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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Design Association 109의 스케치 다이어리 제작기

2002-12-11



해마다 연말이 되면, 금빛 은빛 회사의 로고가 우측상단에 새겨진 검은 인조가죽 다이어리를 공짜로 받을 수 있다. 다이어리를 들쳐보면, 작년에도 올해에도 같았던 줄이 그어진 페이지, 어쩌다 한번 찾아볼 지하철노선도, 일년내내 한번도 전화 걸어보지 않는 전국도청 전화번호, 그리고 절대 궁금해하지 않는 도량기호 단위페이지가 있다.
다이어리란 개인이 일년동안 하루하루 사용하는 용도로 제작되는 것인데, 프로모션용으로 제작된 다이어리는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이라 아쉽다. 이런 아쉬움을 딛고 몇 해전부터 국내에서는 독특한 다이어리들이 제작되기 시작됐다.
아기자기한 캐릭터 다이어리, 아트적인 다이어리, 재료가 독특한 다이어리, 내지 편집이나 종이가 감각적인 다이어리 등.. 개성따라 용도따라 다양한 다이어리들이 많아 제작되었고, 올해도 어김없다. 이런 다이어리 홍수 속에서 유독 디자이너들의 시선을 끈 다이어리가 있었다.
바로 Design Association 109가 제작한 ‘스케치 다이어리’다.
스케치 다이어리에는 줄이 없다. 일요일마다 Design Association 109 회원들 21명이 각각 제작한 작품이 있다.
줄에 따라 글을 쓰기보다는 하나의 스케치로 더 많은 것을 표현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줄보다는 하얀 여백이 더 절실하고, 전국도청 전화번호보다는 발상을 전환할 수 있는 시각물이 더욱 절실하다.
이런 디자이너들의 니즈를 꼭 짚어 해결해버린, 그래서 판매시작한지 5일만에 제작한 500권의 다이어리가 “Sold Out” 되어버린, 다 팔린 “스케치 다이어리”
그 다이어리를 다시 보았다!



글. 이정현 기자 /tstbi@yoondesign.co.kr

109는 1999년 2월 정글에서 ‘가나다’라는 한글 타이포그라피 동호회로 시작하였다. 이후 동호회내에서 소규모로 진행되었던 일련의 프로젝트들이 구체화되기 시작하면서 타이포그라피동호회라는 타이틀은 스스로에게 무의식적인 생각의 한계를 짓는 원인이 되어 2001년 동호회의 성격과 정체성을 새로이 정립하는 과정을 통해 10월 9일 한글날인 ‘109’로 동호회명을 바꾸어 타이포그라피를 포함한 보다 넓은 의미의 디자인 모임으로 그 성격을 변화시켰다. 현재 23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Behind Story
‘109’는 ‘일공구’로 읽는다. ‘백구’로 읽는 것은 ‘H.O.T’를 ‘핫’으로 읽는 것과 같은 일임을 천명한다.

스케치 다이어리는 정기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디자인 모임인 109의 2002 프로젝트이다.
제작 기획은 2002년 3월부터 시작되었고, 본격적인 디자인작업은 9월부터 시작하여 2002년 11월 28일부터 스토아정글에서 판매하게 되었다.

Behind Story
이번 프로젝트는 23명의 회원 중 대전에 소재하고 있는 분과 유학중인 분, 이렇게 2명의 회원을 제외한 21명의 회원이 모두 참여한 프로젝트였다. 109가 다 참여했다는 내부적인 의미도 있지만, 제작한 500개가 5일만에 품절된 것은 109에게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다.
허나, 109에게도 가슴 아픈 일은 있다. 바로 2001년 캘린더 프로젝트다. 올해에 비해 작년에는 회원들이 많이 참여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그때 제작한 캘린더가 아직도 시삽의 책상아래에서 먼지에 쌓여있다.
이런 시행착오가 있었기 때문에, 2002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무수히 많은 고민과 변덕들이 있었다. 전시회, 노트, 책, 브로셔 등 다양한 의견들을 넘어 다이어리로 정해진 것은 단순히 109만의 잔치가 아닌 365일 내내 109와의 행사로 간직될 아이템이라는 매력때문이었다.


소통은 최초의 나, 즉 자아를 알아챌 수 있는 가장 궁극적인 기술이며 세상 모든 창조의 출발점이다.
처음 나 아닌 모든 것과의 소통으로 그들이 인지되었다면 이제는 그 인지를 통해 유발된 감정의 발견을 할 차례이다. 세상에 똑 같은 소통의 일치는 없을 것이며 나는 타인과 물리적인 구분에서 정신적인 구분을 한다. 비로소 우리는 영혼이란 진정한 나를 시작하며 마지막 숨을 토해내는 순간까지 수억만개의 소통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Behind Story
주제를 잡는 것도 다양한 안들이 나왔었다. 제일 처음 정해졌던 주제는 ‘생활의 발견’이었다. 이 후 ‘봄여름가을겨울’, ‘자유주제’ 등 계속적인 변덕을 통해 ‘소통’으로 정해졌고, 다이어리에 적힌 컨셉의 의미처럼 사색적인 글로 정리되었다.
‘소통’이라는 의미를 109 회원들 저마다 해석하고 이를 비주얼로 표현하였고, 다이어리의 일요일마다 그 결과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다이어리를 제작한 109와 다이어리를 사용하는 이와의 소통이 그 주제를 더 의미깊게 한다.



흑지를 사용한 표지, 중앙에 크게 ‘1’과 ‘2’로 두 권의 표시를 두었다.
표지는 "유광 먹박"으로 제작되었으며, 먹박의 작업을 할 경우, 필름은 먹박이 입혀질 부분만이 표시된 필름(먹 1도)을 넘겨주면 된다.

내지는 내지-미색모조 100g/㎡ 로 4도 옵셋인쇄다.
매월이 시작되기 전 전체 월이 보이는 페이지와 행사를 적을 수 있는 공간으로 정리되었으며, 매일은 스케치에 방해가 되지 않는 최소한의 텍스트를 유지한다.
일요일마다 109의 작품을 볼 수 있다.

Behind Story
2003년의 일요일은 총 52일이다. 21명의 회원들은 각각 2작품씩 제출하고 나면 10일이 남는다. 그래서, 하루 모임에서 오는대로 선착순 10명이 당첨되어 이들은 3작품씩 제출했다.
일일페이지에는 동일한 디자인을 사용했으나, 날짜를 일일이 기록했기 때문에 필름을 모두 뽑아야 했다. ‘터잡기(하리꼬미)’라하여 페이지맞춤을 할 때도 페이지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282페이지를 가출력해서 일일이 가제본을 했다고 한다.
내지종이를 선택하는데도 그들의 번뇌는 컸다. 매달 색지로 하자, 크라프트지로 하자, 모조지로 하자 등 모임을 가질 때마다 바뀌는 내지도 9월로 접어들면서 지금의 미색모조지로 정해졌다.

책의 사이즈를 고려하여 정확하게 박스를 제작해야 책을 담았을 경우 흔들림에 의한 파손을 줄일 수 있다. 특히 골판지와 같은 두꺼운 종이를 사용하여 박스를 제작할 경우 접혀지는 면과 겹쳐지는 면을 자세히 관찰하여 그에 따라 2~3mm정도씩 양 옆면의 높이에 차이가 생기도록 해야 반듯한 박스를 제작할 수 있다.
박스에 인쇄가 따로 안 들어갈 경우 인쇄소와 협의하여 박스 가공하는 곳에 '지기구조 샘플'을 건네주고, 제작을 맡길 수도 있다.

포장 앞에 찍힌 스케치다이어리명은 도장으로 각각 찍어내었다.
109에서 제작한 도장은 계속해서 잉크를 찍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간편하며, 도장을 찍을 때 힘의 세기에 따라 매번 약간씩 다르게 찍혀지기 때문에 도장을 찍어서 마무리를 할 경우 좀 더 손맛을 느낄 수 있고, 모든 책이 단 한 권뿐인 희소성을 더욱 높힐 수 있었다. 도장의 제작은 도장제작 전문 업체에 디자인을 넘겨주고, 완성된 도장을 받는다.

스케치 다이어리는 6개월 단위로 끊어서 2권으로 되어 있다. 한권으로 묶기에 너무 두꺼워 휴대가 불편하기 때문에 나누게 되었지만, 다이어리가 지나치게 낡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사용자 입장에서 좋은 일이다. 제본은 무선제본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Behind Story
제본의 선택에서도 109는 역시나 힘들었다. 떡제본, 링제본, 중철제본 등 제본의 거이 모든 방법을 내놓은 끝에 결정한 무선제본이다.

2002년 12월 5일 늦은 저녁 잠원동 모 양곱창집에서 109를 만났다.
109는 각자 회사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한자리에 모이기 위해서는 퇴근시간이후로 잡아야 했다.

109 회원들은 각기 다른 분야에 있다. 다이어리 작업은 편집디자인분야에 있지 않은 회원들에게는 다소 낯선 작업이었다. 특히 웹디자이너들은 72dpi로 작업하기 때문에 300dpi로 작업하는데 느려서 답답했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인쇄에 관한 부분은 편집디자이너인 시삽 최병근씨가 제작 처음부터 유의사항들을 일러주었기 때문에 별 문제없이 했다며 은근히 시삽을 자랑하였다.

스케치 다이어리라는 컨셉은 제작한 본인들이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디자이너를 위해서 제작한 것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원하는 다이어리를 제작한 것이 더 맞을 것이라고 했다.
스케치북이자 아트북이자 다이어리이기도 한 '스케치 다이어리'가 다 팔린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같다.

“5일만에 500권이 다 팔렸으니, 얼마나 좋으세요?” 라고 물으니
아주 큰소리로
“홈방가져!”
라고 말했다.
이 말은 강원도에서‘쓰러지다.. 좋아서 미치다’ 등의 표현으로 쓰이는 사투리로 강원도 출신인 최병근씨가 회원들에게 퍼뜨려 놓은 말이다.


그들은 다이어리 작업에 대해 ‘변덕’이라는 말로 정의한다.
컨셉부터 마지막 제본에 이르기까지 한번에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정했다가 뒤집고, 결정했다가 뒤집고를 너무 많이 했던 그들!
그래서 그들은 변덕이라 표현했으나, 더 좋은 작업을 하고픈 109의 욕심이었을 꺼라 생각한다.
앞으로 자신들만의 잔치가 아닌 디자인 프로젝트를 활성화하는 모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109의 내년 프로젝트를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연신 헤헤 웃으며 질문에 답하는 이들이 참 신나보였고,
취중면담! 홈방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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