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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트 | 리뷰

애플의 성공 뒤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2007-04-03


에디터 이정민

여느 때와는 다르게, 이번 1월에 열린 Macworld Expo 2007은 Mac 사용자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iPhone’ 때문이었다.

웹상에서는 그동안 애플이 등록한 수많은 특허를 가지고, 이번 Macworld Expo에서 발표될 제품들을 점쳐보고 직접 디자인한 프로토타입을 커뮤니티에 올리는 등 열의를 보였다. 대부분은 전면이 모두 터치스크린 LCD로 제작된 iPod과, 애플의 신규사업이 될, iPhone으로 불리는 휴대 전화, 비운의 PDA ‘Newton’의 부활을 예상했다.
매번 발표회 때마다 애플과 루머 사이트 사이에서는 루머의 사실 여부에 대한 승부 아닌 승부가 벌어지고는 했는데, 2007년 Macworld Expo에서는 루머사이트가 틀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맞지도 않았다. 애플은 iPhone에 휴대 전화와 새로운 터치스크린 iPod, 그리고 Newton을 모두 녹여 넣었다. 기술로 보거나 디자인으로 보거나 이것은 휴대 전화와 PDA 역사상 엄청난 혁신이었고 사람들은 지금의 애플을 있게 한 스티브 잡스의 미래를 보는 혜안과, 다른 경쟁업체를 멋지게 ‘엿먹이는(?)’ 애플의 기술력과 창의성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뒤에 있는 한 명이 있다.

1990년대 중반은 애플에 있어 ‘암흑기’였다. 과거의 화려한 영광은 어디로 가버리고 20%를 넘나들던 애플의 시장점유율은 8% 이하로 감소했다. 당연히 매출은 심각할 정도로 떨어졌고, 애플을 지켜보는 관련 업계 사람들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애플은 ‘벌레 먹은 사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있었다.

잡스가 ‘iCEO’라는 직함으로 애플에 화려하게 복귀하면서 애플은 이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기사회생의 원동력은 CRT를 탑재한 혁신적 디자인의 일체형 컴퓨터 iMac과 전 세계 사람들의 음악을 듣고 관리하는 방법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iPod이었고, 이 제품들의 디자인을 책임진 사람이 다름 아닌 조나단 아이브다.


조나단 아이브의 정확한 직함은 ‘Senior Vice President of Industrial Design’, 한국어로 하자면 디자인 담당 부사장이다. 디자인에 큰 비중을 두는 애플인지라 디자인 담당 부사장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리 억지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그를 단지 ‘디자인 담당’으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스티브 잡스는 조나단 아이브를 가리켜 ‘천만금을 주고도 바꾸지 않을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아이브의 말에 따르면, 잡스와 아이브는 최소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2007년 Macworld Expo에서, 애플의 동영상 셋톱박스 ‘Apple TV’에 이어 새로 발표한 iPhone으로 스티브 잡스와 제일 처음 통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조나단 아이브다. 도대체 조나단 아이브가 어떤 사람이기에, 칭찬에 인색하고 인재의 취사선택에 가차없기로 유명한 스티브 잡스를 이토록 매료시킬 수 있었을까?
조나단 아이브는 지난 2002년 초 영국 BBC가 선정한 ‘영국 문화를 이끌어가는 인사’에서 전 세계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JK 롤링(JK Rowling)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거기에 덧붙여, 그는 2006년 초, 1917년 조지 5세가 1차대전에 참여한 비전투원을 기리기 위해 만든, 영국의 기사 작위 중 세 번째로 높은 ‘CBE(Commander of British Empire)’를 수상함으로써 이름 앞에 ‘경(Sir)’을 붙이게 됐다.
엄청난 팬들을 몰고 다니는 IT 업계의 거의 유일무이한 ‘스타 디자이너’ 조나단 아이브가 애플에 입사하기 이전의 그에 대한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다.


w_http://www.jonathanive.com/의 ‘About Jonathan’ 섹션에는 ‘그가 애플에 입사한 해인 1992년 이전, 조나단에 대한 정보는 극히 부족하다’라고만 쓰여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소위 ‘IT 업계 종사자’가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영국 ‘뉴캐슬 폴리테크닉 대학’(현재 노섬브리아 대학)에서 ‘디자인&예술’을 공부했던 그는, 애플을 고객으로 둔 회사 중 하나였던 ‘탠저린’사에서 근무했다. 탠저린에서 그는 도자기, 목욕탕, 세면대, 욕조 같은 가정용품을 주로 디자인했다고 한다(그러고 보면 최근 iMac의 디자인이 반들반들한 세면대 같기는 하다).
그가 애플에 갓 입사했을 무렵 디자인 팀장이었던 로버트 브루너(Robert Brunner)는 그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감각을 높이 사 그가 탠저린에 있을 당시 PowerBook의 프로토타입 디자인을 의뢰했고, 급기야는 그를 정규직으로 입사하도록 추천하기에 이른다.
입사 초부터 조나단 아이브는 애플의 칭찬을 받아왔다. 그는 단명한 세계 최초의 PDA Newton을 디자인했다. 그리고 1996년에는 브루너의 뒤를 이어 애플 디자인 팀을 떠맡게 된다.


일반적인 컴퓨터 디자이너와는 다른 혜안과 남다른 리더쉽을 가진 조나단 아이브와, 그가 이끄는 애플 디자인팀은 iMac과 iPod 시리즈는 물론, PowerBook, iBook 등 현재 우리가 ‘애플’ 제품이라고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디자인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빈사 상태의 애플을 마이크로소프트와 대등하지는 않더라도 한판 대결을 벌일 수 있는 굴지의 기업으로 돌아오게 하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
조나단 아이브를 흔히들 애플의 ‘커튼 뒤의 사나이’라고 부른다. 개발 중인 제품이나 정책에 대한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는 애플의 전략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절대로 애플이 원하는 말 이외의 것을 하지 않는다. 조나단 아이브는 모든 영광을 애플과 스티브 잡스에게 돌리고 본인은 뒤로 한걸음 물러나 있다. 애플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조나단 아이브는 이렇게 말했다.
“아주 초기부터 제품의 디자인은 스티브 잡스가 주도했습니다. 스티브는 기능이나 가격, 마케팅 그리고 디자인에서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지 등 모든 방면에서 제품이 갖춰야 할 모든 명확한 비전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조나단 아이브는 절대로 그 자신을 내세우는 법이 없이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동료에게 에게 공을 돌리곤 한다. 하지만 잡스는 단지 ‘판단’을 하고 여러 가지 본인의 생각을 제안할 뿐, 실제로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조나단 아이브와 그가 이끄는 소수의 디자인팀이다.
조나단 아이브가 PowerBook을 디자인할 때 ‘(대중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조금 무섭다’ 라며 애플의 디자이너로서의 부담감을 드러냈다. 다른 사용자 집단보다 훨씬 눈이 높은 애플 제품의 사용자들에게 느끼는 부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무서워했던 것은 스티브 잡스의 기대치였을 것이다. 그의 입을 빌자면, 스티브 잡스는 ‘아주 자연스럽고, 군더더기 없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제품의 디자인 그 자체를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심플한’ 제품을 원했다. 까다롭기는 해도, 이 생각은 조나단 아이브가 생각하던 그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1996년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조나단 아이브와 스티브 잡스, 나아가 애플이 생각하는 진정한 제품 디자인에 대해,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제품에 있어서, 외형을 만드는 통상적 의미의 ‘디자인’을 한다는 건, 사실 웃기는 소리에요. 어떤 사람들은 디자인이 외관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좀더 깊이 들어가 보면, 제품 디자인은 기능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제품을 정말 잘 디자인하려면 자신이 디자인하고자 하는 제품을 완전히 파악하고 그것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해야 해요. 즉 무슨 물건인지 자세히 속속들이 꿰고 있어야 하는 것이죠.”
이러한 그의 생각은 모든 제품의 디자인에서 드러난다. 조나단 아이브가 디자인한 제품에서 허투루 디자인된 부분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들 노트북 제품에서 보이는 뚜껑 걸쇠가, 애플의 노트북에서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들이 소비자들의 실책으로 잘 파손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나단 아이브는 그것들을 모두 본체 내로 감추거나, 다른 방식으로 뚜껑을 처리해 소비자들이 전혀 불만 없이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하나 그가 이야기하는 진정한 제품 디자인의 요소는 ‘소비자들이 제품을 보다 친근하고 정감있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그 당시 컴퓨터들의 디자인은 단순한 회색 박스에 천편일률이었다. 어느 IT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조나단 아이브는 자신이 기존 컴퓨터에 가지는 디자인에 대한 불만을 이렇게 표현했다.
“기존 컴퓨터 제조회사들은 소비자에 대한 배려보다 제품 성능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기술에 대한 논의보다는 사용자들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해 논의해야 합니다. 소비자들이 편안하고 쉽게 테크놀로지와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저희의 임무입니다. 자동차 회사들은 더 이상 최고 주행속도에 대해 떠들지 않습니다. 스와치의 시계가 얼마나 정확한가는 이제 화젯거리도 아니죠. 가격의 패러다임도 이젠 아닙니다. 일반 소비자들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디자인이 얼마나 아름답고 편리한가 입니다.”
그의 말대로, iMac을 비롯해 그가 디자인한 컴퓨터와 기타 제품들은 베이지색의 네모난 박스 일색인 컴퓨터 업계는 물론 각종 업계에 디자인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조나단 아이브가 디자인한 애플 제품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최첨단 기술들을 탑재하고 있음에도, 누구나 자연스럽고 어렵지 않게 그 기술들을 사용할 수 있는 마음의 평화를 선사했다. 물론 세계에서 제일 진보적인 운영체제 Mac OS X이 큰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지만...

조나단 아이브가 애플의 부활과 새로운 혁신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남들과 꼭 같은 칙칙한 회색 박스형 컴퓨터’를 만들지 않고자’, ‘다른 컴퓨터처럼 소비자들을 외면한 불편하고 아름답지 못한 컴퓨터를 만들지 않고자’ 늘 혁신을 시도해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Power Mac G4 Cube처럼 실패한 제품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화려한 기조연설 무대의 커튼 뒤에서 조나단 아이브가 행한 혁신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애플이 존재하는 것이다. 올해도 몇 번의 스페셜 이벤트와 WWDC 등 우리를 설레이게 하는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스티브 잡스와 커튼 뒤의 사나이가 보여줄 ‘혁신의 잔치’를 꿈꾸며, 다가온 봄을 행복하게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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