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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된 문화공간, 외교사료관

2006-05-04


우면산 북쪽 산자락에 외교센터, 외교안보연구원과 함께 자리잡은 외교사료관은 우리 정부의 주요 외교문서 등을 분류하고 보관하는 곳이다. 1,840평 중에서 500평을 차지하고 다른 기능도 이에 준하는 것이 많은 만큼, 외부에 대해 아무런 표정도 없이 굳게 닫혀 있는 이 서고가 바로 건물의 존재 이유이다.

본래 이 건물의 계획 대지는 외교안보연구원 바로 뒤편이었다. 이런 조건에서 찾아낸 해법은 외교안보연구원의 서쪽 벽에 맞추어 지금과 똑같은 모양을 길게 배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본설계가 완료되기 직전, 새 건물이 연구원의 북쪽 현관과 너무 인접해 있다는 점, 테니스장이 없어진다는 점, 외교센터와 연구원 남쪽 대지의 한가운데를 가로막는다는 점을 들어 지금의 외교센터 남쪽 대지로 건물을 옮겨줄 것을 통고받았다. 그럼에도 건물의 형상과 배치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글_김광현|사진_김용관


건물은 외교센터의 중심 축에 맞추어 고속도로와 나란하게 배치해야 했으므로, 결과적으로는 외교사료관 등 세 채의 건물이 L자로 대지 전체를 에워싸게 되었다. 기능과 형태가 똑같은 건물을 위치만 바꾸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주진입 옥외계단 수가 많아졌고, 진입과정에서 건물이 다소 높아 보이며, 남쪽의 선큰가든이 깊어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전 자리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이웃하는 외교안보연구원과 양재고등학교, 그리고 자연이 외부공간을 더 넓게 에워싸게 되어 결과적으로 만족스럽다.

단순한 형태의 외교사료관에 비하면 연구원의 남쪽 마당, 우면산 자락 그리고 서쪽을 스쳐 지나가는 고속도로 등 건물을 둘러싼 외부공간은 너무 넓다. 또한 지상면적 중 닫힌 보존서고가 40%이고 공용면적이 30%여서 이러한 널찍한 외부공간에 견줄 만한 다양한 내부공간을 획득할 수 없었다.

이를 위해 로비 앞 넓은 마당, 외벽과 서고 사이의 지하에서 천장까지 트인 좁고 긴 공간과 지하로 내려가는 직선계단, 그리고 지하의 선큰가든을 통해 풍경을 만들어내는 일이 중요했다. 동서의 좁은 변으로는 다양한 공간을 얻어내기 어렵기 때문에, 남북의 진입동선 방향을 따라 크고 작은 공간이 전개되게 하였다. 이에 비하면 1층의 로비는 비좁은 편이지만, 방문객은 외부로 개방된 외교사료관을 좁은 로비의 연장으로 인식하게 된다.


지상 2층과 3층 북쪽의 반은 조밀한 사무공간이다. 과는 그리 많지 않지만 각각 독자적인 서고를 안고 있어서 패쇄적인 사무공간으로 머물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사무실의 출입 복도를 로비에 면하도록 하거나 가운데 중정을 두었다.
재료는 전체적으로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하였고, 보존서고에는 내후성강판을 썼다. 보존서고의 닫힌 매스를 조형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내후성강판을 내부까지 연장시켰으며, 이 매스가 독립적으로 보이도록 1층 외교전시관의 외부 유리에 샌드 블러스터 처리를 했다. 또한 외교전시관의 외벽을 이중유리로 처리한 것은 직사광선을 막아 귀중한 외교문서를 보호하고, 전시관의 내부공간을 심리적으로 확장하기 위함이다. 그 결과 서측면에서는 불규칙하게 마감된 지하층의 화강석 마감을 하나의 포디엄으로 삼아 노출콘크리트 벽과 내후성강판의 매스가 올라가 있는 단순한 형태가 되었다.

정면의 유리면은 톱니 모양으로 분절하여, 외부 풍경을 달리 비추는 두 개의 면이 안쪽의 내후성강판과 함께 겹쳐 보임으로써 입체적으로 보이게 했다. 사무실영역의 노출콘크리트 프레임에는 불규칙하게 배열한 갤러리 행거 도어를 설치하여 자칫 분리되어 보일 수 있는 좌우의 두 부분을 완화시켰다.
우면산 자락의 녹음과 함께 하는 선큰가든은 외교사료관 가족의 사적인 정원이다. 그러나 강당은 직원만의 것이 아니다. 120석 규모의 작은 공간이지만, 항상 개방되는 문화공간으로 공개강좌나 외교통상부 직원의 결혼식도 열릴 수 있다. 이를 위해 강당의 뒷면은 모두 문으로 계획해 개방될 수 있도록 했다. 날씨가 좋으면 미처 들어오지 못한 손님들이 함께 하기도 하고, 강의 후 자연스럽게 선큰가든에서 파티를 열 수도 있다. 이렇듯 건물이란 풍경과 재료와 사람이 엮이며 만들어지는 것이다.


루이스 칸은 예배당의 예를 들며 예배를 위해 안에 들어오는 사람, 예배에 들어갈 것인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한 사람, 그리고 그저 별 생각 없이 예배당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 모두에게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건물이란 사람을 위한 것이고, 그것도 건물을 둘러싼 여러 종류의 사람에게 여러 의미를 지녀야 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처럼 건축 안에서 움직이고 기대고 바라보고 모이고 일하며 외부를 응시하기도 하고 어딘가에 자신의 신체를 기대일 수 있게 하며, 하나의 행위가 아니라 그 행위에서 계속 파생하는 또 다른 행위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에 언제나 관심이 많다.

그렇지만 사람의 행위는 건물 안에만 머물지 않고, 건물은 언제나 주변을 향해 열려 있다. 서쪽 면은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사람을 위한 것이고, 동쪽 면은 서초구청 주차장이나 양재고등학교 교사에서 바라보이는 응시 대상이 된다. 건물로 에워싸인 공간은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일하는 직원에게는 별채와 같은 산책로가 되고, 외교센터에서는 우면산과 함께 바라보이는 풍경의 하나가 될 것이다. 건물의 네 면은 이러한 기대와 응시에 대응하고 있다.

건물을 설명하면서 사람과의 관계도 아울러 말하고자 한다. 건물의 사진촬영을 돕기 위해 찾아간 날, 한 과장님이 지을 때는 몰랐지만 다 짓고 나니 외교안보연구원의 직원들이 이 건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으며, 위원회에서는 건물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기 위해 미술장식품을 놓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전했다. 물론 그 정도의 찬사를 받을 만큼의 건물은 못되지만, 건축하는 이의 즐거움이란 바로 이런 데 있다 할 것이다.

이 외교사료관의 설계는 당시 서울대 건축의장연구실의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동의대 신병윤 교수와 석사 1년생들과 함께 했다. 당시 학생들은 실무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그 대신 나에게 건축의 시작을 진지하게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건물의 전체 윤곽과 형태와 배치는 모두 내가 결정한 것이지만, 부분의 재료와 공간 크기 등을 결정하는 일에서 학생들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메워 준 좋은 동료들이다. 또한 김창원 소장을 비롯한 삼우설계팀은 기본계획이 잘 실행되도록 실무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또 다른 동료였음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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