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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아 우리 시대 계단 디자인은 어디에? 2003-07-09 |박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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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시대 계단 디자인은 어디에?


    전시명 : 계단을 위한 레퀴엠(Requiem for the Staircase)
    전시 장소 :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대 문화 센터(Centre de Cultura Contemporania de Barcelona)
    전시 기간 : 2001년 10월 25일-2002년 1월 27일까지

    유모차가 긴 계단을 걷잡을 수 없이 굴러내려가는 장면을 담을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고전 영화 <전함 포템킨>. 여주인공이 층계 난간을 잡고 끝없이 아래로 펼쳐지는 사각 소용돌이 계단 아래로 내려다 보는 장면을 담은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 <현기증(Vertigo)>. 그리고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 미로와 레오노라 캐링턴, 르 코르뷔지에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 이르기까지 계단은 영화 외에도 이미 인류 고래부터 독특한 미학적 상징적 의미를 지닌 건축 디자인의 주요 요소였다.

    계단은 종말했는가?
    인간 문명사에서 계단(stairs) 혹은 층계(staircase 또는 stairway)라는 건축 구조가 탄생한 시기에 대한 정설은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 태산 산기슭에 정상으로 이어지는 화강암 돌계단과 기원전 2천년전에 지어진 고대 이집트 사원의 탑문은 그같은 인류 최고(最高)의 흔적으로 알려져 있다. 건물 내부의 한 층에서 다른 층으로 이동하는데 필요한 건축상의 연결구조로서의 기능을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단은 종교적 정치적 위력을 과시하기 위한 권위와 권력 표현의 상징물로 사용되어 왔었다. 서양 고대와 중세 시대 중심도시 곳곳에 세워져 귀족들의 권력을 상징하던 기념비, 중세 교회 건물 안 계단 통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실내 건축을 장식하던 위풍당당한 층계들은, 첫째, 건축의 기념비적 외관을 강조하고 둘째, 그로 인해 보는이를 압도하는 경외감을 자아내려는 상징적인 구조물들이었다. 하지만 근대기로 접어 들면서 건축 기술이 발전하고 특히 전기로 작동하는 이른바 ‚움직이는 계단’ 즉,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계단은 점차 그 자취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오랜 논쟁끝에1992년 미국에서 계단 안전에 관한 장기적인 논란과 관련 법률이 제정되면서, 계단은 더이상 건축 미학의 표현 수단이라기 보다는 안전상의 장애물로 전락하였다. 계단 설계에 관한한 전에 없이 융통성없는 법적 제한 덕분에 건축가들은 계단을 이용한 건축미 표현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계단은 과거지사의 사물로 전락하여 멸종의 위기를 맞았다...계단은 건축가의 „미적 과단성을 표현“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했다. 그대신 계단은 표준 규격을 준수해야 하는 순수히 기능적, 주변적, 소외된, 보일러실과 다름없는 서비스 공간이 되어 버렸다“고 지적하는 이 전시의 기획자 겸 디자이너 오스카르 투스케츠 블랑카(Oscar Tusquets Blanca)는 한탄한다. 그리고 바로 그 문제의식은 이 전시의 컨셉을 제공한다.

    디자이너도 큐레이터일 수 있다
    대다수 디자인 전시회와는 다르게 이 전시를 기획한 장본인은 건축미술사 전문가도 평론가도 아닌 디자이너이다. 스페인 카탈로냐 지방의 중심 도시 바르셀로나 태생이면서 이곳에서 줄곳 활동해 온 건축가 겸 디자이너 겸 취미 화가 오스카르 투스케츠 블랑카는 평소 건축 디자인 프로젝트를 맡아오면서 응축시켜온 계단 디자인의 도전을 <계단에 대한 레퀴엠>이라는 제목으로 정리하고 있다. 디자인사를 포함한 미술사는 물론 주변 인문학에 이르는 논리적이고 지적인 비평 능력을 갖춘 디자이너들이 속속 등장하고 요즘, 그같은 디자이너들의 주도로 각종 디자인 전시회 및 비엔날레 행사가 기획되고 있는 최근 추세는 디자이너도 시각 예술계의 거시적인 시각(big picture)을 제시하고 평가할 수 있음을 선언하는 신조류이다. 평소 계단의 미헉에 유난히 관심을 가져온 한 디자이너가 스스로의 디자인 과정에서 얻은 감상과 통찰력을 총정리했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이론적이라기 보다는 감성적인 측면이 강하다. 계단에 대한 종말을 고하듯 붙여진 이 전시의 제목 „계단을 위한 레퀴엠“ 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계단이라는 장황하고 상징적인 형식미를 찾아보기 어려워진 근현대 건축계를 일면 한탄하는듯 한 극적인 느낌을 암시하고 있다.

    전시의 구성
    „계단의 위한 레퀴엠“전은 다른 전시들이 흔히 택하는 시대적 나열법 대신 계단이 취할 수 있는 13가지 형식적 모형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전시를 기획한 투스케츠 블랑카 자신이 탐구해 본 계단에 대한 여정이 느껴진다는 점이 독특하다. 그는 그래서 이 전시를 방문한 관객들이 구체적인 지식 보다는 계단을 독특한 건축 구성물의 하나임을 감성적으로 느끼고 동감한 후 전시장을 나서기를 바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오늘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로 대체됨으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계단의 종말 현상은 안전이라는 이름하에 제정된 융통성없는 계단 안전 법률이 큰 몫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단을 미학적 건축 요소로 활용할만큼 안목을 지닌 건축 디자이너들의 수가 나날이 급감하고 있다는 데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큐레이터 투스케츠 블랑카가 제시하고 있는 13가지 형식적 계단 모델들(직선형 계단, 곡선형 계단, 반원형 계단, 다중 계단, 공중 계단, 불가능한 계단 등..)은 축소 모형품, 평면설계도, 사진 자료, 관련 문학 및 시구절이 적힌 판넬 설치로 관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계단 모델마다의 실제 규모 실물을 특수 설치하여 관객들이 계단을 오르고 내리면서 직접 „물리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전시 효과를 높이고 있기도 하다.

    직선형 계단은 2단 층계(step)로 이루어진 아주 겸손한 형태로부터 서양 고대 신전이나 박물관, 궁전, 재판소같이 위엄을 중시하는 고전적 양식 계열의 건축물에서 흔히 발견되며, 폭이 유난히 넓게 설계되는 것이 특징이다. 미스 반 데로 로헤가 40년대 후반 일리노이주 플라노에 설계한 판스워드 하우스와 알도 로시의 세그라테 기념비 이미지를 담은 사진 자료 외에도 유화, 판화, 드로잉 작품들이 함께 전시된다.

    >벽으로부터 돌출된 계단은 한 쪽 벽면을 의지해 지탱되도록 설계된 계단으로 가장 원시적인 계단 형태 가운데 하나이다. 알바 알토와 요셉 마리아 소스트레스(Joseph Maria Sostres)의 작품 사진을 비롯해서 스페인이 자랑하는 초현실주의 미술가 호안 미로의 목탄 그림 <계단을 오르는 나체의 여인>(1937)이 선보인다.
    >4분 회전 계단은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 직선형 계단을 180도 회전시켜 올린 계단 형식이나 독립적인 조각 오브제같은 예술적 인상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흔히 사용되었다. 전시에 포함된 알바 알토와 카주요 세지마의 디자인은 그런 대표적인 예들이다.
    >2분 회전 계단은 공간 절약에 가장 효율적이며 건축이 쉬운 계단 형식이라는 장점 때문에 일반 아파트나 정원 설치용으로 널리 활용된다. 시각적인 무난함 때문에 특출난 건축 디자이너의 설계를 필요로 하는 계단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펜실바니아 베어런 하우스(1936-39)는 그런 예이다.
    >다중 회전 계단은 보기에 복잡다단할 뿐만 아니라 다른 구조나 통로로 전환하는데 즐겨 활용되어 환상적인 분위기 조성에 효과적이다.
    >황실 궁전 계단의 주요 특징은 평면도, 높이, 측면도가 완벽한 대칭구조를 이루며, 계단 밑바닥과 바로 위층 표면이 항상 밀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 건축사는 이같은 형식의 계단 설계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삼바 스텝 계단은 인류 가장 오래된 층계 구조이며 발을 내디딜때 마다 엉덩이를 교대로 좌우로 움직이게 한다고 해서 이 전시는 삼바 스텝 계단이라고 부른다.
    >공중 계단은 중력의 법칙을 거부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영원한 욕망이 드러나는 이 계단 형식은 공중에 뜬 것과 같은 특수 효과를 거두기 위해 금속이나 유리를 재료로 현대 건축가들이 즐겨 사용한다.
    >난간을 거부하는 계단은 손잡이 난간없이 층계 자체만의 미를 강조하려는 미술가와 디자이너들이 즐겨 사용해 온 형식이나, 안전상의 이유로 최근에는 실용적 건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레오노라 캐링턴, 루이스 바라간
    >무작위 계단은 지형에 적응하려다보니 일정한 형태없이 불규칙하게 만들어진 계단을 의미하며 일부 디자이너들은 반기학적, 유기적 형태를 표현하고자 할 때 이 형태를 사용했다.

    >회오리형 계단은 구심점을 중심으로 용수철처럼 휘감듯 연속되는 계단이며 아주 단순한 형태로부터 이삼중의 복합구조까지 다양하며 극적이고 다중 시각 효과를 노리고자 하는 건축물에 사용되어 왔다.
    >상승하강 계단은 서양 중세 필사본이나 드릴러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극적이며 상징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 상승 방향은 천국, 하강 방향은 지옥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바빌론 탑의 계단은 바로 이 상승하강 계단 구조를 하고 있다.
    >불가능한 계단은 문자의미 그대로 불가능한 계단으로 인간의 환상과 상상력 속에서만 존재한다. 따라서 설계와 건설이 불가능하고 오로지 그림으로만 가능하다.

    이상 13가지 계단 모형을 차례로 보고 경험한 관객은 마지막으로 투스케츠 블랑카가 설계한 비례 계단(the Proportioned Staircase)에서 그가 제안하는 완벽한 기능의 계단을 보고 오르내릴 수 있다. 사용자가 지치지 않고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오르고 내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 비례 계단은 이상적인 수치의 계단 높이와 폭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그 비밀이다. 전시의 마지막은 불법 계단(illegal staircase)라는 소제를 단 전시장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최근 여러 선진국가들이 계단 설계에 대한 안전 수칙과 이동식 계단 대체로 순수하게 미적인 계단 디자인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음을 한탄하는 동시에, 그같은 기술적인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현대적 계단 디자인이 멸종되지 않고 계승되길 간절히 염원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투스케츠 블랑카의 지적대로 „진정한 계단 디자인은 주어진 기술적인 제약 가운데에서도 기능성과 공간미의 마술적 결합“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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