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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엄상빈 사진가의 카메라에 담긴 이야기

월간사진 | 2016-02-19

 


‘따뜻하다’는 말보다 그의 사진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수식어가 또 있을까. 항상 사람들 곁에서 ‘사람냄새’ 나는 사진을 찍어온 작가 엄상빈. 그의 카메라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기사제공 | 월간사진

 

정겨운 나의 첫 번째 카메라 아사히 펜탁스 67

 

 1988년도에 구매한 카메라다. 그 전까지는 중고카메라만 사용했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큰 필름을 사용하고 싶어서 새것을 구입했다. 이 카메라로 완성한 작업이 〈아바이 마을〉과 〈동해안 풍경〉이다. 

 

아사히 펜탁스 67은 필름이 커서 프린트하기 좋다. 확대기를 조금만 올려도 되니 35mm 필름에 비해 프린트 하는 시간이 적 게 걸리고 해상도도 더 뛰어나다. 

 

사진이 촬영됐던 1990년도 강원도 양양의 이 동네는 한창 개발문제로 시끄러운 곳이었다. 펜탁스 67이 크기가 큰 중형카메라여서 사람들이 카메라를 의식할 것 같았지만 사진 속 주인공 들은 의외로 카메라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카메라를 사용하기 위해선 삼각대가 꼭 필요했는데, 사람들이 이 를 측량하는 기계로 오인했기 때문이다. 졸지에 엄상빈이 시청에서 나온 공무원으로 둔갑한 것이다. 

 

당시 누군가의 집을 측량한다고 하면 곧 그 집은 헐리거나 재개발에 들어갔다. 보상 문제가 걸려있기에 사람들은 분명 측량에 신경 썼을 것이다. 덕분에 자연스러운 사진이 나올 수 있었다.

 

 

호랑이 선생님, 고교 알개들을 담다 코니카 헥사(Hexar)

 


 

엄상빈은 1980년부터 1999년까지 20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 당시 학생부 소속이었던 그의 주변에는 늘 사고뭉치들이 많았고, 코니카 헥사를 이용해 그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찍기 시작했다. 

 

만약 보통 카메라를 사용했다면 학생들이 의식했을텐데, 코니카 헥사는 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사이즈가 작아서 늘 갖고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스냅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담배로 인해 생긴 흉터와 문신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녀석들, 그리고 한바탕 싸운 후 반성문 쓰기에 열중해 있는 제자들, 학생부에서 흔히 벌어지는 소소한 풍경 등을 그 때 그 때 포착했다. 이런 사진들이 모여서 발간된 책이 2006년에 나온 〈학교이야기〉다.

 

 

산과 사람을 품다 캐논 AE-1 PROGRAM

 

1970~80년대 인기 카메라였던 FM2보다 가볍고 노출 측정이 용이한 까닭에 산사람 엄상빈이 산에 갈 때 마다 꼭 챙겼던 것이 바로 캐논 AE-1 PROGRAM이다. 

 

1991년 겨울, 그와 동료대원들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팡(Fang, 7647m)으로의 등반이 계획되어 있었고, 준비과정과 네팔 제출용 소책자에 들어갈 인물사진 등을 이 카메라로 촬영했다. 

 

부푼 마음을 안고 원정대는 히말라야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해 마지막 정상을 앞두고 등반을 포기해야 했다. 이로부터 6년이 지난 1997년 겨울, 엄상빈이 빠진 원정대는 다시 히말라야에 도전했다. 

 

하지만 신은 또다시 히말라야를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작가의 후배였던 김여훈 대원까지 하늘로 데려갔다. 당시 시체를 회수하지 못했던 원정대가 들고 올 수 있었던 것은 김 대원의 배낭과 일기장뿐. 

 

김 대원 부모님께 아들의 얼굴이라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작가는 산에서 활짝 웃고 있었던 김여훈 대원의 모습을 영정사진으로 만들어 공항에 들고 나갔다. 젊디젊은 김 대원의 웃는 모습이 그의 마지막이 될지 그 누가 상상이나 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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