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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물음표를 찍는 현장의 사진가

2012-07-12


동강사진상 수상 축하를 건네는 수화기 너머로 연신 함성과 구호 소리,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노순택(42)은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하여 한창 대립 중인 제주 강정마을에 있었다. 당시 그곳은 구럼비 바위 폭파를 두고 막으려는 쪽과 강행하려는 쪽이 벼랑 끝에서 맞서고 있었다. 그곳에서 노순택은 언제나 그렇듯 현장을 지키며 부조리함의 극치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글│현정아 기자
기사 제공│월간사진

동강국제사진제를 주최하는 동강사진마을운영위원회는 올해 제11회 동강사진상 수상자로 노순택을 선정했다. 심사위원들은 노순택에 관해 “한국전쟁 이후 분단의 상황이 야기한 한국사회의 폭력성과 전쟁의 내면화를 다룬 사진작업을 지속해왔다. 우선 발표하는 작품의 양이 방대하고 모든 작업에서 진지한 대상 접근이 돋보인다. 특히 그가 발표한 ‘얄읏한 공’ 시리즈, ‘비상국가’ 시리즈, ‘좋은, 살인’ 시리즈 등은 현실 문제를 접근하는 시대정신이 치열하면서도 미학적 완성도 또한 매우 고양되어 있다”며 심사평을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를 차치하더라도 수상자로서 노순택을 다시 생각게 하는 것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현장의 뜨거운 함성과 그의 절절함이었다. 대추리, 용산, 강정마을까지 끝까지 현장에 머무르며 공감하고 고민하는 사진가가 노순택이다. 경황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수상 소감을 물었다. “제겐 과분한 상입니다!”짧은 한 마디가 돌아왔다. 그러나 그 뒤에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의 사진처럼 많은 생각을 머금게 만들었다.

국가라는 괴물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진가

현재 강정의 상황은 어떤가? 그 현장을 어떤 식으로 담고 있는가?
여러 매체가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을 일제히 보도하고 있지만 정작 이곳은 어떤 식으로 해군기지가 추진되고 있는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안보와 애국이라는 거대한 이야기, 지역발전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세우지만 사실 제주 해군기지는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단기적으로는 삼성과 대림 등 건설재벌들의 이익을 위한 저질토목사업이다. 이곳은 지금 오순도순 정답던 마을공동체를 갈가리 찢고 ‘구럼비’라는 아름다운 해안암반습지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또한 1,500여명의 주민 가운데 겨우 80여명을 모아 기습적으로 주민총회를 연 뒤 그것을 ‘주민동의’라 부르고 있다. 이 사업은 행정절차의 오류, 기지설계상의 오류, 시뮬레이션의 오류 등 가히 오류백화점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오류투성이 사업이다. 이 작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다가 경찰에 연행 구속된 사람만 400여명에 이르며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던 국제평화운동가가 배를 걷어차이는 일도 벌어졌다. 난 2008년부터 이 마을을 오갔다. 국가가 어떤 식으로 괴물이 돼 가는지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생각하는 것, 그것을 사진과 글로 엮어내는 것이 나의 일이다.

‘노순택의 사진은 중립적이고 풍자적이다’는 평이 많다. 폭력과 대립, 비이성이 난무하는 현장에서도 그런 중립적인 감정이 가능한지 궁금하다. 현장에서 어떤 감정과 자세를 갖고, 무엇에 주목하는가?
현장 상황이 진행형일 때는 그 현장과 ‘지금 당장의 연대’를 모색한다. 함께 유인물을 만들거나 포스터, 책, 기금마련 활동도 한다. 하지만 그런 직접적인 호소만이 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음의 온도와 작업의 온도는 다를 수 있고 또 어느 경우엔 달라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의 급박한 상황이 지나간 뒤라면 더 냉정한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내가 보여주려는 작업은 ‘설득’이나 ‘호소의 이미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회와 나 자신에 대해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가령 ‘내 앞에 펼쳐진 이 장면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장면을 바라보는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같은 의문들 말이다.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은 설득이나 감동 같은 느낌표가 아니라, 차라리 물음표 같은 것이다. 중립적인 감정 따위는 없다. 다만 감정을 얼마만큼 감추고 드러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뿐이다.

‘중립적인 시선’, ‘미학적 완성도’ 등이 노순택식의 차별화된 다큐멘터리 사진을 수식한다.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중립적인 시선’이라는 말은 칭찬인 동시에 모욕이고 모욕인 동시에 칭찬처럼 들린다. 언젠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 기사 제목이 ‘탈이데올로기를 외치는 사진가’라고 나가 반론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탈이데올로기를 외치는 사진가가 아니라, 친이데올로기를 고민하는 잡놈’이라고 표현한 기억이 난다. 나의 작품이 오늘의 정치적 풍경을 희화화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이 정치에서 벗어나자는 메시지는 아니다. 나쁜 정치를 욕해야지, 모든 정치에 혐오의 시선을 던지면 그것이야말로 나쁜 정치를 돕는 것이라 생각한다.
미학적 완성도의 문제는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사진이라는 ‘이상한 매체’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다. 내가 보여주는 것은 장면의 의미와 그것을 드러내는 사진이라는 형식이다. 모든 발언은 그 발언의 내용과 함께 발언을 드러내는 방식에 대해서도 말한다고 생각한다. 시각적 형식의 문제는 언제부터랄 것도 없이 늘 안고 가는 것이다. 항시 고민해 왔으며, 이 고민이 풀리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6년간의 광주 작업 5월에 출간과 전시

포토저널리스트로 출발해 미술계에서도 인정받는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을 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아티스트 중 어디에 더 가까운가?
어떻게 보면 지금의 내 좌표가 참 애매하다. 남들이 붙여주는 타이틀이 오히려 흥미롭다. 굳이 비유하자면 ‘넝마주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이 사회가 흘리고 다니는 장면의 넝마를 주워다가, 한참 바라보거나 깁거나 섞어서 그걸 사진과 글로 흘리고 다니는.

노순택에게는 사진 이외에도 텍스트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작품에서 텍스트가 어떤 의미이고, 얼마만큼의 비중으로 자리하는지 궁금하다.
늘 공부하지만 늘 모르겠다. 사진은 쉬운데 글은 어렵다. 또 글은 쉬운데 사진은 어렵다. 그야말로 갈팡질팡하다. 내게 텍스트는 쓰는 것의 비중보다 읽는 것의 비중이 더 크다. 사진이라는 매체는 굉장히 ‘대상의존적’인데 그 대상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사진가는 사진으로 말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지만 ‘사진가는 사진으로만 말해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사진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사진만으로는 부족한 순간이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글을 끼적댄다. 내겐 무척 중요한 일이다.

사진과 글을 읽다보면 문득 분노보다 회의가 느껴질 때가 있다. 20년 가까이 하나의 큰 주제로 작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
그런 힘은 없다. 안간힘도 힘이라면, 아마도 그게 아닐까. 사진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단한 걸 꿈꾸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어떤 장면을 중계함으로써 사고를 촉구하길 바랄 뿐이다.

독일에서의 전시가 상당한 반향을 이끌었다.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담은 내용이 외국 관객에게 어떻게 보였는지 궁금하다.
2008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쿤스트페어라인에서 ‘비상국가’라는 큰 타이틀 아래 8개의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전시였다. 분단한국이 겪어온 작동과 오작동의 문제들, 만들어진 위기, 만연한 폭력, 근현대역사에 대한 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다뤘었다. 비상국가라는 타이틀은 독일 근대사가 품고 있는 ‘비상사태법’에 관한 논의도 포함하고 있다. 디렉터 한스 D.크리스트와 공감했던 것은 이 전시가 분단한국이라는 어느 아시아 국가의 별스런 이야기로, 독일인들에게 눈요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특수한 문제를 다루되, 그 이야기가 독일사회를 반추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아 함부르크와 바르셀로나에서 순회전시를 열 수 있었다. 또한 독일의 대표적인 미술출판사인 핫제 칸츠에서 전시작업과 평문, 인터뷰 등이 수록된 사진집이 출간되었고 그해 ‘올해의 독일사진집’ 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걸 배운 시간이었다.

올해 계획은 무엇인가?
지난 6년 동안 틈틈이 진행해 왔던 ‘광주’에 관한 작업을 정리하고 있다. 5월에 책이 출간되고 학고재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1980년 광주항쟁을 역사적으로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광주의 현재성, 광주의 기억과 망각, 복잡한 생각들을 5개의 장으로 나누어 얘기하는 작업이다. 제목은 ‘망각기계’이다. 죽은 자, 죽지 못한 자, 장소, 말 그리고 제5의 공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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