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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Design + U

2009-09-15


당신은 생각보다 특별한 손재주를 가지고 있다. 물론 당신은 그 사실을 모르거나 잊고 있겠지만. 이따금씩 근질거리는 손가락에 무엇이든 쥐어주자. 무엇을 쥐어야 할지 난감해 할 당신을 위해 정글 에디터들이 먼저 찾아봤다. 평범해 보이는 것 같아도 당신의 특별한 재주가 더해지면 그것은 분명 새로운 무언가로 탄생할 것이다.

기획 | 정글 편집부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마저도 돈으로 환산해야만 하는 요즘 같아서는 피붙이를 제외하면 누구 하나 가슴에 오롯이 담아볼 기회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람은 외롭다. 어제보다 오늘 더 외롭고 외로울 수 밖에 없어 슬프다.

‘나와 너의 교집합, 우리가 될 수 있는 교집합’을 만들어가고 싶은 PPnBB의 D.I.Y 메시지 카드는 외로운 사람들이 다른 이의 가슴으로 넘어갈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 준다. 먼 옛날 칠월 칠석의 까치들이 제 머리털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견우와 직녀를 이어주었듯이. D.I.Y 메시지 카드를 사용하려면 우선 가슴 속에 무성히 자란 외로움에서 뽑은 실과 거부당할까 두려운 마음을 벼려 만든 바늘이 필요하다. 이것이 준비되면 그 다음부터는 한땀 한땀 누군가에게 보낼 마음을 새기면 된다. 바늘이 작은 구멍을 들고 날 때마다 외로움은 그리움이 된다. 내게는 그리움이지만 메시지 카드를 받아 든 누군가에게는 복날 삼계탕 보다 뜨끈하고 든든한 마음이다.

정을 나누자던 초코 과자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노래했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기는커녕 화병만 난다. 말하기 어려우면 초코 과자라도 쥐어주어야겠지만 요즘 애들은 입이 고급이라 브라우니 정도는 쥐어줘야 ‘아, 얘가 나한테 관심이 있구나.’ 한다. 그러니 ‘브라우니’ 살 돈으로 편지지를 사자. 편지 속에는 브라우니에 든 카카오 분말보다 더 많은 마음을 담을 수 있으니 말이다. 괴발개발 못난 글씨면 또 어떤가. 어차피 외로움은 덜어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덜어냄으로써 잠시 잊을 수는 있다.

에디터 정윤희



가끔 에디터라는 직업이 ‘Writer’가 아니라 ‘Typist’가 아닐까 의아해질 때가 있다. 연필과 붓, 가위와 망치를 들어야 할 ‘만물의 영장’의 손으로 하루 종일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노라면, 어느새 우리의 손이 ‘글자입력장치’ 쯤으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별이 반짝이는 창가에 앉아 밤새 썼다 지웠던 기억은 어느덧 까마득할 지경이고, 책상 머리에 앉아서 꼼지락꼼지락 무언가 만들었던 기억은 더욱 희미하기만 하다. 언제부터였을까. 나의 ‘만들기 본능’은 손금 아래로 깊숙이 종적을 감춰버렸을까. 이래 봬도 학창 시절에는 ‘하드보드지’로 만든 필통을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기특한 소년이었는데. ‘하드보드지’ 뒷면에 더하기 빼기를 해가며 전개도를 그리고, 슥슥 선을 따라 칼로 잘라내 육각형의 필통 모양을 완성하면, 그 위에 잡지나 의류 카탈로그에서 오려낸 이미지를 붙여가며 ‘콜라주’하는 일련의 과정…. 손끝이 야무진 편도 아니었는데 몇 시간을 그렇게 꼼지락꼼지락 집중했던 이유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는 기쁨에 앞서 만드는 것 자체가 주는 즐거움 때문이었던 듯 하다. 절대 잠에서 깨지 않을 것 같던 에디터의 만들기 본능이 최근 긴 동면을 끝낼 조짐이 보인다. 바로 ‘페이퍼 토이(paper toy)’ 때문이다. 전세계 숨은 페이퍼 토이 제작자들이 만들어낸 각양각색 종이 인형을 구경하다 보면 날을 꼬박 새울 정도. 게다가 이 종이 인형의 전개도는 누구나 인터넷 블로그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PDF 파일을 내려 받아 컬러 프린트로 출력한 뒤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이는 간단한 과정을 거치면, 익살맞은 모습의 종이 인형이 뚝딱 완성된다. 블로거마다 그 모양과 난이도가 천차만별이어서 취향과 실력에 따라 골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특히 일본 페이퍼 토이의 경우, 만들기는 꽤 까다롭지만 자꾸 접하다 보면 그 세밀한 디테일에 반하게 된다고. 페이퍼 토이 전개도를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는 몇몇 웹 사이트를 소개한다. 지금 당장, 잠자고 있던 만들기 본능의 코털을 뽑아 휴우~!

Dollyblog.blogspot.com
www.marshallalexander.net
toy-a-day.blogspot.com
cubeecraft.com

에디터 이상현


십자 수를 뜨고 있으면 "난 답답해서 못하겠던데" 말 한마디 툭 내뱉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 그이의 비틀린 성미를 이해한다. 자수를 놓는 아씨 옆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는 쇤네의 심정 이랄까. 손가락에 비해 손바닥이 길고 바늘구멍에 실을 꿰기 보다 펄펄 끓는 뚝배기를 단숨에 옮기는 게 쉬운 무딘 손 때문인지, 글을 쓰는 것 말고는 뭘 만들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연필을 쥐듯 손으로 음악을 만드는 스타일로폰 빼고. 정확한 명칭은 ‘Dubreq Stylophone’이다. 1967년 브라이언 자비스와 2명의 동업자 테드, 버트 콜맨에 의해 만들어진 스타일로폰도 대부분의 발명품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호평보다 악평이 쏟아졌지만 당시의 실험적인 아티스트들에 의해 재발견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스타일로폰이 대표적인 전자악기인 신디사이저의 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시중에서 살 수 있는 스타일로폰은 1967년 원형을 리메이크한 모델이다. 디자인은 60년대 모던한 스타일을 그대로를 유지했지만 mp3와 연결시킬 수 있어서 한층 더 전자 악기다워졌다.

크기는 어른 손으로 편하게 잡고 연주할 정도로 어린이라도 손바닥에 올려두고 충분히 연주할 수 있다. 좌측 하단에 전원 온•오프 스위치와 떨림음 효과를 낼 수 있는 스위치가 있고 전면 중앙에는 3단계로 톤을 조절할 수 있는 스위치가 있다. 좌측 면에는 MP3 등의 외부기기를 연결해 스피커로 사용할 수 있는 라인인 단자와 헤드폰을 사용할 수 있는 단자가 있고 하단에는 음색을 조절할 수 있는 튜닝 다이얼이 있다. 또박또박 금속건반을 터치하면서 연주를 해도 되고 건반을 좌우로 미끄러지듯 떼지 않고 연주를 할 수도 있다. 손에 익으면 상당히 수준 높은 연주를 할 수도 있다. 한 손에 쥐고 다니면서 흥이 나면 바로 음악을 연주할 수 있으니 곁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클러버(clubber)로 만들 수도 있다.

아, 빠뜨린 게 있다. 재주가 없는 손가락을 가진 사람이라면 16비트 유로댄스를 출 수 있는 친구가 있을지라도 4비트 트로트 밖에는 연주하기 힘들다. 오직 연습만이 살 길이다.

에디터 이안나


책상 한 쪽에는 입사하기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쓰나미가 쓸고 간 듯 한 어지러움에도 그 형태를 바로 하고 당당히 서있는 원할머니보쌈의 판촉용 달력이 자리하고 있다. 달력 안의 작게 그려진 네모 칸 안에는 미팅 스케줄과 촬영날짜들이 빼곡히 적혀있고, 언제 지나가버렸는지 모를 휴가가 서글프게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어지러운 달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네모 안에 갇힌 나의 하루하루도 다 저런 비슷한 모습이겠구나 싶다. 누군가 맞춰놓은 스케줄에 내 시간을 억지로 맞추고 있는 듯한 기분. 그게 다 저 못난 판촉용 달력 때문이리라. 그렇게 단단히 엇나간(?) 증오의 대상을 납작하게 접어 보이지 않게 책 사이에 껴두고, 새롭고 뭔가 특이한 상대를 물색하다 번뜩 생각이 난, 작년이었던가? 사보 취재로 윤호섭 교수의 전시회를 찾았을 때의 일이었다. 그린 디자인 전도사로도 유명한 윤호섭 교수와 국민대학교 학생들이 함께했던 전시회에는 다양한 친환경 제품들이 전시되어있었다. 유독 내 눈을 끓었던 것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채워진 달력 한 권이었다.
초등학생이 썼을까? 정성스럽게, 또박또박 써 내려갔을 그 꼬맹이의 모습이 눈 앞에 훤히 그려질 정도였다. 윤호섭 교수의 달력에는 하루 하루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문방구 앞에서 만난 꼬마의 하루에는 ‘고놈 참 똘똘하겠구나. 학교에서도 공부 꾀나 하겠어’라는 생각이, 멋진 보잉 선글라스를 끼고 마을버스를 운전하실 기사님의 하루에는 젊은 시절 ‘한 가닥’ 하셨을 듯한 멋들어진 청춘이 숨어있었다. 식당 주인 아주머니의 글씨에선 그간 힘들게 하지만 보람되게 살아온 인생이, 모두가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써 내려가는 주인공이자 이 멋진 걸작을 만들어낸 훌륭한 캘리그래퍼였다. 재활용 종이와 콩기름 잉크를 사용한 이 달력은 사용자의 참여를 유도하며 완성된 달력의 모습을 갖춰 나간다. 미완성으로 태어나 쓰는 이의 정성이 더해져야 완성품이 되는 달력. 에디터는 순수한 문방구 꼬맹이처럼, 마을버스 기사님처럼 멋들어지게 쓸 수는 없겠지만 정성껏 하루하루를 써내려 갈 참이다. 일요일이지만 빨간색 팬은 필통 안에 넣어두고, 핑크색 펜으로, 한참 연애의 쓴 맛을 보고 있는 에디터의 일요일이 핑크색로 빛나길 빌면서.

에디터 심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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