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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이야기] 거리를 걷다, 디자인을 보다

2020-07-06

이곳 스웨덴에 온지도 10년이 되어간다. 북유럽에서 디자이너로 살아오며 특별한 경험들과 이야기들로 삶을 채워가고 있음에 새삼 감회가 새롭다. 그렇게 일상이 된 북유럽의 생활도 익숙해졌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날마다 새롭고 신선한 것도 분명 존재한다. 바로 이들의 ‘디자인’ 이야기다.

 

스웨덴을 비롯한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등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들이 ‘디자인’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단순히 어떤 공간, 시설, 거리를 보기좋게 꾸민다거나 관광객을 위한 치장 정도가 아니다. 디자인은 문화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국가 차원에서도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사안이다. 아마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라는 키워드가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기에 그만큼 더 신경을 쓰는 이유도 있겠지만, 역으로 본다면 북유럽 나라들의 디자인에 대한 남다른 태도가 현시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트랜드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본질은 이들의 디자인에 대한 안목과 관심이다. 국가적인 행정 혹은 대대적인 디자인 사업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들의 적극적인 관심은 일상 곳곳에서 쉽게 발견되어진다. 길을 걷다 마주하는 거리의 사인물, 안내문, 포스터, 광고 등 어느 하나 디자인 (혹은 디자이너)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다.  

 

도로 한켠에 설치된 자전거 거치대 디자인.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직관적인 그래픽 요소가 눈길을 끈다.

 

 

도심을 채우는 감각적인 디자인 요소들을 발견하게 되면 언제나 눈이 즐겁고 디자이너로서 많은 인사이트를 얻는다. 그 모든 결과물에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았음은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디자인에 대한 접근성이 열려있다는 것. 불필요한 수많은 과정과 협의, 보고, 결정의 절차보다는 디자인 영역을 전문가에게 일임하고 전적으로 신뢰하는 문화가 뒷받침하고 있다. 

 

깊이 들여다보면 북유럽의 문화에는 디자인의 언어가 오랜 역사와 전통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디자이너로서 부러운 부분. 국가 혹은 사회, 문화가 ‘디자인’ 이라는 단어에 익숙하고 그 중요성을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에서 드러나는 디자인 요소 하나하나의 퀄리티가 높을 수밖에 없다. 

 

얼마전 ‘디자이너 토크’를 함께 진행했던 덴마크의 브랜딩 스튜디오 콘트라폰트(Kontrapunkt)의 디렉터 필립 린네먼(Philip Linnemann)도 이에 대해 언급했다. 정부나 공공기관과 진행하는 브랜딩 프로젝트에서 상호간의 디자인에 대한 기본 관심도와 안목이 월등하기에 디자인 언어를 뽑아내는 과정이 훨씬 수월하고 그 결과물도 좋을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러한 문화는 불필요한 절차를 간소화하고 오롯이 최상의 디자인 결과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덧붙였다. 

 

유명 연예인이나 특정인을 내세운 광고, 사인물 자체가 거의 없다보니 본질적인 내용 전달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현상도 주목할만하다. 실제로 거리에서 혹은 여러 매체에서 접하는 다양한 정보들은 상당히 ‘담백’하다. 담백이라는 의미는 전하고자 하는 내용 전달에만 충실하며 불필요한 ‘치장의 요소’들이 적다는 것. 이러한 접근은 자연스럽게 내용의 본질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코펜하겐 공원의 안내 표지판 디자인

 

‘잔디에 들어와 편히 앉으라’는 문구가 인상적인 도심 공원의 사인물 디자인

 

 

이러한 북유럽의 디자인 문화는 최근 들어 유행처럼 생겨난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수십, 수백 년 전부터 그 역사를 써내려 온 것이다. 필자가 ‘디자이너 토크’ 코너를 진행하면서 만나온 대다수의 북유럽의 디자이너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대목이기도 하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 안목, 열정은 분야를 막론하고 굉장히 뜨거웠다. 특히 자국민이 가진 디자인에 대한 높은 안목은 제품 혹은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를 함께 성장시키는 선순환 효과를 가져온다. 

 

소비자의 높은 안목에 기준점을 맞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품의 퀄리티는 올라가고 디자인에 대한 투자도 후하다. 덕분에 디자인 산업 전반이 안정되어 신진 디자이너의 창업에도 좋은 생태계가 유지된다. 가전제품, 모바일 등 어느 특정 분야로의 쏠림 현상이 아니라 가구, 조명, 인테리어, 회화, 조각 등 광범위하고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 산업이 골고루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갖게 된다. 북유럽의 디자인 산업이 균일하게 발전하고 있는 이유다.

 

마트 내부에 설치된 COVID19 관련 안내 표지판 디자인

 

기차 외부 도어에 부착된 COVID19 관련 안내문(팔꿈치로 버튼을 누르라는 표시)

 


무인 택배함 디자인. 스마트폰 앱과 연동하여 택배물 수신이 가능하다.

 

직관적 디자인이 적용된 공공시설 사례

 

 

위의 사진들은 스웨덴, 덴마크의 공공시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디자인 적용 사례다. 굳이 부가적인 텍스트가 없어도 직관적인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적 정보들은 인포그래픽 (infographic), 픽토그램(Pictogram), 사인(sign) 등의 다양한 언어로 규정되기도 한다. 모두 효과적인 방법과 간결한 형식으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취지에 공통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인포그래픽: 인포그래픽이란 어휘 자체는 정보를 나타내는 인포메이션(Information)과 그래픽(Graphic)의 합성어이다. 
*픽토그램: 그림을 뜻하는 픽처(picture)와 전보를 뜻하는 텔레그램(telegram)의 합성어로, 무언가 중요한 사항이나 장소를 알리기 위해, 그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같은 의미로 통할 수 있는 그림으로 된 언어체계이다. (출처: 나무위키)

 

이러한 디자인 사례들이 여행객들에게 대단한 관광거리가 되지는 않겠지만, 거리에서 무심히 마주치는 이 장면들은 누군가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세심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픽 혹은 브랜딩 디자이너들에게 북유럽 여행을 강력히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지니스적 측면으로 들여다본다 해도 이같은 정보의 시각화 작업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최근들어 우리나라의 기업들도 고유의 서체, 컬러 마케팅, 브랜드 로고와 굿즈 제작 등, 소위 말하는 BI(brand identity), CI(Corporate Identity) 부문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시각화된 기업의 이미지는 고객과의 최접점에 노출되며 기업의 가치와 철학, 비전이 담기게 된다. 제품 혹은 서비스가 소비자에게 전하는 경험치는 특정 수치로 계산될 수 없지만, 그 무형의 가치는 다른 어떤 요소보다 상위에 위치하게 된다. 이미지화된 기업의 브랜드 가치에는 그만큼 강력한 에너지와 추진력이 실리기 때문이다.  

 

자전거 보관소 및 편의시설 안내표지판

 


자전거, 유모차, 휠체어 등이 탑승가능한 열차칸의 인포그래픽  

 


친절한 디자인
북유럽 거리 곳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위의 사례들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담겨있음을 본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 그리고 장애를 가진 이들까지 모두 아우르는 쉽고 직관적인 방법을 택한다. 세세한 설명이나 텍스트 없이도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기 위해서는 디자이너의 공력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두가 공평하고 평등하다’는 북유럽 사회의 분위기도 한몫 거든다. 이 문장에는 물론 일장일단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디자인 분야에서는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요소이다. 이같은 북유럽의 태도가 여러모로 디자인에 긍정정인 영향력을 주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어떤 결과물을 내기 위해) 디자이너가 펜을 드는 순간은 타인을 위한 배려심이 작동되어야 하는 순간일 것이다.

북유럽을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보폭을 좁혀 ‘천천히’ 걷는 것을 추천한다. 거리 곳곳에서 기다리는 디자인의 이야기들이 당신에게 말을 걸어올테니까. 그것도 아주 친절하게 말이다.  


글_ 조상우 객원편집위원(www.sangwoo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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