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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좋은 디자이너의 자화상

2009-11-03


어렸을 때부터 책과 그림을 좋아했던 박암종 교수는 자라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디자인 학도가 되었고 대학원에서는 시각디자인 중 편집디자인을 전공한다. 대학원과 잡지사 아트디렉터로 동시 활동하던 그는 논문으로 ‘편집디자인에 있어서 아트디렉터의 역할’을 선택해 연구했고 사료적 가치를 만들어 낸다. 당시는 아트디렉터의 영향력은 물론 용어 자체의 통용과 확신이 없던 시기였고 이에 부당함을 느낀 그는 체계적으로 정리된 아트디렉터의 역할상을 학문화한 것이다. 과연 주권은 주체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는 현재 선문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이며 근현대디자인박물관의 관장, 그리고 (사)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 제9대 회장을 맡고 있다.

글 이찬희(chlee@jungle.co.kr), 사진 스튜디오 salt


9월 11일 오전, 박암종 교수와의 인터뷰는 무척 흥미로웠다. 잡지 아트디렉터로 7~8년간 일한 경력의 그는 잡지에 있어서의 디자인에 대한 지론을 이야기 해주었으며 그의 말에 많은 공감을 느끼며 배움을 얻는다. 머리 속에 어지럽게 맴돌던 사색들이 한꺼번에 정리되는 지혜를 얻는 시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정글 리뉴얼호(09년 8월호)에 대해 호감을 표한다. 마이클 잭슨을 특집화한 것에 대해 한국 잡지에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 크리에이티브적으로 디자인한 것에 대해 특별하다고 이야기 한다. 나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공감하며 그 앞에서 머리 조아린다.


디자인 철학이나 소신이 확고하다고 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 산업에서 일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정리가 되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하고의 차이를 찾는다면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서 부각을 나타내는 건데, 학교에서는 학생을 가르치고 (사)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에서는 회장을, 근현대디자인박물관에서는 관장으로 일을 하고, 디자인 책을 저술하고. 그건 어떤 면에서는 자라온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책과 그림, 그리고 무언가를 모으기를 좋아했어요. 커서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 안에서도 편집디자인을 전공했고 논문 역시 ‘편집디자인에 있어서 아트디렉터의 역할’을 연구했습니다. <광장> 이라는 전문 잡지에서 7~8년간 아트디렉터로 활동할 당시 안상수 교수의 안체가 확산되고 보급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광장> 이라는 잡지의 제호도 안체로 바꿨어요. 제가 알기로는 <과학동화> 보다 안체를 제일 먼저 쓰지 않았나 싶네요.

그 즈음 월간 <디자인> 기사에 짧게 쓴 글이 뭐냐 하면, 당시는 제가 아트디렉터였으니까요. ‘아트디렉팅이라는 것이 디자인만 하는 것이 아니고 좋은 디자인을 찾아서 그 작가나 디자인으로 연결시키고 그 사람의 작품을 잡지로 연결시켜 개제하고 실어서 보급시키고 또 알리는 것도 아트디렉터의 중요한 역할이다'라고 쓴 것을 기억하고 있어요. 안체를 보급했던 것도 잡지를 통해서였고 잡지는 거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죠. 워낙 책을 좋아하다 보니까 잡지를 굉장히 열심히 만들었어요. 잡지는 흩어져 있는 것들을 한곳으로 모으는 매체잖아요. 그런 쪽에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까 모아지는 자료들도 조금씩 쌓여가고 수집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죠. 그 즈음 어떤 계기가 있어 인사동을 오가기 시작했어요.


컬렉터인 나에게 영향을 준 분은 인사동 하동갤러리의 관장님이셨는데 대단한 컬렉터였던 그분을 알기 시작하면서 저 역시 본격적인 컬렉터가 되었어요. 그분은 ‘디자인과 실험’이라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디자인을 하면서 어떻게 실험적인 것을 적용할 것인지를 전시하는 내용이었는데 조그만 책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에서 제일 작은 책을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을 했고, 만들었죠. 당시 출판계에서는 이 좁쌀책이 특종같이 취급되어서 각 공중파 방송은 물론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서 앞다투어 기사로 다루었고, 하동갤러리 관장님이 준비하고 계셨던 전시회 사전에 터져버린 탓에 관장님에게서 연락이 왔었죠. 이것을 계기로 곧바로 전시회 이사로 들어가면서 그분과 함께 활동을 하게 됐어요. 이분이 맨날 인사동을 오가시니 자연스럽게 수집에 관심이 갔고 저는 디자이너니까 디자인과 관련된 것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서 근현대사디자인 자료를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한 때가 1990년대 초니까 벌써 20년 전이네요.

제가 수집한 자료는 거의 90% 이상 100% 경매에서 산 거에요. 발품을 팔고 시간을 들여서 정식으로 구입한 거죠. 이후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디자인 사적인 것에서 찾으면서 더 많이 자료들이 쌓였고 개인적으로 보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되어 박물관 설립을 생각하게 됐어요. 4~5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1~2년간의 준비를 마쳐 작년 3월 14일 오픈한 거죠. 작년에는 3,000명 정도가 다녀 갔고요. 저에게 확고한 신념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것은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실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다행히 저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것들, 만들고 그리고 쓰는 것이 연결되며 자연스럽게 신념으로 자리하게 된 것 같습니다.


컬렉터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남과 다른 희귀성에 있어요. 그리고 역사성, 역사적인 가치가 있고 보관이 깨끗하고 깔끔하게 되어 있는 것, 그리고 세트로 갖춰져 있는 것들, 제작자가 분명한 것도 가치 있습니다. 그리고 시대를 대표하는 대표성, 그 스타일이나 특징들이 특별한 것들도 그렇고요. 가장 애착을 느끼는 자료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라디오 A-501(1959)입니다. 금성에서 만들었는데 이 라디오 하나에서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속에 존재하는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것에 못지 않은 가치는 59년 당시 금성사 회장, 당시 사장이었는데 그의 정신이 얼마나 잘 간직되어 있는지가 느껴지는 것에 있습니다. 시대를 봤을 때는 60년대 중반에 나왔어야 하는 기술력인데, 우리나라 가전산업의 성장은 앞당긴 거죠. 그 도전정신, 희생정신이 들어있기 때문에 역사성, 희귀성에서 인정되는 자료입니다. 그리고 아름답습니다. 일본 산사의 것을 모방했지만 더 잘 만들었어요. 손잡이나 모서리에 라운드 처리된 것이 대한민국의 피가 느껴져요. 곡선미, 처마 밑, 한복 동전의 곡선이 바로 이 라디오에 담겨 있어요. 희한하잖아요. 똑같이 만들 수도 있었는데 살짝 라운드 된 게 너무 아름다워요. 그리고 아름답게 정돈된 타이포와 엘지 정신. 엘지나 삼성, 요즘엔 최고 경영자의 못된 버릇이 있지만 그것을 제쳐 놓고 기업 정신을 가지고 있는 점은 인정해야 해요. 정신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현대 정신, 삼성 정신, 정글 정신, 매달 잡지를 만들지만 끊임없이 고민해야 해요. 국가적으로도 다른 나라에 손가락 받지 말고 말도 안 되는 대한민국 정신은 버리고 모두가 정신 차리기 운동을 해야 해요.


제가 논문을 쓸 때가 20년 전 88년, 89년도였는데 당시에는 아트디렉터의 힘이 없었고 보편성도 없었어요. 하지만 아트디렉터는 단순하게 디자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영향력을 보여야 해요. 중요한 것은 당시에도 특별한 경우는 미술장, 또는 편집장까지 했어요. 실제로 안상수 교수는 아트디렉터를 하면서 편집장까지 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실상은 아트디렉터라는 용어가 정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역할상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고 단지 디자이너로만 여겨졌었죠. 하지만 아트디렉터는 디자인과 디자인의 영역에 있어서 좋은 의미이자 명칭이며 굉장히 가치 있는 사람이에요. 디자인의 성격이나 손길이 미치는 가장 강력한 사람으로 아트디렉터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미했어요. 그래서 그걸 정리했어요.

잡지산업, 당시의 미국은 정말 대단했어요. 30~40년대에는 잡지가 세계의 모든 정보를 모으는 매체였고 <타임> , <보그> , <뉴요커> 등이 창간된 시기였고,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려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에 잡지가 있었어요. 잡지는 메뉴얼을 시각적으로 집대성한 매체이기 때문에 편집장만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되는 매체죠. 상당 부분에 아트디렉터의 능력이 필요해요. 지금은 디자인에 있어서 아트디렉터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보편화되었지만 당시에는 아트디렉터라는 용어를 쓰지도 않았을뿐더러 입지가 불분명했죠.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 디자인에 힘을 실었던 디자이너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 디자인이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책에도 썼지만, 세상을 가리키는 나침반, 세상을 움직이는 힘의 동력… 그런데 사실 디자인의 본래 가치는 솔루션이라고 봐요. 디자인은 어떤 문제든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 안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슬플 때 기쁨을 줄 수 있고, 기쁠 때 더 기쁘게 해줄 수 있는, 디자인은 경쾌하고 밝고 사람들한테 기쁨과 웃음, 희망을 주는 솔루션 매체로서 역할 한다고 봐요. 미술은 장기간에 걸쳐 극히 원하는 사람에 대한 것이지만 디자인은 순간적으로 즉각적으로 굉장히 넓고 광범위하게 기쁨을 줄 뿐더러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고, 기쁜 사람은 더 기분 좋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좋은 디자인이고 디자인의, 디자이너가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영어로 얘기하면 굿 디자인이죠.(웃음)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말하면, 커뮤니케이션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을 정확하게 해서 전달성이 높은, 예를 들면 책 같은 것이 좋은 디자인이겠죠. 제품디자인이라면 내구성이 있어야 할 것이고 구성요소가 적절하게 배치되고 안전성이 있어야겠죠.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할 때 난폭한 생각으로 해서 사람들을 해치거나 힘들게 할 때는 좋은 디자인이라 할 수 없죠. 또한 과도하게 경비가 많이 들여서 경제성이 없는 것 또한 좋은 디자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름답고 보기 좋고 갖고 싶은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죠. 이런 총체적인 것들, 다른 것과 다른 독창적인 것을 기본적인 디자인 이론에 맞게 추구해 특성을 잘 간직하는 디자인, 누구나 가깝게 대할 수 있는 친근성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죠. 하지만 전문적인 디자이너 측면에서 좋은 디자인을 봤을 때는 조금 달라요. 실험정신이 그 안에 들어가 있어 디자인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상당한 자극을 주며 시대를 이끄는 새로운 디자인, 예를 들면 안체 같은 것. 앞서가면서 새로운 시대 감각으로 조형미를 갖추고 있는 디자인. 경제성에 대해서는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디자인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의욕을 일으키고 자극을 준다면 디자이너에게는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일반적인 측면에서는 부합되지 않을지라도요.

일반적인 굿 디자인과 시대를 앞서가는 굿 디자인은 상당한 차이점이 있지만 시대와 공간 속에서 서로가 정리된다고 할까. 서로의 속성을 인정해 공감대를 형성하여 기본 속성을 공통분모로 갖게 되는 현상이 좋은 것이라 여겨집니다. 시대를 앞서가지만 결국은 보편화시키는 것. 이런 점에서 요즘 젊은 디자이너들의 감각은 상당히 뛰어납니다. 그들이 디자인을 풀어내는 프로세스나 결과물이 매우 훌륭합니다. 젊은 디자이너는 연륜이 쌓인 디자이너들과 호흡을 맞춰서 서로의 좋은 점을 공유할 수 있는 디자인 환경이 바람직하지 않나 여겨집니다.


잡지 디자인에 있어서 디자인에 욕심을 부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요. 실험 정신, 욕심이라는 것은 화보잡지 같은 것은 이해가 될 수 있지만 기사와 시안이 공존해야 하는 잡지에는 디자인에 너무 욕심을 부려서 내용과 맞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을 무시하는 디자인, 실험적인 디자인, 지나친 타이포그래피를 너무 다양하게 사용해 어지럽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물론 글쓴이가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도 옳지 않고요. 소신으로 책을 디자인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적은 디자인으로 큰 효과를 얻는 방법을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디자인에 너무 욕심을 가지면 커뮤니케이션을 떨어트림을 잊지 말되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적용해야 합니다.


예전 <정글> 에서 정신이 이어진 건가요? 잡지를 성장시킨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잡지는 문화라는 측면에서 콘텐츠를 키워야 합니다. 이는 위로부터 이어진 거죠. 내용이 바꼈
다고 잡지가 바뀌는 것이 아니니까요. 정글 정신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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