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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영상 | 리뷰

거칠고 메마른 도시를 적시는 요요의 노래

2002-05-15

얼마전 안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발 본선 진출작의 명단에 이석연 감독의 <요요지가> 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반가움과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궁금증으로 그간의 근황과 작품 제작기를 들으러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양철집(tin house)'은 스튜디오 이름대로 주택을 개조해 양철로 지은 미로같은 구조의 스튜디오였다. 1층에는 아트팀의 제작실과 스톱모션을 위주로 한 모델 제작실이 있었고 2층에는 올해 12월 개봉예정으로 한창 제작중인 장편, <원더풀 데이즈(wonderful days)> 의 제작팀이 바쁘게 작업 중이었다.


단편애니메이션 <요요지가> 의 기획은 1997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요지가> 의 이석연 감독은 인천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한 후, 아트 전문팀 ‘무대와 영상’을 운영하고 있었다. 영상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감독은 <요요지가> 의 초기 컨셉과 스토리를 구상한 후 팀을 구성했으나 결국 운영의 어려움으로 팀을 정리하게 된다. 그 후 창작기반을 새롭게 모색하다가 CF분야에서 독보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문생 감독과 함께 96년 ‘양철집’을 오픈하게 된다.
‘양철집’은 CF, 뮤직비디오, 영화의 특수효과 등에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그 이면에는 이석연 감독을 중심으로 한 아트팀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양철집이 우리나라 초기 CF시장에 스톱모션기법과 미니어쳐를 활용한 입체적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일한 스튜디오자, 이미 무대와 영상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통해 이 분야 기술인력의 산파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대와 영상팀에 있었던 김홍준 감독은 ‘마스코(MASCO)'라는 스톱모션 전문제작 스튜디오를 만들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양철집’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던 이 감독은 기획을 보다 구체화시켜 5년여 만에 2000년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사전제작지원을 받아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하게 된다.

<요요之歌> 는 순수창작 단편애니메이션 작품으로 기획의도에서 “집단적 심리적 공황을 겪게 하는 도시, 이 안에서의 우리의 생각, 원래 기억했던 것, 소망하는 것을 꺼내어 본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군집적 삶 속에 마냥 끌려 다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그 순수성의 회복을 ‘요요’라는 어린 주인공을 통해 염원하고자 하는 감독의 제작의도가 있다.

시나리오는 영화분야에서 예전부터 친분을 쌓아오던 김상우 작가의 것으로 동의를 얻어 영화의 뼈대로 사용하였는데 대략의 시놉시스를 통해 살펴본 스토리는 아래와 같다.

언제나 아파트 옥상에 올라 하늘을 쳐다보며, 별을 바라보는 요요.
시적이고 감성적이며 나이에 비해 조숙한 중1년생.
군집과 욕망의 덩어리인 빌딩숲 아래서 요요는 자기 자신만의 꿈을 꾼다.
학급에서 급우들의 따돌림, 도시의 지나친 속도감,
시멘트 블록의 위압감등이 악몽으로 몰려온다. 도망친다.
악몽과 욕망의 덩어리를 피하여 우주로 뛰어든다. 자신의 세계로....



스토리를 보면 우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근래의 사회적 이슈가 되어온 사건들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무거운 책가방을 둘러메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입시지옥으로 몰아넣는 우리의 현실, 이러한 집단적 무한경쟁 속에 자아를 잃고 방황하는 십대들의 자살과 탈주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무감각하게 안방에 반복적으로 메아리치고 있지 않은가? 이 한 예를 통해서도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의 ‘집단적 서식방식’은 감독의 말대로 자기정체성을 잃은 군집의 덩어리일 뿐이다.
이는 작품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평범한 가정의 주부인 요요의 어머니는 요요에게 무한경쟁의 게임에서 적자생존을 위한 실리적 생활방식을 강요하는 다소 과장된 인정 없고 메마른 정서의 어머니로 묘사되고 있다. 어머니는 요요가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잠시 별을 보며 감상에 젖어있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손목을 잡고 끌고가면서 “별만 보고 있으면 밥이 나오냐, 뭐가 나오냐...”라는 일성으로 기성세대의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다. 이와 대별되는 요요는 사춘기를 막 접어들 나이에 조숙한 아이로 다른 아이들과는 어울리지도 않으며 아파트를 계단으로만 오르내리며 옥상에서 밤하늘 별빛을 바라보면서 순수성을 찾으려는 아이로 묘사되고 있다. 즉 두 캐릭터의 대립적 관계를 통해 강요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을 잘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작품에서 별과 함께 고등어가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는데 고등어는 인간을 위한 먹거리일 뿐인 영양소로 전락한 현실에서 요요는 생물로써의 동질성을 회복하고자 환상 속에서나마 고등어와 함께 별무리 속을 날아다니며 친구가 된다. 즉, 고등어와 요요는 현실에서 냉장고 속의 차갑게 죽은 존재로 누군가에게 먹히는 단백질 그 이상이 아니라는 역설적 동질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요요가 고등어와 하나가 되어 우주를 날고 있는 환상 뒤에 마지막 장면 고등어가 냉장고 밖의 아파트 옥상에서 가쁜 숨쉬기를 하며 펄떡이는 장면은 요요가 우주로 떠나간 자리에 죽음 뒤의 육신 그 이상의 무엇을 우리에게 느끼게 하는 장면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요요는 정말 우주로 간 것일지도 모른다.


<요요지가> 는 이 감독의 전공인 스톱모션(stop-motion)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장인적인 손맛과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여 제작되어졌다.
제작매체는 화질과 색감 등을 고려해 필름으로 제작할 계획이었으나, 35mm 제작이 비용의 문제로 어려워져 16mm ARRI카메라 중고를 개인적으로 구입하여 3개월 여에 걸쳐 촬영을 시도했다. 그러나 빛에 의한 떨림 현상으로 실패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대안을 모색하다 차선책으로 디지털 스틸카메라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때만 해고 스틸카메라를 애니메이션촬영에 활용하는 것은 일반화 되있지 못했지만 화질을 고려해 선택했던 것이다. 초기 촬영 이미지 사이즈는 크게 촬영해 최종 편집할 때 사이즈를 데이터 용량을 고려해 720×486으로 조정하였다. 이를 통해 빛의 깜박임과 화질을 동시에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인형모델과 미니어처 세트는 일반적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제작과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장면 중 아파트입구, 계단, 옥상, 부엌, 놀이터 등은 캐릭터와 같은 비율로 크게 제작하고 나머지 씬은 축소된 미니어처 세트를 사용하였다. 특이한 것은 배경중 원경에 해당하는 도시전경과 아파트 전경은 매트 페인팅(Mat Painting)으로 제작하여 사용하는 등 전통적인 제작방식을 통해 화면의 느낌과 깊이를 살려내고 있다.

디지털 효과는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요요가 별을 보는 장면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장면, 환상 속에서 별무리의 반짝이는 빛 효과 등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를 통해 모델 및 미니어처 제작, 촬영과 영상합성, 사운드 녹음 및 편집 등 모델제작 이후 촬영과정과 후반제작에서 디지털 방식이 적극도입 되었으나 스톱모션기법의 전통적 화면인 재질감과 움직임, 3차원의 공간감을 잘 살려내고 있는 몇 안 되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정을 통해 완성도 있게 마무리된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보통 기존 단편 애니메이션들이 기획 및 제작시 전문적인 스탭 구성 및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아 1인 중심의 제작시스템의 한계를 지니게 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숙련된 스탭진들의 뒷받침이 커다란 몫을 해냈다고 보며, 또한 5백만원 규모의 제작비용으로 턱없이 부족한 예산을 전문 스튜디오 시스템과 인력의 지원을 통해 해결하였던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독 스스로 상업적인 작품의 제작경험과 노하우를 통해 쌓아온 연출력 및 기술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제작스텝]
연 출 : 이 석연
시 나 리오 : 김 상우
애니메이션 : 이 혜승, 박 소영, 장 영미
촬 영 : 황 규백
6mm 촬 영 : 고 영석
오퍼레이팅 : 배 진완
콘 티 : 윤 여송
캐릭터디자인: 이 혜승, 박 소영
캐릭터, 배경제작: 이 혜승, 박 소영, 장 영미, 손 민정, 안 광훈, 장 민석, 박 제성, 손 은정
의 상 : 김 미경
진 행 : 우 승미
작 곡 : 황 연성
녹 음 : 윤 영문 (DR. HOOK)
편 집 : 차 현정
합 성 : 김 윤창, 이 호상
성 우 : 이 현지 (요요), 온 영삼 (수위할아버지), 배 정미 (엄마)

작품성 측면에서의 요요지가는 최근 국제화 또는 상업주의에 편승한 국적불명의 작품스타일과 탈 이데올로기적 문화코드의 작품이 난무하는 가운데, 작가의 정서적 성장과정과 현실체험이 녹아든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문학성 있는 작품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작품 배경이 우리의 이웃 같은 캐릭터와 서울의 밀집한 아파트군, 아파트 옥상, 놀이터 등 일상성의 친근한 이미지로 표현한 것은 연출자의 현실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요요지가‘가 2000년 사전제작지원을 통해 제작의 첫발을 내딛은 후 완성되기까지 3년여의 기간이 소요된 것은 스튜디오에서 다른 상업적 외주작업을 하면서 짬짬이 시간을 할애해 제작하다보니 길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제작에 투여한 시간을 계산하면 1년여 남짓 소요되었다고 한다. 이는 결국 제작비의 문제로 다시 환원될 수 있는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제작비가 2D 셀 애니메이션 제작비의 2배 이상이 소요되어 독립적인 방식으로 제작할 경우 작업자가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는 최소의 예산확보가 어려운 현실에서 현 사전제작지원의 규모가 터무니없이 낮아 결국 작품의 질이 담보될 수 없는 단편 작품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문제지적에 이감독도 동의하고 있다.

이석연 감독은 외향적이기 보단 내부의 에너지를 작품에 집중하여 표출하는데 익숙한 또 한 명의 아티스트로써 상업적 일과 창작을 균형 있게 일궈내 성공적으로 본인의 작품세계를 선보인 소장감독으로 다른 상업적 감독에 신선한 감을 주기에 충분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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