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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디자인의 역할

2011-07-13


신제품이 발명되면, 우리는 신제품이 구제품을 대체할 것이라는 생각한다. 더 편리하고 좋은 것이 나왔으니, 예전의 것은 곧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예전 ‘디지털과 아날로그’편에서 이야기 했듯이, 새로운 것이 곧 좋은 것은 아니다. 예전 것이라도 그 역할이 있고, 오히려 반대로 옛것이 훨씬 더 나아 새로운 것을 몰아내는 장면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본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형태의 간판이 계속 출현하여, 예전방식의 간판이 없어지지 않을까라고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글 | 박희정(광진구청 도시디자인과) nari@gwanjin.go.kr
사진 | 팝사인 자료

디지털 사인의 발전에도 전통간판의 영역 존재

옥외광고업자에 대한 법정교육이 시작되었다. 교육의뢰를 받으면 제일 고민스러운 것은 올해는 어떤 내용으로 강의를 해야 하느냐다. 신규교육이야 매번 같은 간판디자인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으로 하면 되지만 보수교육은 해마다 듣는 교육인데 같은 내용을 매번하면 지루해 할 것 같아 작년부터 개인적으로 테마를 정해 교육을 하고 있다. 올해는 유니버설디자인과 인터랙티브 디자인에 대해서 강의를 한다.


인터랙티브 디자인은 사인분야에는 디지털사이니지 쪽과 맥락을 같이 하다보니 강의는 주로 디지털사이니지 분야에 대한 내용이 될 수 밖에 없다. 현재 사인업계가 LED, 디지털 쪽으로 계속 발달하다보니 교육생 중에는 향후에는 길에서 간판은 사라지고 LED디지털 사인만이 남지 않겠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필자가 미래학자가 아니라 대답하기는 곤란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은 도시가 온통 디지털사인으로만 채워진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라는 생각에 디지털사인이 대세가 되더라도 일반적인 간판들도 남게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필자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한권의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그 책은 최근 소개된 해리 벡위드가 쓴 ‘언씽킹’이라는 것이다. 인지심리학을 통해 디자인과 마케팅을 설명하고 있다. 필자는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내용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어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다 읽을 때쯤에는 간판의 미래에 대해서 명쾌하게 알려주었다.


작은 디자인의 변화가 인간의 행동 패턴을 바꿀 수도

디자인이 사람의 행동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 실제 실험을 통해 선하나가 사람들의 행동을 조절한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이 실험은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과 3학년 학생들이 광진구디자인기본계획과 관련된 수업을 하면서 광진구에서 혼잡도가 가장 높은 2호선 건대역 2번출구 앞 인도를 대상으로 했다. 학생들은 일주일 동안 2번 출입구 앞의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했는데 2번 출구 앞의 혼잡도가 다른 곳 보다 월등히 높은 이유는 출구에 사람을 만나기 위해 서있는 사람들과 이동하는 사람들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찾아냈다. 원인을 찾은 후 학생들은 라인을 그어 기다리는 사람과 통행하는 사람을 분리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실제로 학생들은 인도에 흰색 라인을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선 안쪽에 서 줄 것을 부탁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기다리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선 안쪽으로 자리를 잡으며 가능한 선을 넘어가지 않으려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히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 이 실험은 선하나가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혼잡도를 줄여 줄 수 있다는 재밌는 결과를 알려주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이 건대역을 방문했을 때 인도에서 라인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해리 벡위드가 말하는 영국의 켄싱턴거리가 있다. 20년전 영국의 켄싱턴 거리는 엉망진창의 싸구려 거리로 크고 작은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했으며 사망자들이 속출하는 등 어수선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또한 거리는 공무원들이 세운 위험, 경고 등 표지판으로 인해 ‘표지판들의 숲’이라고 불리었다. 공무원들은 경고 표지판만 세우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안전을 위해 길 양쪽에 가이드레일을 만들고 보행자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는 곳과 운전자들이 분명하게 양보해야 할 횡단보도에는 눈에 잘 띄라고 얼룩말 무늬를 칠해놓았다.

그러나 켄싱턴 상인들은 너무 많은 표지판과 가로등, 가드레일과 표식, 그리고 과속 방지턱 때문에 관광객들이 발길을 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마 길에 설치된 많은 공공시설물들로 인해 간판과 쇼윈도우는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니 상인들의 고민도 컸으리라. 게다가 켄싱턴에 거주하는 고객들마저 복잡한 도심으로 진입하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외곽도로 변의 쇼핑센터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켄싱턴의 상인들은 무모해 보이는 전략을 펼쳤다. 그들은 표지판의 95%를 없애겠다고 결정했다. 나아가 얼룩말 무늬의 횡단보도를 없애 보행자들이 어디에서든 건널 수 있게 했으며 모든 안전 가드레일도 제거했다. 그러자 보행자들은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었지만 켄싱턴 거리는 한결 고상하게 보였다. 상점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는지 모르지만 보행자들을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죽거나 중상을 입는 보행자의 수가 60%나 급감한 것이다. 이는 어떤 지역이 수준 높은 디자인을 갖출수록 그 지역 안에 사는 사람들도 교양 있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또한 뉴욕의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이 치열한 반대를 뚫고 뉴욕거리의 낙서 없애기 캠페인을 실시해 범죄율이 줄어들었던 사례도 있다. 교양이 있는 곳에서 우리는 더 지성적으로 행동한다고 한다. 켄싱턴에서 우리는 좀 더 신중하게 운전하고 신중하게 걸어 다닌다. 이는 ‘디자인’이 우리의 행동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간판개선사업을 하면서 수준 높은 거리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외부 관광객 뿐만 아니라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좀더 교양 있게 행동하도록 유도할 수 있으며 하며 범죄율을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기술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가 아닌 다양성을 보장

해리 벡위드는 “언씽킹”이라는 책에서 기술은 점점 발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디자인과 트렌드가 생겨나지만 우리의 생활은 실상 많이 변화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전기와 배, 비행기는 각각 130년, 110년, 그리고 80년 전의 기술이 주도하고 있다. TV는 거의 100년 가까이 되었고 진정으로 혁신적이 냉장고, 에어컨, 실내 배수시설 역시 TV만큼 오래되었거나 그보다 더 오래되었다. 혁신들이 등장할 때 마다 우리는 그 혁신들의 파괴성을 과대평가한다. 인터넷이 인쇄물을 없앨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잡지구독자의 수는 인터넷 이전보다 더 늘었다.

1964년에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과 2011년에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별반 다르지 않다. 노트북이 늘었을 뿐이다. 넥타이의 폭이 좁아지고 입고 있는 셔츠의 브랜드가 달라졌을 뿐이다. 2030년에도 우리는 카페에 앉아 있을 것이고 카페의 간판은 지금보다 좀 더 아름답고 세련된 간판들로 되어 있을 것이다.

월간 POPSIGN
SP, Sign, Lighting Design 전문 매거진 월간 <팝사인> 은 국내 최초의 옥외 광고 전문지로, 국내 사인 산업의 발전과 신속한 정보 전달을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 또한 영문판 잡지인 발간을 통해 국내 주요 소식을 해외에 널리 소개하고 있으며, 해외 매체사와의 업무제휴 들을 통한 국내 업체의 해외전시 사업을 지원하는 등 해외 수출 마케팅 지원 활동에도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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