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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소도시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골목의 동네서점

2021-05-15

2000년대 초반 자본을 앞세운 대형서점의 물량 공세와 온라인 서점의 할인정책에 동네의 작은 서점들이 문을 닫으며 작은 서점은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에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장소에 관심이 커지면서 동네 골목에 하나 둘 독립서점이 들어서고 있다. 독립서점이란 말 그대로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서점을 의미하며 협의의 의미로는 독립 출판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서점을 일컫기도 한다.

 

대형서점과 온라인 마켓에서 경험하기 힘든 취향을 내세운 작은 서점들의 운영방식이 최근의 트렌드와 맞물려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개성을 존중하는 세대들은 획일화된 인테리어와 베스트 셀러 위주로 진열된 대형서점 스타일이 아닌 새로운 공간을 요구한다.

 

독립서점은 서점 주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특정 분야의 책을 큐레이션하는 것으로도 책방 주인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서점의 주인이 직접 서점을 소통의 공간으로 이용하며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기도 한다.

 

골목의 작은 서점을 찾아 여행을 떠나요

 

동네의 작은 서점을 찾는 손님들이 증가하자 전국 곳곳에 다양한 개성을 지닌 동네서점이 생겨났다. 특히 최근에는 여행을 떠나기 전 방문하고 싶은 독립서점을 찾아보거나 독립서점을 방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독립서점 투어’族도 늘고 있다. 동네에 서점이 들어서며 골목이 바뀌고 변화된 도시를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여행자들이 증가하는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독립서점이 골목의 분위기를 바꾸고 소도시의 디자인을 변화시키고 있다. 목포의 주목할만한 세 곳의 독립서점도 그러한 공간이다.

 

목포 ‘고호의 책빵’, 빵은 옆집에서 팔아요

 

목포의 오래된 원도심 안에 자리 잡은 고호의 책방은 차 없는 거리에 조심스럽게 내놓은 독특한 입간판이 눈길을 끄는 공간이다.

 


고호의 책방
 

고호의 책방의 독특한 입간판

 

 

이 간판을 쓰게 된 배경을 알고 찾아온 여행자들은 입구에서부터 마음을 빼앗긴다. 어쩌면 목포에서 제일 유명할지도 모를 코롬방제과점이 서점의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서점의 주인들은 서점의 문을 열며 이름을 짓는 일에 공을 들인다고 했다. 이름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호의 책방은 예술도서를 중심으로 한 큐레이션 서점이다.

 

서점의 주인은 2017년 11월에 목포로 이주해온 서울사람으로 평생 디자이너로 활동해온 50대 후반의 백선제씨다. 글을 쓰는 아내와 디자인을 하던 남편은 2016년에 처음 목포를 방문한 뒤에 목포의 매력에 빠졌다고 했다. 목포의 원도심은 그가 어린 시절 자랐던 정릉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어 놀라웠고 시간이 겹겹이 쌓여있는 공간이 눈에 보여 더욱 정이 갔다고 한다. 자녀들은 독립했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그의 직업이 다른 지역에서의 삶을 가능하게 했다.

 

그가 고호의 책방을 운영한 것은 2020년 2월부터다. 많은 이들은 이 책방의 주인이 처음부터 그였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놀랍게도 원래 고호의 책방이란 이름을 지은 이는 이전의 주인이라고 한다. 1년 정도 운영한 뒤에 새로운 주인에게 물려준 것이다. 이전 주인이 왜 고호의 책방이라 이름을 했는지 백선제씨도 궁금해서 물어봤다고 한다. 그가 전 주인에게 들은 서점의 이름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재미있다. 피카소의 책방은 이름의 저작권이 있어서 쓸 수 없었는데 고호만이 저작권이 풀려서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전 주인이 운영하던 시절의 서점은 예술서적 전문점이 아니었다. 새로운 주인은 이름을 그대로 쓰는 대신 책방의 이름에 서점의 정체성을 부여했다. 디자이너로 살아온 서점 주인의 정체성과 일치하며 고호의 책방이 비로소 완성되었다.

 

 

고호의 책방에서는 예술을 판다

 

 

고호의 책방의 주 고객은 목포를 찾는 여행자들이다. 많은 여행자들은 목포에 와서 꼭 들러봐야 할 곳으로 고호의 책방을 꼽기도 한다. 사람을 좋아하는 서점의 주인은 서점을 찾아오는 여행자들에게 말을 걸어 그들을 친구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목포 여행의 소소한 이야기를 들으며 서점 주인은 함께 여행하는 기쁨을 맛본다고 했다. 주인은 스스로 고호의 책방을 홍보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대신 여행을 마치고 도시로 돌아간 여행자들은 작은 서점을 스스로 홍보하는 팬이 되었다고 한다.

 

여행자들 중에도 단골이 생기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목포 사람들 중에 단골이 늘었다고 한다. 목포 시내의 학원 선생님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고호의 책방을 찾곤 하는데, 올 때마다 학생들과 함께 와서 책을 사간다고 했다. 진도에 귀농한 청년은 목포에 나올 때마다 서점을 찾아오더니 최근에는 아내를 데려와 인사를 했다고 전했다.

 

작은 서점은 작은 공간을 쪼개어 지역의 디자인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목포를 배경으로 한 디자인 상품과 주인이 직접 그린 여행자 맞춤용 엽서도 있다. 또한 지역의 청년작가가 목포를 배경으로 한 상품 코너도 따로 구성하는 등 지역과 함께 하는 네트워크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다.

 


항구도시의 낭만고양이 디자인 상품

 

 

예술서적 큐레이션 서점인 고호의 책방은 목포의 원도심을 사람냄새 나는 공간으로 디자인하는 중이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만나는 공간, ‘동네산책’

 

많은 독립서점들이 의외의 장소에 자리한 경우가 많은데, 동네산책도 상가가 아닌 주택가에 자리잡았다. 그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런 곳에 서점이?’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목포시립도서관 아래의 주택가 오르막을 걸어 오르다가 숨이 약간 찰 때가 되면 주택을 예쁘게 개조한 작은 서점이 눈에 띈다. ‘동네산책’을 하며 만날 수 있는 ‘동네서점’이다.

 


골목길에 자리한 서점, 동네산책 

 

 

동네산책은 서점의 주인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 곳곳에 드러나도록 큐레이션한 문학중심의 서점이다. 서점은 시, 소설, 에세이, 그림책 등 서점 주인의 취향을 드러낸 문학 서적이 대부분이다. 대형서점에서 팔지 않는 책들이 제법 많이 보이고, 차를 마시며 책을 읽기 좋도록 작은 카페도 함께 운영 중이다. 주택을 개조한 공간은 아기자기하게 공간을 나누어 구성하고 있는데, 작은 회의실이나 혼자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차를 마실 수 있도록 작은 카페도 있어서 이곳에 오면 모든 것이 한 번에 해결된다.

 


동네산책 큐레이션

 


서점의 주인인 윤소희작가는 책을 매개로 손님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본인이 책을 읽은 느낌을 전하기도 하고 슬쩍 추천하기도 한다. 서너 줄의 손글씨 속에 서점 주인의 마음이 전해져서인지 책방은 따뜻한 공간이 된다.

 


서점 주인이 추천하는 한 줄 서평

 

 

서점의 주인은 동네 사람들이 산책하며 들어올 수 있는 공간으로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이는 입구의 안내문에서도 잘 드러난다.

‘노키즈존이 아니라 예스키즈존입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가만히 있는 걸 힘들어합니다. 조용히 하라고 윽박지르지 마시고 작은 소리로 속삭이며 책을 읽어주세요. 저절로 책방 분위기를 배우게 될 겁니다.’

 

서점의 주인은 손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전한다.

‘사람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고양이가 있습니다.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분은 말씀해주세요. 고양이 말고 저에게 ^^. 개냥이의 이름은 ’동이‘입니다.’

‘사진 찍어도 되냐고 매너 좋게 허락을 구하시는 분들은 맘껏 찍으셔도 됩니다. 다만 작가와 출판사의 저작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본문 페이지 촬영은 자제해 주세요.’

‘책도 안사고 음료 주문도 안 하고 구경만 하셔도 됩니다. 미안해 하거나 부담 갖지 말고 ”구경 잘하고 갑니다“ 인사 한 마디면 충분합니다.’

‘문학 중심 작은 책방 <동네산책> 책방지기’

 


동네산책의 문학행사 

 

 

동네산책이 만드는 길은 동네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이다. 동네산책은 그 이름처럼 동네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추진하고 있는데, 책방 주인이 진행하는 책읽기 글쓰기 독서모임 프로그램이 많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하여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그 전에는 제법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 프로그램이다.

 

동네산책의 인스타그램에는 가끔 주인을 잃은 분실물이 올라오기도 하는데, 이런 소소한 이야기가 동네서점 주인의 마음인지도 모를 일이다.

 


동네산책의 인스타그램 중 

 

 

상가가 밀집된 거리가 아닌 조용한 주택가 골목에서 서점을 운영하려면 서점주인의 크고 작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의외의 공간에 처음부터 제 발로 찾아오는 손님은 많지 않다. 손님이 오는 길을 서점 주인이 만들어 가야 한다. 동네산책은 햇살 좋은 어느 날 산책을 하다 들어가 차 한잔과 함께 오래도록 책을 읽고 나오는 일상의 라이프를 디자인하고 있다.

 

서점 주인의 삶의 철학을 담은 ‘지구별서점'

 

목포역에 내린 여행자들이 여행 가방을 끌고 가는 곳이 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녀들의 뒤를 따라 10여 분 걸어서 가다 보면 얼핏 미용실처럼 보이는 곳에 도착한다. 어린 시절 보았던 뺑뺑이 간판이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전에 사용하던 가게 물건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물려 쓴 흔적이다. 서점의 주인은 서점이 아니라 환경과 관련한 제로웨이스트 숍을 할 생각이 컸다고 한다. 환경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책방 주인의 의지는 이전 주인의 흔적을 버리는 대신 재활용을 선택했고, 서점의 정체성이 되었다.

 


지구별 서점 간판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서도 예전 모습을 그리 바꾸지 않은 느낌이 든다. 공간구성도 보통의 서점과는 조금 다르고 매장의 분위기도 다르다. 서점 주인의 취향이 공간을 구성하는데도 작용했다. 독립서점이니 이곳에서 판매하는 책은 독립출판이 원칙이다. 서가에 꽂힌 책들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구하지 못하는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구별서점의 서가 

 

 

처음 들어서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공간은 여행 코너다. 지구별서점이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지구 곳곳을 소개하는 여행서적과 사진들이 눈에 띈다. 벽에 장식된 세계지도는 가끔 사가겠다는 손님을 만나기도 한다.

 

지구별서점의 주인 라보림씨는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뒤로하고 2년 전에 지구별서점의 문을 열었다. 2년 전 평범했던 직장인은 교통사고를 당하며 평범한 삶에서 벗어났다. 사고를 겪으며 동생과 함께 나눴던 이야기가 계속 가슴에 남았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2019년 초에 동생과 나누던 희망섞인 이야기는 사고를 겪으며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 퇴직을 결심하고 나만의 공간을 책으로 채울 생각을 했다. 서울과 광주, 부산을 오가며 독립서점을 만났고 목포에 독립서점을 만들겠다고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원하는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 갔겠다는 생각으로 서점의 문을 열었다는 서점주인은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책방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대형서점에서 판매하는 책을 팔지 않겠다는 것과 환경을 생각하는 책과 상품을 판매한다는 것이다. 서점주인이 자신의 SNS에 환경에 관한 자신의 관심사를 게시하면 사람들이 그에 호응하며 그녀는 어느새 SNS에서도 꽤 이름이 났다.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 외의 상품들도 플라스틱처럼 환경을 오염시키는 재료가 아니라 환경파괴를 최소화하는 종이와 패브릭 위주의 상품으로 구성되었다. 지구라는 별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하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지구별을 물려주기 위한 서점 주인의 작은 노력이 서점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서점 주인의 메시지를 담은 환경 코너 

 

 

서점주인이 신경써서 만드는 공간으로 폐현수막 재활용 캠페인 코너가 있다. 버리는 폐현수막을 업사이클링한 책싸개와 책파우치 상품이다. 책과 연관성이 있으며 서점주인의 정체성과 일치하는 상품은 결이 맞는 손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이미 이전의 지구로 돌이킬 수 없는 세상까지 온 상황에서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 실천하고 알리겠다는 서점 주인의 마음이 작은 서점에 가득하다.

 


폐현수막으로 만든 책커버 

 

 

서점을 들어선 손님의 눈길을 사로잡는 문구가 보인다. ‘지구별 한문장 <인생글귀> 적어 넣어주세요. 한 장은 가져가세요.’ 서점을 찾은 손님들은 자신의 인생글귀를 공유하며 서로 소통하고 있다. 큰 유리병은 소통의 창구가 된다. 다른 사람의 인생 글귀를 가져오며 나의 인생 글귀를 다른 이에게 선물하는 따뜻한 공간이다.

 


서점의 손님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지구별 한문장 코너 

 

 

서점을 운영한지 2년이 지난 뒤에 서점의 주인은 원하던 것들을 대부분 이루었다고 한다. 자기공간을 갖겠다는 것,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것, 환경관련 책과 코너를 만드는 것, 독서 모임을 하는 것 등 원하는 것들을 모두 이루었다고 했다. 많은 것을 이루어 행복하냐고 물어보자 그렇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오히려 최근 들어 고민이 더욱 커졌다는 답이다. 처음 시작할 때 3년만 운영해보겠다고 했는데 하면 할수록 독립서점을 계속 운영해보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평생 독립서점을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는 것이다. 그녀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의 어려움 등 자영업자들이 안고 있는 고민을 토로했다. 작은 서점에서 이루어지는 판매만으로 임대료와 운영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서점 주인이 계속 독립서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공간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다양한 이야기를 써나가는 독립서점, 서점이 바꾸는 지역의 도시 디자인

 

지역의 독립서점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지방 소도시의 작은 골목길을 다채롭게 디자인하고 있다.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 여행자들은 지역의 독립서점 투어를 떠나기도 한다. 독립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다. 주인의 취향을 진열하고 소통을 전시하며 마음을 판매한다. 이야기를 통해 공간을 디자인하는 독립서점이 도시의 분위기를 서서히 바꿔나가고 있다.

 

글_ 이선영 기획편집위원(lsy@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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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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