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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스토리×디자인] 접촉 금지! - ’사회적 거리두기’의 문화사

2020-10-27

지금으로부터 170년 전,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해를 끼칠 짓을 할지 모른다는 의심과 불안감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또한 인간은 타인에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사회적인 동물이지만 동시에 관계가 지나치게 허물없이 친밀해지면 애착을 형성해 심적 상처의 원인이 된다고 봤는데, 그 같은 인간관계의 진퇴양난적 본질을 그는 ‘고슴도치의 딜레마’로 비유했다. 평소 혼자 다니며 생활하다가 겨울철 추위를 견디기 위해 다른 고슴도치와 서로서로 몸을 붙이면 결국 상대 고슴도치의 뻣뻣한 가시에 찔려 멀리 떨어져 지내야 하는 고슴도치들의 숙명에 빚대어서 쇼펜하우어는 인간 존재 역시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자율적이지만 고독할 수밖에 없다고 규정하는 것으로써 다가올 개인주의의 시대 20세기 근대기의 여명을 고했다.

 


개인주의 사상과 시민정신이 기반된 서구 근대의 여명기, 가족 사이에서도 적정 거리두기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의미했다. 화가 앙드레 벤들러(André Wendler)가 그린 한 미국 가족 초상화에 콜라주(1.5m), 1850년 경, 소장: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사람과 사람 사이 서로의 몸이 닿지 않도록 물리적 거리두기, 비말이 튀지 않도록 마스크 쓰기 등 오늘날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귀가 따갑도록 지시받는 사이 어느새 자연스러운 일상 예의가 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응으로, 별안간 발명된 새 개념은 아니다. 문화와 사회마다 실행 방식과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인류는 수 천 년 전부터 타인과 만나고 소통할 때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공손함의 표시로써 적정 물리적 거리두기를 해왔다.

 

보카쵸의 1352년 경 쓰인 중세 소설 <데카메론>의 1430년 판 본 중의 한 페이지

 

 

건강과 보건 유지의 차원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접촉을 최소화하거나 물리적인 거리를 두는 대응 행동은 인간의 역사적 기억 속에 각인된 기초 방어 본능이다. 주변에 기침, 재채기, 코 훌쩍임 같은 보균 징후(청각), 발진이나 상처 같은 신체 표면 상의 비정상 상태(시각)나 악취(후각) 등 이상 징후를 감지하면 피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흑사병이 창궐하던 14세기 유럽인들은 이 무서운 전염병의 정체와 전염 방식은 몰랐지만 북이탈리아에서는 대인 접촉 제한과 공공물 표면의 소독 같은 사회적 위생수칙을 실천했다. 14세기 피렌체의 소설가 죠반니 보카쵸의 <데카메론>은 흑사병이 창궐하는 도시를 떠나 시골로 피신해 맑은 공기 숨쉬기와 타인과의 거리두기로 흑사병을 극복한 피렌체 시민들의 이야기 모음집이다.

 


프랑스의 풍자 화가 겸 커리커쳐리스트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 1808-1879)가 묘사한 파리 일상 풍경 중 <파리의 콜레라 전염병(Cholera in Paris)>, 컬러 판화. Credit: Sheila Terry / Science Photo Library

 

 

전쟁과 유행과 마찬가지로 전염병도 돌고 돈다. 1832년 파리에서는 콜레라가 돌았는데 약 6개월 동안 지속된 이 전염병으로 파리 시민의 약 2만 명이 사망했다. 식수원 오염, 열악한 하수도 시설, 빈곤과 비위생이 만연한 도시 환경에서 생긴 콜레라균이 원인이라는 과학적 사실이 50년이 지난 후에야 규명됐다. 그 후 파리시는 유젠 오스망 남작이 주도된 대대적인 파리 개조 사업을 추진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위풍당당한 대로 거리와 우아한 오스망 양식 건축으로 변신했다. 파리의 콜레라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상하수도 시설 없이 작고 꼬불꼬불한 거리 위의 비좁은 중세식 가옥에서 살던 도시 빈민들이 인간답고 위생적인 도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국가적 토목사업은 단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프라 안제리코(Fra Angelico), <나를 만지지 말라(Noli me tangere)>, 프레스코, 1438년, 177 cm x 139 cm. Museum of San Marco

 

 

성서에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담긴 또 다른 의미-영혼적 또는 정치적 권력관계-가 나타나 있다. 요한복음서에서 창부였다가 예수의 제자가 된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를 안으려 하자 예수가 ‘나를 만지지 말라’(라틴어 Noli metangere)라고 명하는 것으로써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3일 만에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을 입증했다. 근대적 민주주의가 정착하기 이전 절대주의 시대 계급사회에서 온갖 대인 간 만남은 복잡한 신체적 거리두기 예법과 몸가짐을 규정하는 명령과 법령에 따라 준수됐다.

 


피터 셴크(Pieter Schenk), <루이 14세를 방문한 네덜란드 외교관 영접 광경>, 판화, 1714년. 소장: Rijksmuseum Amsterdam

 

 

예컨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귀족 발데사르 카스틸리오네가 쓴 책 <궁정론>에 보면, 무릇 위신 있는 위트 있고 우아한 대화에서는 남녀 모두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행하는 것이 예의라고 가르쳤다. 대인 간 관계가 평등해지고 캐주얼해진 지금도 고위급 미팅과 외교 의전에는 그 같은 엄격한 의례가 행사된다. 2009년 오바마 내외가 버킹햄 궁전 영국 왕실을 방문했을 당시, 영부인 미셸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어깨를 팔로 감싸 안는 결례로 궁중 예법을 어겼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신체적 거리두기라는 보디랭귀지에 담긴 복잡다단한 권력 언어와 의전의 세계를 시사한 사건이다.

 

에드워드 T. 홀의 저서 <숨겨진 차원(The Hidden Dimension)>의 1966년 판 책 표지 디자인. Ancho Books Edition

 

 

19세기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는 계몽주의와 근대적 개인주의 정신의 대중적 확산으로 평범한 사람들도 서로서로 신체적 거리를 두고 생활하는 것으로써 상대방 개인에 대한 존엄과 존중을 표시했다. 1960년대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엔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사회적 공간’이란 개념을 통해서 규율과 보디랭귀지 공히 권력과 영향이 큰 자와 함께 할수록 사회적 거리는 멀어진다고 설명했다.

 

악셀 셰플러(일러스트레이션)와 줄리아 도널드슨(글) 동화책 <You’d better be safe …> 2020년. © Axel Scheffler Courtesy: Axel Scheffler, Julia Donaldson

 

 

자연 속의 생명체들도 조화로운 공존을 위해 거리두기를 한다. ‘나를 만지지 말라(Touch-me-not)’라는 꽃말의 미모사는 건드리면 이파리가 오므라드는 특성 때문에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 꽃을 부끄러움을 잘 타고 민감한 여인에 비유했다. 미모사는 외부의 작은 진동, 대인 온도의 낙폭, 낮밤의 변화에 따라서도 반응하기 때문에 최근 과학자들은 미모사를 기후와 환경 변화 탐지용 센서로 훈련시켜 천연 환경 탐지 수단으로 활용한다. 독일의 어린이 동화 그림작가 악셀 셰플러(Axel Scheffler)는 그가 그린 수많은 그림책 속 이야기를 통해서 영토와 텃세 보호 본능을 지닌 동물계 생명체들도 타동물들의 활동 영역을 존중하며 살아간다는 자연의 섭리와 자연 존중의 교훈을 전달한다.

 

나환자의 발을 씻겨주는 성 엘리자베스는 거지, 집 없는 자, 억울한 자, 죽은 어린이, 노인, 과부 같은 사회적 약자의 수호천사가 된 유럽 중세 13세기 헝가리의 성녀다. 15세기 독일 튀링겐 필사본. 소장: Deutsches Buch- und Schriftmuseum der Deutschen Nationalbibliothek

 

 

민주주의와 개인존중 의식이 보편화된 오늘날, 대중은 권력자에 의해 명령되는 거리 유지 의례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라는 예상치 못한 새 국면을 맞아서 의료계와 정부는 과학과 법령이라는 권력을 들어 대중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시하고 비즈니스 운영에 관여하며 대중은 복종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권력의 이해관계에서 지속되면 사회는 보건위생을 넘어 생업 파탄, 인간관계의 단절, 정신질환, 자살 등과 같은 2차 후유증을 앓는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계의 위대한 성인들은 아프고 병든 자들과 서슴없이 접촉하고 보살피는 것으로써 극도의 이타주의와 헌신적 행적을 표현했다. 종국에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임시적’ 보건 조치는 인간적 접촉과 정상적 교류로의 복귀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글_ 박진아 객원편집위원(jina@jinapa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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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칼럼니스트
미술평론가, 디자인 및 IT 경제 트렌드 평론가, 번역가이다. 뉴스위크 한국판, 월간디자인의 기자를 지냈고,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미국미술관, 뉴욕 모마,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 갤러리에서 미술관 전시 연구기획을 했다. 현재 미술 및 디자인 웹사이트 jinapark.net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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