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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디자인, 웃기고 있네

2016-01-15

 

 

사는 데에 별 재미도 없다. 연세 있는 어르신들 앞에서야 야단맞을 소리겠지마는 우리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머리에 김 나게 공부해 졸업해도 취업이 발목을 잡고, 고군분투하여 취직한다 해도 쥐꼬리 만 한 월급으로는 저축은커녕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버거우니 딱히 재미질 일이 없다. 결혼과 출산은 물론 연애까지 포기하는 ‘삼포세대’가 괜히 생겨났으랴.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이런 ‘노잼’의 연속에서 우리는 뭔가 버라이어티하고 스펙터클한 ‘껀수’를 찾는다. 그나마 ‘응팔’ 덕에 웃고 울며 위안을 삼았는데 그마저도 이제 곧 종영이라니. 그럼 어떠랴. 웃음과 재미를 줄 반8이 있는데. 그래, 반8, 도무지 재미라곤 찾을 수 없는 내 곁에 머물며 나를 웃겨다오. 

 

주는 사람의 정성에 재미를 더해주는 선물상자와 선물 포장지 모음집

주는 사람의 정성에 재미를 더해주는 선물상자와 선물 포장지 모음집 


반8의 재미있는 문구와 빈티지스러운 디자인

반8의 재미있는 문구와 빈티지스러운 디자인 (출처: www.ban8.co.kr)

 

 


웃긴 브랜드 반8


반8은 ‘웃긴’ 브랜드다. ‘웃기고들 앉아있네’를 사훈으로 걸고 웃음으로 시작해서 웃음으로 끝나는, 웃기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디자인 회사다. 

 

반8의 시작은 한글을 활용한 티셔츠였다. ‘가나다라마바사’ 같은 그냥 한글 말고, ‘사장’, ‘직원’, ‘행인’ 등의 단어나 ‘존경받는 상사’, ‘올해의 우수사원’, ‘있는 집 자식’ 등의 텍스트로 재미를 주는 티셔츠로 눈길을 끌었다. 

 

반8의 류강렬 대표는 원래 게임회사를 운영했다. 방사선과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일을 했지만 재미가 없어서 도저히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 게임회사가 처음은 아니었다. ‘재미있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학창시절부터 재미를 다루는 창업을 계획하며 실천하기도 했다. 

 

게임회사에서 반8로 넘어온 계기에는 별다를 것이 없었다.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다가 ‘왜 한글로 만든 티셔츠는 없을까’라는 디자이너의 질문이 계기가 됐다.

 

여기에 ‘꽂힌’ 류 대표는 바로 동대문 시장에 가서 티셔츠를 사다가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재미난 티셔츠 반8을 만들었다. 네이밍 작업도 즉흥적이었다. 그냥 ‘다양하고 재미난 티셔츠를 만들자’했고 어감이 좋아 ‘반8’이라 이름 붙였다. 

 

 

반8의 ‘부하 티셔츠’와 ‘국보급외모 티셔츠’

반8의 ‘부하 티셔츠’와 ‘국보급외모 티셔츠’ (출처: www.ban8.co.kr)

 

과거 홍대 어느 매장에 디스플레이 됐던 반8의 티셔츠는 매우 획기적이었다. 지금에야 워낙 레트로와 빈티지가 대세여서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지만 반8이 생겼을 당시만 해도 확실히 유일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었다. 

 

충분히 웃기고 키치스러운 티셔츠가 탐이 났지만 직접 걸칠 자신이 없어 그냥 지나쳤던 사람들은 몇 년 후 대형서점 디자인 제품 매장에서 다시 반8을 반갑게 마주하고 자신의 아이들에게 반8을 입혔다. ‘걸어다니는 화보’와 ‘국보급 외모’가 된 아이들은 앙증맞은 모습으로 유쾌한 웃음을 주었다. 인사동에서 외국인들이나 사는 ‘한글 티셔츠’는 반8에 의해 우리가 사고 싶은 옷이 됐다. 

 

‘3분 카레’를 패러디한 ‘3분 공부 노트’, 어른과 아이 모두가 좋아하는 떡꼬치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떡꼬치 메모잇’, ‘수박바’와 ‘와일드바디’를 패러디한 ‘수학봐’와 ‘와일드스터디’ 파우치

‘3분 카레’를 패러디한 ‘3분 공부 노트’, 어른과 아이 모두가 좋아하는 떡꼬치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떡꼬치 메모잇’, ‘수박바’와 ‘와일드바디’를 패러디한 ‘수학봐’와 ‘와일드스터디’ 파우치 (출처: www.ban8.co.kr) 


 

스테이셔너리도 반8이 대세


티셔츠와 모자 정도를 통해 존재를 드러냈던 반8은 특유의 디자인과 재미로 점차 알려졌고 분야를 확장시켰다. ‘제품개발이라기 보다 도화지에 반8의 색을 입힌 것’이라고 표현하는 류 대표의 말대로 반8은 의류와 모자에서 벗어나 수많은 종류의 도화지를 찾았다. 

 

노트, 필통, 메모지 등 각종 문구류와 쇼핑백, 선물상자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제품을 선보였다. 현재 반8의 제품은 대형서점의 핫트랙스나 텐바이텐 등의 디자인 제품 매장뿐 아니라 아트박스, 대형마트에도 입점, 판매되고 있다. 

 

반8의 제품을 이렇게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는 데에는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 홍대 어느 매장에 진열된 반8의 제품을 본 아트박스 대표가 제품을 진행해보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노트를 비롯한 여러 아이템의 작업을 하게 된 반8에 이때부터 바이어와 MD들이 러브콜을 보냈고 유통망이 확장됐다.

 

홈플러스와의 계약은 저가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브랜드의 가치가 인정된 케이스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1,000원, 2,000원짜리 노트들 사이에서도 5,800원짜리 노트는 잘 팔린다. 

 

‘수학봐 파우치’, ‘와일드스터디 파우치’, ‘다시봐 노트’와 같이 특정 제품을 패러디한 제품들은 보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었을 뿐 아니라 해당 업체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상품을 패러디한 제품도 만들어달라’는 전화도 받았고 잡코리아, 바른손카드, 대상, 넥슨, <맥심> 등과 컬래버레이션도 진행했다. 

 


반8은 넥슨, 잡코리아 등 여러 기업들과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반8은 넥슨, 잡코리아 등 여러 기업들과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사진제공: 반8)

 


디스플레이도 ‘fun’하게


유통망을 확보했으니 이제 디스플레이다. 반8의 제품은 숍에서도 특별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3분 카레를 패러디한 ‘3분 공부 노트’와 맛소금을 패러디한 ‘막쓰는 노트’, 햇반의 패러디 ‘해봐 메모 노트’는 ‘후추통 메모지’ 등과 함께 마트 내 상품 진열대처럼 디스플레이 되고 순대, 떡꼬치, 어묵 등의 ‘메모잇’ 제품들과 ‘김밥 필통’ 등의 제품은 포장마차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진열돼 소비자와 제품과의 만남에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이러한 디스플레이를 통해 제품을 선보이고 나서는 ‘숫자’에 집중한다. 디자인만큼 치밀하게 숫자를 검토하는 반8은 매월 분석을 통해 전략적으로 출시와 판매 계획을 세운다. 

 

자신들이 하는 일을 재미있는 콘텐츠 개발, 재미있는 기업 홍보, 재미있는 유통이라 소개하는 반8의 키워드는 ‘재미’다. 무엇을 하든 재미가 있어야 한다. 제품개발을 할 때에도, 디자인을 할 때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다. 어떤 분야든 반드시 웃음을 접목하는 것이 반8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재미를 추구하지만 작업의 모든 과정이 재미있진 않다. 재미있기 위해 재미없는 과정도 거치고 쥐가 날 만큼 머리를 쥐어짜기도 한다. 하지만 재미를 위한 생각을 많이 넣은 작업일수록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너무 웃기기만 하면 세다는 느낌을 주고 살짝 힘을 빼면 유치하기 때문에 중간을 찾기 위해 무게를 빼고 생각을 덜어내야 한다. 가장 어려운 이 작업은 시간과 경험에 의해 이루어진다. 

 

반8은 한국인의 먹거리 중에서도 세대를 아우르는 감성인 분식으로 재미를 주는 문구류 제품을 선보였다. 김밥모양을 한 필통과 각종 분식류의 모습이 그대로 담긴 메모잇 제품.

반8은 한국인의 먹거리 중에서도 세대를 아우르는 감성인 분식으로 재미를 주는 문구류 제품을 선보였다. 김밥모양을 한 필통과 각종 분식류의 모습이 그대로 담긴 메모잇 제품 (출처: www.ban8.co.kr)


은행 통장을 패러디한 ‘기억은행’, ‘의리은행’, ‘친한은행’, ‘근면은행’ 노트

은행 통장을 패러디한 ‘기억은행’, ‘의리은행’, ‘친한은행’, ‘근면은행’ 노트 (출처: www.ban8.co.kr)


  

디자인=우리 감성+재미


디자인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인들만의 감성을 건드리고 세대를 아우르는 핵심을 찾는 것이다. 이 작업들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이들에겐 회의의 방식도 중요하다. ‘간식’과 ‘먹거리’를 키워드로 잡고 생각나는 것들을 포스트잇에 적어 벽에 붙인다. 

 

그중 공통된 것을 찾았더니 ‘순대’다. ‘순대 메모잇’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과연 이것이 제품으로 나올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에 의해 사라졌다. 9살짜리도 알고 40대 어른들도 알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이들의 숙제다. 

 

회의만큼 중요한 것은 투표다. 신제품 출시를 앞두면 한 제품에 대해 10개 정도의 디자인을 두고 투표를 해서 작업들을 걸러낸다. 어느 것이 결정이 되면 제품화시켜보는데 재미가 없으면 재미가 있을 때까지 다시 과정을 반복한다. 

 

후추를 패러디한 메모지와 재미있는 문구가 눈에 띄는 USB, 접착 메모지, 지갑처럼 보이는 돈봉투 등 반8은 다양한 문구류 제품도 선보이고 있다.

후추를 패러디한 메모지와 재미있는 문구가 눈에 띄는 USB, 접착 메모지, 지갑처럼 보이는 돈봉투 등 반8은 다양한 문구류 제품도 선보이고 있다. (출처: www.ban8.co.kr)

 

반8의 디자인은 ‘재미’다. 반8스러운 디자인을 한다기보단 우리의 생활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부분 중에서 재미를 찾아 디자인한다는 표현이 더 잘 맞다. ‘반8’에서 ‘레트로’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부분이다. 

 

요즘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것을 찾다 보니 그것이 크로스오버 돼 표현된 것이다. 반8이 2002년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의 제품은 홍콩과 일본에도 진출했다. 역시 제안을 받아서다. 한류를 좋아하는 그들이지만 보편적일 순 없기에 올해는 새로운 전략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그들의 감성과 유행으로 그들을 웃겨보겠다는 게 반8의 계획이다.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트렌드를 연구하고 번역 작업을 하고 있는 반8은 올해 홍콩 메가쇼와 일본 기프트쇼에 나갈 준비도 하고 있다. 

 

반8의 사무실 벽에 걸려있는 사훈 ‘웃기고들 앉아있네’

반8의 사무실 벽에 걸려있는 사훈 ‘웃기고들 앉아있네’ 


반8의 류강렬 대표(맨 왼쪽)와 디자인팀 직원들간의 ‘자유로운 소통 현장’이다.

반8의 류강렬 대표(맨 왼쪽)와 디자인팀 직원들간의 ‘자유로운 소통 현장’이다. 

 

반8은 오피스와 리빙 쪽으로 또 한 번 카테고리를 넓힐 계획이다. 어떤 분야든 웃길 수 있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하겠다는, 할 수 있다는 의지다. 웃음을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팍팍한 생활 속에서 디자인을 통해 잠시나마 웃을 수 있어 반갑다. 살벌한 취업 준비 속에서도, 딱딱한 회사에서도 웃음을 주고, 재미로 사람 간의 사이를 더 돈독하게 해주니 말이다.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줄 반8이 있어 참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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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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