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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사진은 80년 광주를 어떻게 기억해왔는가

2013-06-03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진 듯한 사건이나 정리가 끝난 과거사가 여전히 현실을 지배하곤 한다. 내재된 상처나 부채감, 기억은 은연중에 우리의 생활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5.18광주민주화운동은 기념일로 제정되고 신묘역이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뒤엉킨 기억과 해석이 존재하며 누구에게는 깊숙한 상처로 남아있다. 오히려 국가적 차원에서 기억을 무기력화시키고, ‘1980년의 광주’로 묶어두려는 모습까지 보이기도 한다. 역사적인 사건이 사회와 개인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이것이 낳은 문화적인 변화, 사람들의 기억의 문제로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한 그것은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글│이종화 기자
기사 제공│월간사진

사진적 방법론에 질문하는 전시
올해 33주년이 되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주제로, 역사적인 사건을 사진이 어떻게 재현해왔는지를 일별하고, 점검해보는 의미 있는 전시가 열린다. 부산 해운대의 고은사진미술관이 2개관(고은사진미술관, 고은 컨템포러리 사진미술관)의 전시공간을 모두 할애해 준비 중인 5.18 사진전 '그날의 훌라송'(5월18일~7월31일)전이 그것이다.

'그날의 훌라송'은 5.18 당시 광주에서 시위대들이 자주 부르던 상징적인 음악인 훌라송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한편 훌라송은 계엄사가 홍보방송에 배경음악으로 썼던 군가이기도 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군가를 원곡으로 하는 훌라송은 사실 전쟁에서 다리를 잃고 돌아온 남편을 원망하는 ‘Johnny I hardly knew ye’라는 아일랜드의 유명한 반전 노래에서 기원한다. 이처럼 전쟁을 원망하는 노래가 승전가로 바뀌는 현실의 부조리함, 서로의 입장에 따라 다른 해석이 등장하는 엇갈린 역사를 풍자하는 동시에 그날의 사건을 자기식으로 기억하고 짜깁기하는 오늘날의 현실에 대한 은유가 '그날의 훌라송' 전시제목에 담겨있다.

전시는 다큐멘터리, 포토저널리즘, 순수사진 등 다양한 층위에서 지금까지 사진가들이 작업해온 5.18 관련 작업을 모두 모으고, 여기에 사학자와 문화비평가, 사진평론가 등이 각자의 영역에서 ‘기억’에 관한 글을 쓰고 ‘사진과 기억’을 주제로 세미나를 갖는 등 전시와 학술적인 논의가 유기적으로 엮인 형태로 준비된다. 5.18을 주제로 하지만 특정 사건에 한정되지 않고 역사적인 사건을 다뤄온 사진매체 전반을 탐구하는데 비중을 할애한 것이다. 전시기획을 맡은 송수정(사진기획자)은 “5.18 당시 상황을 조명함으로써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전시가 아니라 1980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5.18이라는 묵직한 사건을 사진이 어떻게 목격했고, 기억해왔으며, 재현해왔는가에 질문을 던지는 전시”라며 “따라서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전시라기보다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사진적 방법론에 관한 전시”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5.18을 다룬 몇몇 사진전시가 있었지만 사건현장의 보도사진을 위주로 한 단편적인 전시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지난 2008년 사진아카이브연구소의 이경민 대표가 기획한 '오월의 사진첩'전이 눈에 띈다. 전시는 항쟁에서 희생된 18명이 생전에 촬영한 가족사진이나 야유회 사진 등 기념사진을 한자리에 모았다. 비극적인 죽음 이전에 이들이 살았던 평온한 일상과 소중했던 사람을 보여줌으로써 5.18을 기억하는 또다른 방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미지의 계열은 다르지만 '오월의 사진첩'과 '그날의 훌라송' 두 전시는 5.18을 표상하는 판에 박힌 이미지에서 벗어나 전자는 기억의 다른 방식을 제시하고, 후자는 사진과 기억의 문제를 파헤친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사건을 다룬 기획전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한다.

11명 작가의 5.18 사진작업 소개
'그날의 훌라송'전은 5.18 당시에 찍힌 사진부터 현대의 컨템포러리한 사진까지를 한데 모았다. 이를 통해 작가마다 사진을 찍게 된 다른 맥락을 가늠할 수 있으며, 이는 전시를 기획하게 된 목적 중 하나와도 맞닿아 있다. 송수정은 “우연, 부채의식, 트라우마 등 작가마다 서로 다른 작업의 계기만큼 우리 사회에서 5.18은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누구에게는 종료된 사건이고 누구에게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사건으로, 마치 돌림노래처럼 반복되고 있다”고 말한다. 참여작가들의 스타일을 고려하더라도 작업의 계기나 스며든 이야기에서 5.18을 대하는 다양한 스펙트럼과 왜 5.18이 진행형의 사건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에는 강홍구, 권순관, 김은주, 김혜선, 나경택, 노순택, 오석근, 오형근, 이상일, 이창성, 조습 모두 11명의 작가와 광주 시민들이 찍은 사진이 선보인다. 1부 전시장인 고은사진미술관에서는 다큐멘터리 작업과 포토저널리스트들의 사진이 주로 소개된다. 5.18 당시에 사진기자로 현장에 있던 중앙일보의 이창성, 전남매일의 나경택 두 기자가 촬영한 필름이 한롤씩 2미터 가까운 대형 밀착으로 벽에 걸린다. 5월17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의 항쟁 기간 동안에 두 사람이 촬영한 사진은 당시 신문에 실리지 못했다. 언론의 직무유기이면서 신문기자에게는 공백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그날의 훌라송' 전에서는 이 공백의 시간을 복원시키는 의미에서 셀렉트 없이 필름 한롤 전체를 밀착한 날것 그대로를 항쟁의 날짜별로 보여준다. 흔들리고 초점이 안 맞는 사진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얼룩진 필름의 상태는 내러티브 형식으로 당시 현장을 보여주면서 현장에 있었지만 유령 같았던 포토저널리스트들의 상황을 대변한다. 특히 5.18 이전부터의 상황의 변화를 꼼꼼하게 기록한 나경택의 필름은 최근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5.18 당시 진압군으로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사진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이상일은 20여년에 걸쳐 작업해온 ‘망월동’을 전시한다. 영정 속 망자를 대하는 그의 사진 속 미세한 떨림은 광주라는 역사성과 인간의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노순택은 기억의 매체인 사진을 통해 역설적으로 역사적 망각을 이야기하는 ‘망각기계’를 전시한다. 분단이 남긴 흔적을 좇다 10여년도 훨씬 이전에 광주까지 오게 된 노순택은 희생자들의 오래된 영정사진, 울분과 한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화순 운주사의 불상을 통해 망각과 기억을 오버랩시킨다. 강한 여성의 표상으로 어머니를 떠올린 김은주는 5.18 희생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사건 현장을 찾아가 그 장소에서 어머니들의 초상사진을 찍었다. 김은주의 ‘오월어미니’ 작업은 기억과 인물, 장소성에 대한 질문을 함께 던진다.

기억의 반복을 통해 역사 속의 아이러니를 발견하고 드러내는 다큐멘터리 사진에 이어 1부 전시장의 마지막은 광주 시민들에게 수집한 5.18 당시의 결혼사진 등 기념사진들이 채운다. 계엄군의 작전명 ‘화려한 휴가’가 어떻게 이들의 화려한 봄날을 일그러뜨렸는지를 통해 누구도 당시의 따뜻한 추억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트라우마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낡은 필름과 당시 일상사진도 공개
2부 전시장인 고은 컨템포러리 사진미술관에서는 6명이 작가적 시선으로 5.18을 재해석한 작품이 전시된다. 먼저 강홍구는 다른 작가의 사진이나 이미 찍힌 사진 위에 또 하나의 이미지를 덧입혀 새로운 시각적 레이어를 만든다. 오형근의 작품이나 김녕만의 5.18 보도사진 위에 절규하는 자신의 모습이나 연꽃 등을 합성해 1차 이미지에서 느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강홍구는 1976년에 목포교대를 졸업하고 5.18 당시에 목포에서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1973년 전북 전주 출생인 권순관은 금남로, 기념공원 등 광주의 역사적 장소에서 터무니없는 상황을 연출해 대형 카메라로 촬영함으로써 기억의 무기력함에 관해 묻는다. 희생자의 어머니를 모델로 연출한 사진이나 상무대가 이전하고 난 뒤의 빈 공터를 찍은 사진은 버려진 기억의 원형을 보는 듯하다. 김혜선은 상무대가 이전하고 아파트가 들어선 풍경을 통해 5.18을 기념하는 방식에 관해 묻는다. 30대 작가인 오석근과 조습은 연출사진으로 5.18의 미완의 문제를 현실로 가져온다. 먼저 오석근은 텅빈 거리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희생자와 행방불명자, 계엄군들의 연출사진을 찍어 현재까지 치유되지 않는 망령들의 한을 이야기한다. 조습은 학이라는 작가의 분신을 통해 마치 마당극처럼 역사적 사건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한편 오형근은 지난 1995년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 제작에 사진가로 참여하면서 촬영 현장에서 포착된 가짜와 진짜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진은 진짜 영화배우와 엑스트라로 참여한 시민 그리고 구경꾼인 진짜 시민들이 사진 한장 속에 중첩되거나 경찰로 분장한 영화배우와 현장 정리를 위해 파견된 진짜 경찰이 같이 등장한다. 그의 사진은 묘한 시선의 차이 혹은 그 어떤 차이도 담아내지 못한 채 우리에게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묻는다. 이는 사진이 어디까지를 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까지 확대된다.

‘사진과 기억’학제간 논의도 모색
5.18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다양한 층위의 사진들은 모두 기억의 문제와 연관된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 그리고 이를 기록, 재현해온 사진작업은 5.18이 우리 사회와 개인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추적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여기에 3명의 필진들이 '그날의 훌라송' 전시와 맞물려 5.18이 우리 삶과 문화, 사진에 미친 변화와 그 과정을 기술하고, 전시 개막 다음날인 5월19일 오후 1시에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참여작가와 관객들과 함께 ‘사진과 기억’을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먼저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의 저자 정진성(사학자, 부산교대 사회교육과 교수)은 트라우마와 문화적 기억의 문제를, ‘1960년대를 묻다’의 저자이자 문화비평가 겸 국문학자인 천정환(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은 5.18이 80년대 이후 우리 삶에 개입해온 방식을 주제로 글을 쓴다. 사진평론가 이영준(계원예대 디자인예술대학부 교수)은 5.18을 처음으로 알린 등사기의 ‘찌라시’ 사진부터 화이트큐브로 들어온 작품사진까지 5.18에 관련한 사진적 태도의 변화를 추적한다.

'그날의 훌라송'전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다양한 사진적 시각을 전시와 학제간 논의로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근래 보기 드문 전시이면서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된다. 그동안 사건 자체를 다루었든 순수 미학적 관점에서 접근했든 역사적 사건은 점차 기획전시의 대상에서 멀어져온 것이 사실이다. 작업의 부재나 기획 역량의 부재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현실을 기록하고 재현하는 사진매체의 특성을 보다 확장하고 사유하는 시도가 드물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그날의 훌라송'전은 5.18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사진이 어떻게 표현해왔는지를 다양한 시기별, 장르별 사진작업과 이미지를 통해 만나면서 동시에 현재의 사진적 방법론에 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장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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