 박사
에디터 | 최동은(dechoi@jungle.co.kr)


에드가 모랭(E. Morin)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운전한다는 것은 기계구조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간단한 조작으로 자동차를 움직일 수 있게 함으로써, 소유와 지배의 관계를 확인하며 시간과 공간에 대한 자유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자동차는 언제, 어디로든 속력을 내어 빠르게 갈 수 있는 자유의 상징이자 안락한 사적 공간으로서 풍요와 자존심의 대상이며, 이러한 의미 안에서 이동을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적 기능보다는 자유와 행복, 성공 등을 말해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사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동차는 성공한 사람이라는 표시로 신분 표시의 수단이며, 자기정체성의 도구이자 사회적 위치를 확인시켜 주고, 그 신분적 차이를 표시하는 기호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의 이러한 상징은 한국에 자동차가 들어온 초기 역사로부터 전형적인 스타일을 통해 사람들의 관념 속에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80년대 자동차가 생활필수품이 되면서 이러한 통념은 대중의 삶 속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재현되고 확산되며 그 성격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이러한 현실은“전세방에 살더라도 자동차는 꼭 있어야 한다는 말을 낳으며,‘마이홈’보다는‘마이카’를 먼저 원하는 풍조 속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표출되었다.



1. 내 차 꾸미기


난생 처음으로 마이카를 가지게 된 사람들은 차를 멋지게 꾸미고 싶어 했다. 마치 자신의 집을 꾸미듯이 자동차 내부의 시트와 핸들에 화려한 커버를 씌우고, 바닥에는 보조매트도 깔았다. 희귀한 외국 잡지와 등받이 쿠션에 향수병을 들여 놓고, 뒷선반에는 과일바구니에 요란한 커버의 티슈통을 올려놓았다. 카스테레오용 테이프꽂이, 인형 등을 차창이 가려질 정도로 진열하기도 했고 안전운행을 지켜주는 수호신 삼아 부적, 복조리, 복주머니, 염주, 십자가 등이나 마스코트를 걸어 놓기도 하였다. 크리넥스 티슈, 향수병, 등받이 쿠션은 3대 꼴불견으로 말해지며, 이렇게 치장한 실내는‘거실의 한켠을 옮겨온 풍경’이라 말하여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외관에는 마이카를 더욱 값비싼 차량으로 탈바꿈시켜주는 영어로 된 스티커와 마크를 붙이고 장식띠를 붙였다.

내차 꾸미기는 르망이 출시되면서 외관을 젊고 스포티하게 꾸미는 붐으로 이어졌다. 앞쪽이 낮고 뒤쪽이 높은 쐐기 형태의 르망은 고속 주행이 안정적이며 탁월한 고성능의 역동적이고 진보적인 느낌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르망이 출시되면서 에어로다이나믹 스타일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되었고 스포일러, 에어댐 등 에어로파트를 붙여 스포티하게 꾸미는 것이 유행했다.

차량을 스포티하게 꾸미는 것은 86년 자동차 개조에 관한 법적 규제가 풀리고 모터스포츠가 열리면서 유행처럼 일어났다. 이전에는 차의 모양을 바꾸거나 이상한 등을 달 수 없었는데, 그해 7월부터 범퍼, 라디에이터 그릴, 등화장치, 몰딩 등을 개조하거나 변경할 때 해당 관청에 신고만 하면 되도록 관련법이 변경되면서 장식의 수준을 넘어 개조 붐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자동차 개조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86년 12월 용평랠리에서 시작된 모터스포츠였다. 동호인들을 중심으로 레이싱팀이 결성되고 카레이스가 열리면서 스포츠카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레이스 차량에 달린 각종 에어로파트를 일반인들도 따라 하면서 여러 가지 물건으로 스포티하게 꾸민 차량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안전등, 안개등, 에어스포일러, 루프캐리어, 보조범퍼, 선루프, 광폭 타이어와 알루미늄 휠 등, 각종 에어로 파트를 달아 고속 주행 차량처럼 보이도록 했다.

르망의 뒤를 이어 스쿠프가 출시되면서 이러한 종류의 꾸미기 아이템은 스쿠프 소유자라면 응당 갖추어야 할 필수 품목이 되었다. 스쿠프는 소형차의 실용성을 가지면서도 스포츠카를 닮은 모양으로 젊고 역동적이어서 스포티루킹카(sporty looking car)로 불리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스포츠카와 같은 존재로 자리했다. 스쿠프 소유자들은 엔진 튜닝으로 출력을 키우고 알루미늄휠과 광폭 타이어, 범퍼덮개와 썬루프, 차체사이드에는 에어로파트를 달고, 실내에는 액정 TV, 레이싱용 라조페달과 모모핸들로 개조해 스포츠카의 외양을 따라했다. 그리고 유리창에는 짙은 브론즈나 스모그 칼라 썬팅으로 멋을 냈다. 개인이 꾸민 에어로 스타일은 실제 차량의 성능을 향상시켜주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자동차용품은 차량의 성능을 높여 주고, 자신의 개성을 돋보여준다고 여겨졌다. 스쿠프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Turbo', 'DOHC 16V' 스티커를 붙이고 에어로 파트로 개조해 한껏 멋을 부릴 수 있는 대표적인 차량이었다.



2. 등급 올리기

차량을 멋지게 꾸미는 것은 장식물을 덧붙이거나 개조하는 것과 함께 고급 사양으로 탈바꿈시키는 것도 포함했다. 해당 차종의 사양이 아닌 동일차종의 고급 사양 엠블렘을 부착하여 차의 등급을 올리는 경우였다. 엠블렘을 바꾸어 다는 것은 엔진이 작더라도 차이가 거의 없는 자동차의 외관을 이용해 저급 사양을 고급 사양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었다. 포텐샤(1992년)는 대부분 판매되는 모델이 2.0리터 모델이며 3.0리터 고급형 모델은 전체 판매의 5%에도 미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다니는 많은 포텐샤는‘V6 3000’사양의 엠블렘을 달고 다녔다. 게다가 'ABS'와‘Air Bag'은 고급차를 중심으로 장착되기 시작한 고가의 옵션 품목이었는데, 많은 차량이 이 스티커를 유리창에 부착하였으며, 여기에 가죽시트까지 씌워 원래 차량의 사양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기도 하였다.



저급사양을 고급사양으로 슬쩍 바꾸어 버리는 사람들의 심리는 기업의 제품 전략에서도 볼 수 있었다. 대중들이 저급차를 고급차로 업그레이드하는데 비해, 기업에서는 반대로 고급차로 이미지를 만든 다음에 사양을 낮춰 저렴하게 판매하는 전략이었다. 다시 말해서 신규모델의 양산 초기에는 비교적 최고급 사양만을 판매하여 이미지를 높이는 전략을 취한 다음, 일정 시점이 지나면 엔진의 배기량을 낮춘 저급 모델로 개조하여 판매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현대자동차가 영국 포드에서 도입하여 생산한 중형차인 '코티나 마크 IV'가 대표적인 모델이었다. 원래 이차는 1,600cc 엔진을 장착했었는데, 배기량을 1리터 낮춘 1,500cc 소형 엔진을 장착하여‘이코노미’모델(79년)로 판매하면서 소형차 기준으로 자동차세가 매겨져 차량가격이 385,000원이나 인하되었다. 당시 자동차 관련 세금이 1,500cc를 기준으로 소형과 중형의 세금 격차가 2배에 이르렀는데, 소형에 편입되면서 세금 혜택을 크게 본 것이다. 이코노미 모델은 차체에 비해 단지 엔진 출력이 낮아 가속능력이 부족했을 뿐, 중형의 차체에 실내공간도 넓고 안정감도 좋았으며, 가격도 싸고, 세금도 적었다. 일부 차량에서는 엔진출력에 비해 차체가 크다보니 연비가 더 나빠져서, 비용 면에서 낫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현대의 스텔라 시리즈, 대우의 로얄 XQ, 듀크, 기아의 캐피탈 등이 이러한 차종이었는데, 이러한 중형급의 소형차는 반응이 좋았다. 중형차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던 대우의 프린스는 1,500cc엔진과 1,900cc 엔진을 운영했는데, 이중에 1,500cc가 판매량의 78%를 차지할 만큼 사람들은 저렴한 가격의 큰 차를 원했다. 그러나 90년대로 넘어가 자동차 보급이 일반화되고, 사람들의 경제력이 좋아지면서 이와 같은 이코노미급 차량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이코노미급 차량은 자동차를 자신의 위치와 동일시하며 차량의 크기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였다. 갖가지 꾸미기와 개조를 통해 더 크고 멋지게 보이게 하는 탈바꿈의 풍조는 자동차가 개인이 지닌 최고의 사물로서 자유와 풍요의 상징이며, 동시에 자존심의 상징으로 자리하는 일면을 보여주었다.



3. 중고차 구입하기

더 저렴하게 자동차를 구매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중고차를 찾았다. 중고차 시장은 한국전쟁이후 중구 오장동, 무교동, 영등포 등에 있던 운전사 식당에서“자동차복덕방”이라는 이름으로 거래가 일어나면서 시작되었다. 거래량이 늘면서 여러 소규모 업체로 난립하던 중고차매매업은 1972년 1월 도로운송차량법이 개정되어 허가제로 바뀌면서 정비되었다. 관련법의 정비로 자리를 잡은 중고차시장은 자동차의 품질에 대한 불만족과 적은 비용으로 차량 구매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활발해졌다.

대량생산체제가 확립된 80년대 자동차는 내구성이 부족해 3년 정도 타고 나면 자주 고장을 일으켰고, 90년대 들어서도 품질은 여전히 낮아 고장 수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내구연한이 10년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차량의 교체 주기는 96년 기준 평균 3.4년, 대형차는 평균 2.9년으로, 대부분의 차량을 3년 안팎으로 교환하는 경향이 계속되었다. 차량을 교체하는 이유는 성능이 떨어진다는 이유가 40%, 수리비 부담이 19%로 성능관련 사항이 전체의 59%를 차지하였다. 이 때문에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은 새 차를 타다가 고장이 생길 즈음 중고로 팔아버리고 새로 출시된 차로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중고차 시장의 확대는 자동차의 보급을 촉진했다. 같은 액수의 돈을 가지고 새 차보다 한 급 위인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도 많았고, 비용을 아껴 다른 편의 장치를 구입하는 사람도 많았다. 중고차 가격은 내구성 문제로 2-3년 사용하면 원래 가격의 절반을 조금 웃도는 정도로 값이 떨어져, 남는 돈으로 에어컨, 알루미늄 휠, 카 오디오 등 고급 악세사리를 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80년대 중반 마이카 붐이 시작되는 시기, 중고차는 넉넉지 못한 예산으로 자동차를 사려는 사람들에게 감당할 수 있는 가격대였고, 한편으로는 저렴한 가격으로 좀 더 큰 차를 구매해서 자신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게 해주었다. 중고 자동차 또한 이러한 면에서 사회적 상징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 참고문헌
현택수, 「자동차 문화」, 『일상속의 한국문화』, 1998, 나남출판
(주)자동차생활, 「CAR LIFE」, 1985/4, 1985/8, 1986/9, 1988/1, 1988/9, 1989/7, 1990/10, 1990/12, 1996/11, 1992/9, 1993/6, 1996/4
「교통신문」 1985/5/9, 1979/1/1
「조선일보」, 1997/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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