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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일러스트? 일러스트레이션?

2010-03-11


일러스트레이션이란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해 ‘그림과 비슷하지 않을까’라고 대답할 듯싶다. 물론 틀린 대답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면 이런 질문이 뒤따라 오지 않을까. 그럼 회화와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을 곰곰이 생각하니 갑자기 머리 속이 하얗게 되면서 TV에서 많이 나올 법한 대사가 떠오른다. 가서 공부해!

글 | 조용준(일러스트레이터, 제로원디자인센터 강사)


사실 일러스트레이션과 회화의 차이에 대해서 누군가 물어온다면, 이에 대해 쉽고 명료하게 대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리 속으로 뿌옇게 이미지만 그릴 뿐 구체적인 설명을 하려면 막막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물론 필자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일러스트레이션이란 “제3자에게 무엇인가 의미를 전달하거나 내용 암시에 사용하기 위해서, 목적이나 용도에 의해 아이디어를 만들고 표현 형식이나 기법을 정하여 그리는 그림”이라고 적혀있다. 어느 정도 정의를 내려주기는 하지만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 답을 찾기 위해 먼저 우리 주변의 일러스트레이션의 사례를 살펴 보도록 하겠다.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책이 아닐까 싶다. 동화책, 또는 소설책이 쉽게 손에 잡힌다. 책 중간중간에 글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삽화, 첫 번째로 발견한 일러스트레이션이다. 그 책이 동화책이라면 글보다는 그림의 비중이 훨씬 더 클 것이다. 여기서 일러스트레이션은 글을 읽을 때 구체적으로 상상이 가능하도록 보완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 다음으로 영화나 연극, 뮤지컬 등의 홍보 포스터에 사용된 일러스트레이션을 꼽을 수 있다. 사진을 사용한 포스터만큼 일러스트레이션을 동원한 포스터의 수도 못지않게 많다. 주로 등장인물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는 달리, 일러스트레이션은 사진으로는 표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사용된다. 공연 내용이 작가의 머리 속을 지나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 주관을 담아서 그려지기 때문이다. 물론 사진도 사진작가의 주관과 철학을 담기지만 일러스트레이션만큼 독창적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으리라 여긴다.


그리고 최근에 새롭게 생겨난 분야, 바로 웹 속 일러스트레이션이 있다. 컴퓨터 사양도 낮고 인터넷 속도도 느리던 시절, 웹의 기반은 텍스트 중심이었다. 메뉴와 버튼마저 텍스트로 되어있었고 거기에 아주 작은 사진이 첨부되어 있는 정도였다. 구글의 첫 페이지가 왜 로고와 몇 개의 메뉴로만 되어있을까. 깔끔한 레이아웃과 디자인을 선호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구글의 주 사용자들이 미국과 유럽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2007년 유럽여행을 갔을 때 넷카페에서 싸이월드에 로그인하여 페인터 카페에 들어가기까지 약 15분이 걸렸던 경험이 있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속도가 그 쪽에 비해서 엄청나게 빠른 덕에 그에 맞춰서 홈페이지들도 여러 가지 많은 기능을 담고 있는데, 유럽의 느린 인터넷 속도로는 도저히 그 기능을 따라갈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빠른 인터넷 속도를 기반으로 웹 디자이너들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이용한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다양하고 아름다운 그림들을 이용한 홈페이지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인터넷 속도의 발전은 텍스트로만 되어있던 웹에 감성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적용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또한 패스트푸드점이나 카페, 또는 제과점의 벽을 보면 종종 그곳의 인테리어 컨셉트와 걸맞은 분위기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볼 수 있다. 가장 손 쉽게 공간의 분위기를 방문객에게 인식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벽면이 모두 빨간색으로 칠해진 방이 있다고 하자. 이 방에 들어가면 내방객들은 아마도 빨간색과 연관된 여러 상상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그 빨간색이 칠해진 방에 하트가 그려있다면 어떨까. 마찬가지로 방에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음산한 여인의 그림이 한 장 걸려있다면? 빨간색 만으로는 모호하던 이미지를 간단한 일러스트레이션을 이용해서 전혀 다르게 전달할 수 있다. 놀이공원의 유령의 집에 고풍스러운 장식과 함께 벽에 으스스한 그림들이 잔뜩 걸려있는 이유가 바로 일러스트레이션을 이용해서 좀 더 강한 이미지를 전달시키기 위해서다. 그 밖에도 우리 주변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는 꽤 많다.


이제 앞에서 말했던 정의를 다시 한 번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일러스트레이션이란 제 3자에게 무엇인가 의미를 전달하거나, 내용 암시에 사용하기 위해서 그려지는 그림이라는 내용이었다. 일러스트레이션이 사용되고 있는 곳들을 살펴보니 앞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카페나 인터넷 홈페이지처럼 대중에게 어필하는 것(카페라면 매장의 인테리어 컨셉트, 홈페이지라면 그 업체의 지향하는 브랜드 컨셉트)을 쉽게 인식시키기 위해 일러스트레이션을 사용한다. 또 책이나 영화, 연극처럼 내용을 암시하기 위해서 사용된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모두 뚜렷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회화와 구분 할 수 있는 큰 차이점 하나가 분명하게 도출된다. 회화도 물론 목적을 가지고 그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일러스트레이션과 같이 상업적으로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일러스트레이션이 회화와는 다르게 상업적인 목적만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회화가 작가의 의도와 작품세계를 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러스트레이션도 작가의 뚜렷한 의도가 들어가지 않고서는 제대로 만들어질 수 없다. 일을 진행할 때 클라이언트 측에서 요구하는 것은 두리뭉실하게 큰 테두리 밖에 없다. 그 안에서 작가 나름의 가치관과 의도를 반영해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제작해야 하는 것이다. ‘작가의 의도’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클라이언트 측에서도 작가를 섭외할 때 이 부분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사과의 그림을 똑같이 의뢰한다고 해도 작가에 따라서 해석은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백설공주의 죽음을 예고하는 슬픈 모습을 떠올릴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사악한 새어머니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떠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모습으로 표현을 할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정하는 것이 바로 작가의 의도다. 벌레 먹은 썩은 사과를 그릴 수도 있고, 독에 물들어있는 파란 색의 사과를 그릴 수도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빨갛게 사과를 그린다면 남들과 똑 같은 또 한 개의 사과가 나올 뿐이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고민해서 나만의 사과를 만드는 것, 바로 그 점이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털어놓았지만, 사실 일러스트레이션과 회화의 경계는 모호하기 그지없기 때문에 이 둘을 이분법적으로 나눠 생각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요즘은 일러스트레이션이 단순 상업목적이 아니라 작품으로서 전시 판매되기도 하고, 회화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굳이 비교를 한 이유는 회화라는 기준을 통해서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지막에 언급한 작가의 의도 부분이다. 좋은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는 방법은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것과 함께 남들과 다른 나만의 해석이 가능해야 한다. 쉽게 이루어지는 바는 아닐 것이다. 필자 역시 많이 노력하고 고민하지만 늘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그림 공부를 위해서 모작도 해보고 기법도 따라서 해봤지만 자신만의 그림을 찾는다는 것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방법이기에 더 힘든 것 같다.

이제 누군가 일러스트레이션이 뭐냐고 질문을 한다면 역시나 이것저것 주절주절 떠들겠지만, 어떤 대답을 하던지 결국에는 ‘너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을 찾는 것’이라는 문장이 그 안에 꼭 들어갈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꼭 자신만의 그림을 찾으실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겠다.



조용준 일러스트레이터 / 1999년 국민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졸업, 2009년 조용준의 페인터10 실무프로젝트 출간, 2010년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 대학원 졸업

주요작업 / 뚜레쥬르 매장 벽화 일러스트, KBS 드라마 ‘눈의 여왕’ 일러스트, 롯데카드 소식지 표지 2008년 연간작업, 모차르트 4권 세트 표지작업, 오시리스 4권 세트 표지작업, 프로즌파이어 표지작업, 살인예언자 표지작업, 웅진 씽크하우스 ‘눈의 여왕’, 헤밍웨이 ‘비발디와 봄,여름,가을,겨울’, ‘피터팬’, 국민은행 Youth 통장 표지, 농심 본사 전시관 내 동영상 및 홍보용 일러스트레이션. 그 밖에 동화책, 소설 표지, 사보표지, 웹용 일러스트, 교재 등 다수 작업

홈페이지 http://xmas.pe.kr 블로그 http://jjoon.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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