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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디자인] 하리보 젤리 캔디 탄생 100주년을 통해 본 ‘설탕이 빚어낸 푸드디자인’

2020-07-05

독일어권 국가와 유럽 곳곳 거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동네 당과자점 진열장에 빠지지 않고 팔리는 단골 상품, 과일 젤리. 알록달록 다양한 색, 긴 막대 모양, 달팽이처럼 둘둘 말린 나선모양, 코카콜라 병 모양, 귀여운 동물 형상에 설탕 결정 혹은 밀가루처럼 고운 설탕가루를 입혀 무지개처럼 진열된 젤리 캔디는 우리의 지치고 울적했던 기분을 떨쳐주고 각박한 일상으로부터 동심의 세계로 초대한다.

 

각양각색의 캔디가 진열돼 있는 동네 캔디 가게는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동심의 세상으로 초대한다. Photo: Dmitry Mishin, Unsplash 

 


‘하리보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줘요, 어른들도 [행복하게] 해주고요(HARIBO macht Kinder froh und Erwachsene ebenso)’라는 그 유명한 광고 슬로건이 있다. 독일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라는 독일식 양배추 김치를 꼽는다면, 디저트 간식으로는 하리보 젤리 캔디를 든다. 독일 최후의 황제 빌헬름 2세 황제 겸 프러시아왕, 유명한 풍자 소설가 겸 시인 에리히 캐스트너,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좋아해서 즐겨먹었다고 전해지는 하리보 구미베렌(Gummibären)이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하리보 ‘구미베렌’ 춤추는 곰 모양의 젤리 캔디. Photo: Amit Lava, Unsplash 
 


1920년 12월 13일은 독일 본에서 당과자 가게를 운영하던 한스 리겔(Hans Riegel in Bonn)이 자신의 이름과 살던 도시 이름의 알파벳 앞 두 자씩을 따서 하리보(Haribo)라는 회사를 사업자로 등록한 날이다. 당과제조기술자 한스 리겔 씨가 사업을 시작할 당시 흰 설탕 한 주머니, 대리석 작업대, 등받이 없는 작업 의자 하나, 벽돌 오븐, 구리 주전자와 반죽 밀방망이가 사업 밑천의 전부였다. 창업 초기 그는 아내와 함께 초촐한 주방에서 설탕을 졸여 밀고 빚어낸 딱딱한 수제 캔디(boiled sweets)와 과일맛 나는 껌(fruit gum)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1920년 독일의 수도 본에서 한스 리겔 씨가 설립한 하리보 사탕수제공장을 설립했을 당시 공장 건물 안뜰 모습. Courtesy ⓒ 2020 HARIBO 

 


입 안에 넣고 씹으면 고무처럼 쫄깃하지만 씹을수록 사탕처럼 입 안에서 녹는 달콤쌉싸름한 시그니처 과일향 하리보 ‘구미베렌’이 처음 발명된 해는 그로부터 2년 후인 1922년. 창업자 리겔은 어느 하루 19세기식 연례 전통장터에 들렀다가 춤추는 서커스 곰을 보고 착상을 얻어서 두 팔을 든 모양의 금색 ‘춤추는 곰(Tanzbär)’으로 디자인하게 됐다는 제품 탄생 설화는 지금도 사내 전설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중독성 있는 새콤한 맛의 작고 귀여운 사우어카우(Sauerkau, 신맛 젤리라는 뜻) 오리지널 ‘골드베렌(Goldbären)’ 젤리는 빨강, 노랑, 주황, 보라색으로 지금보다 크게 만들어져 2개에 1페니히(≈7원: 참고: 1 독일 마르크≈100 페니히, 1마르크≈우리돈 약 700원)에 팔렸다. 당시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초인플레이션 물가까지 감안한다면 매우 싼 가격이었다.

 

1922년 한스 리겔 씨가 장터에서 본 서커스 곰에서 착상해 디자인한 오리지널 하리보 ‘구미베렌’ 젤리 사탕 디자인. Courtesy ⓒ 2020 HARIBO 

 

 

사실 서양 음식사에서 당과류의 역사는 설탕 없이 탄생할 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설탕은 건강을 해치는 질병의 주범 중 하나로 수난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수 백 년 전만해도 부유층이 아닌 한 먹기 어려운 값비싸고 귀한 조미료였다. 16~17세기 항해탐험과 신대륙의 발견 덕분에 커피, 차, 사탕수수 설탕이 유럽에 소개되기 전까지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유럽인들은 음식에 단맛을 내거나 부패되기 쉬운 식재료를 통조림 할 때 과일즙이나 꿀을 썼다. 1747년 독일의 과학자 지기스문트 마르그라프(Sigismund Marggraf)는 사탕무에서 단맛을 추출해내는 방법을 찾아냈다.

 


(왼쪽부터) 하리보 골드베렌 젤리 캔디 패키징 디자인의 변천, 1961년, 1968년, 1978년. Courtesy ⓒ 2020 HARIBO. 독일어로 ‘과일고무(Fluchtgummi)’라는 뜻인 하리보 젤리 캔디는 오늘날 전세계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젤리 캔디 브랜드가 됐다. 1980년대에 미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로 글로벌 확장을 거듭해 오늘날 전세계 16개 공장에서 매일 평균 1억 개의 조그많고 귀여운 젤리 곰들이 생산되어 83개 나라에서 팔려나가고 있다. 

 


그후 19세기 식품가공기술의 발달로 유럽에서는 사탕무에서 설탕을 대량 생산하는 공법에 성공하면서 비로소 설탕은 대중적 조미료가 되고 당과가 대량생산되기 시작했다. 딱딱한 하드 캔디, 캬라멜, 마시멜로, 허브드롭 같은 설탕 가공 캔디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대량생산돼 미국으로 전파됐고, 이어서 독일로 전파됐다. 사탕가공법을 응용하여 사탕무 설탕에 천연 검질(Gummi arabicum), 과일향, 색소를 적절한 비율로 조합해 달여 만들어 씹어먹는 재미를 준 고무같은 쫄깃한 캔디가 바로 하리보 젤리 캔디다.

 

1930년대 출시한 포도주 맛 하리보 젤리 캔디와 패키징 디자인. Courtesy ⓒ 2020 HARIBO 

 


하리보의 구미베렌 젤리 캔디 장사는 계속 번창했다. 때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발 경제 대공황과 독일 초인플레이션 금융 위기로 독일인들이 경제난으로 허덕이던 시절, 일상의 퍽퍽함 속에서도 -어쩌면 그 때문에- 단과자와 사탕은 더 잘 팔려나갔다. 리겔 씨는 사업 영역을 확장해 1925년부터 영국에서 수입해 들여온 감초를 원료로 한 라크리츠 젤리 캔디(감초사탕)를 생산하기 시작해 독일인들에게 처음으로 감초라는 칠흙처럼 색이 검고 맛은 쌉쌀한 이국적 약초맛을 소개했다. 일찍이 16세기부터 감초 뿌리를 갈아 설탕을 넣고 오래 달여 정제로 만들어 먹었던 영국인들에게 리코리츠 캔디는 주전부리 사탕을 넘어서 기침과 위장병 치료제로 쓰이는 약이었다. 그렇게 하리보의 리코리츠 젤리 캔디는 1994년, 300년된 영국의 유서깊은 리코리츠 가공업체 폰티프랙트(Pontefract)를 인수할 정도로 성장을 거듭해 나갔다.

 


하리보의 라크리츠 감초사탕을 선전한 1968년 광고 포스터. 라크리츠는 쫄깃한 식감과 건강에 유익한 약용식품으로 홍보되며 칠흑처럼 검은 색에서 영감받아 달팽이, 담뱃대, 납작한 버튼 또는 악마의 얼굴 모양으로 디자인됐다. Courtesy ⓒ 2020 HARIBO 

 


세월의 흐름과 함께 식품가공 기술도 발전한다. 물론 하리보의 골드베어(GOLDBEARS®)의 첨가 원료도 변천과 개선을 거쳤다. 오늘날 하리보는 골드베어 젤리에 쫀쫀한 식감을 주기 위해 사용되던 검질을 젤라틴으로 대체했고, 일부 제품에는 옛 레시피에 넣지 않던 녹말을 새로 첨가해서 맛과 향을 더 부드럽고 균질하게 개선시켰다. 하리보 구미 젤리 특유의 맑고 투명한 비주얼은 글루코오스 포도당 시럽(glucose syrup) 덕분이며, 쫀득한 식감과 새콤한 맛은 설탕, 덱스트로오즈 포도당(단맛을 강화하는 추가 감미료), 젤라틴(쫀쫀한 질감) 그리고 향료와 색소를 적절히 조합 가공해 성형하는 제조공정의 결과물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나라와 문화권 마다 입맛도 다르기 때문에 로컬 시장에 따라 레시피도 조금씩 다르다. 예컨대 미국과 일본 시장에서 팔리는 하리보 젤리 캔디는 더 달게 제조된다. 소비자시장조사 연구에 따르면, 라크리츠 감초사탕은 건강에 유익하다는 점 때문에 향후 5년 내로 아시아 시장에서 큰 매출을 올릴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다(자료: Market Research Reports, Prudour Pvt. Ltd).

 

미국의 화가 웨인 티보(Wayne Thibaud)의 회화 작품 <롤리팝 사탕(Lillipops)>, 1964년. 막대에 사탕을 연결한 막대사탕은 1908년에 미국의 사탕제조업자 조지 스미스가 처음 발명했다. 

 

 

인간이 달콤한 맛을 갈구하는 것은 본능이라고 한다. 세상살이가 각박해지고, 하루하루 삶이 녹록하지 않을수록 우리는 달콤한 것을 먹으며 작은 행복을 느끼고 위안을 찾는다. 캔디 속의 당(糖)은 지친 우리 몸에 즉시 순간적인 에너지를 주고 정처없는 마음에 안정을 주는 중요한 양분이다. 단맛은 끝나지 않고 영원하길 바라는 철없이 즐거웠던 어린 시절을 응축한 미각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젤리 캔디 만으로 우리의 신체가 필요로 하는 모든 영양소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권의 좋은 책이나 예술작품이 우리의 영혼을 풍요롭게 해주듯, 누구나 어디서든 쉽게 취할 수 있는 달콤한 캔디는 행복한 삶을 유지해주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비밀일는지도 모른다. 


글_ 박진아 객원편집위원(jina@jinapa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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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칼럼니스트
미술평론가, 디자인 및 IT 경제 트렌드 평론가, 번역가이다. 뉴스위크 한국판, 월간디자인의 기자를 지냈고,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미국미술관, 뉴욕 모마,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 갤러리에서 미술관 전시 연구기획을 했다. 현재 미술 및 디자인 웹사이트 jinapark.net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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