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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내가 이러려고 사진했나? ②

월간 사진 | 2017-02-01

 

 

너 아니어도 일할 애들 많아

어시스턴트들은 일터에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참아가며 ‘사진가’라는 꿈을 좇고 있다. 하지만 하루하루 기약 없이 꿈만 생각하며 버티는 것은 생각 외로 가혹하다. 현실은 냉정하기 때문이다. 생활고에 시달려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앞서 말했다시피 다수의 어시스턴트 월급은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30~50만 원이다. 이 월급으로 서울시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고시원에 살면서 매일 라면만 먹기에도 빠듯한 금액이다.

상업 사진가가 안정 궤도에 오르면 직장인보다 훨씬 높은 수입을 올린다. 1년에 억대 수입을 올리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진가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했을까. 상업 사진 촬영 과정을 본다면, 어시스턴트의 조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피고용자인 어시스턴트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하는 것은 ‘상식적’인 일일테다. 하지만 사진가에게 어시스턴트란 ‘소모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번에 만난 어시스턴트들은 “너 아니어도 일할 애들 많아. 나한테 사진을 배우니 월급이 많지 않은 건 당연하다.”는 말도 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사진가의 수입이 좋아진다 해서 어시스턴트의 대우가 좋아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너무 인색해서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의 사례들도 많다. 어시스턴트들의 가장 큰 불만은 수입 대부분이 고용주를 위해 사용된다는 것. 함께 고생하는 자신들에게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이 보장되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게 그들의 바람이다. ‘임금’에 관해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어시스턴트들도 만났다. “사회 초년병이라서 잘 모르는 분야이기도 했거니와 이쪽 업계가 워낙 짜다고 하니까 으레 그런 줄만 알았다.”던 내용의 것이었다(case5&6 참조). 하지만 관계자들에게 문의해본 결과 이를 입증할만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와 함께 예체능 전공자들의 ‘열정페이’가 언론에 자주 언급되면서 어시스턴트 고용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요즘 업계 경향은 사진 전공자가 아닌 ‘지방에 거주하는 비전공자’를 고용하는 것. 이에 대해 (사진 전공)어시스턴트들은 사진계를 잘 모르는 지방 학생들의 절박함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진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은 이 스튜디오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최선을 다해 일에 전념한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인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느낄 때는 이미 늦은 시점이다.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해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생각을 하면 덜컥 겁부터 나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스튜디오에 나가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일을 늘어나는데 임금은 그대로다. 참다 참다 한계가 오면 결국 그들은 스튜디오 퇴사를 결심한다. 하지만 사진가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고용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중국인 어시스턴트를 고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전해진다.


case 3
스튜디오 일을 하면서 개인작업을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사진을 안 찍은 게 아니라 못 찍는 거였다. 매일 야근에 주말 근무까지 하는데 어떻게 사진을 찍을 수가 있겠나. 그럴 때마다 실장님은 몰아붙였다. “네가 간절하지 않아서다. 넌 사진 할 자세가 안 돼 있다.”고 말했다. 문득문득 더 이상 버티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ase 4
에이전시 소속 실장 밑에서 파트타임 어시스턴트로 몇 번 일한 적이 있다. 분명 처음에 약속한 임금이 있었는데, 막상 일이 끝나고 나니 딱 절반만 주겠다고 했다. 다음에도 일하기 싫으면 고소 해서 나머지 돈을 받으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쪽 관행이 그러니 그냥 넘어갈까도 했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그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실제 고소장을 접수했고, 체불된 임금도 돌려받았다.



너희들이 겪는 거, 나도 예전에 똑같이 겪었어

어시스턴트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했다. “일반 기업에서 주는 야근수당,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일을 시키려면 최소한의 생활은 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주든지, 임금을 적게 줄거면 최소한의 휴식은 보장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줬으면 한다.”고. 어시스턴트의 부당대우 문제가 개선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역시 한 목소리로 “절대 안 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필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지금의 시스템을 바꿀 생각이 없고, 어시스턴트들도 소신있게 말하면 자신에게 피해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몸을 사리게 된다.”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다.

어시스턴트들은 “임금이 적더라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진가 밑에서 일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언젠가는 자신도 저렇게 될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안고 하루를 버틴다고. 물론 그들을 고용하는 몇몇 사진가들은 “요즘 애들은 개념이 없다. 근성과 열정이 없어 한두 달하면 힘들다고 일을 그만둔다. 그런 상황에서 고용·퇴직 신고를 자주 하는 것은 사업체에도 부담이 된다.”고 말한다.

소위 말하는 ‘요즘 애들’,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어 협업에 익숙지 않다’는 말도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디딘다면 누구나 우왕좌왕하지 않는가.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는 것도 자연스런 현상이다.

어시스턴트들이 개념이 없어서 사진가들이 그런 대우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어시스턴트 대우를 제대로 안 해줘서 그들이 개념없는 행동을 하는 것인지,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건 ‘인식의 개선’이다. 비록 이것이 이런 문제에 늘 등장하는, 불합리한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공허한 외침’이지만 말이다. ‘나도 그랬으니 너희도 똑같이 겪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사람의 꿈을 담보 삼아 장난치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 고생하고 있는 어시스턴트들도 자신들이 사진가가 되었을 때 이런 악습을 뿌리 뽑겠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가져야 한다. 노동을 하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역시 당연히 마련돼야 할 것이다.

어시스턴트와 사진가들을 만나면서 자주 접한 말이 ‘불이익’이다. 그 ‘불이익’이란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모두가 ‘불이익’을 당할까봐 선뜻 말하기가 꺼려진다고 했다. 불현듯 작금의 국정농단 사태가 떠올랐다.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권력의 횡포, 분명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불이익’이 무서워 모두가 모르쇠로 일관하는 태도, 그리고 누구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말 한 마디로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비선실세가 존재하는 것까지, 모두가 어시스턴트 부당대우 문제와 닮았다. 필드가 작은 대한민국처럼 느껴지는 것은 분명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견고할 것만 같았던 권력의 카르텔에도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꾸준한 참여 덕분일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지난 몇 십년간 큰 변화가 없었던 ‘어시스턴트 부당 대우’에도 가감 없는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사진계의 부조리한 풍토, 쉽진 않겠지만 바뀔 때가 됐다. ‘모래알이 뭉친 바위가 파도를 이겨내는 모습’을 이곳에서도 보고 싶다.


case 5
어느 날 급여 통장을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돈이 입금돼 있었다. 월급이 올랐나? 하며 의아해 하고 있었는데, 얼마 안 있어 스튜디오 경리팀장이 내게 와서 이런 말을 했다. “입금된 돈 중 얼마의 돈을 현금을 돌려 달라.”고 말이다. 차액을 돌려주니 결국엔 원래 받던 임금만이 통장에 남아 있었다. 그땐 사회 초년생이라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아무 생각 없이 그 말을 따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case 6
어느 날 실장으로부터 “은행에 가서 네 명의로 통장과 체크카드를 만들어 오라.”는 말을 들었다. 사람을 쓰면 법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돈이 있어 곤란하니, 자신에게 통장을 건네주면 알아서 입출금 처리를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쪽 업계에선 통상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나와 상관없이 은행 거래가 이뤄진 셈이다. 통장만 봐선 이상할 게 전혀 없었다. 모든 거래가 내 이름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의아했지만 괜히 불편해 질 것 같아서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



에디터_ 박이현

디자인_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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