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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트 | 인터뷰

워메 겁나게 귄있네, 그랑께 역서사소

2020-03-20

경북에서 태어나 꼬맹이 시절을 보낸 에디터는 사투리를 무척이나 찰지게 구사했더랬다. 서울로 전학을 온 순간부턴 무슨 이유에선지 악착같이 표준어를 사용했는데, 서울 토박이인 부모님 덕에 표준어를 할 줄 알았던 걸 나름 다행으로 여겼던 것 같다. 

 

지금 사투리를 쓰는 누군가를 보면 무척이나 반갑고 정겹다. 어릴 땐 알지 못했던 사투리의 매력을 느끼게 된 건 TV를 통해서였던 것 같다. 특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들리기 시작한 사투리는 무척이나 흥미로웠고, 스토리나 캐릭터를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로 다가오기도 했다. 

 

듣는 사투리와 다르게 글로 만나는 사투리는 더 좋다. 한 자 한 자 읽을 때 인식되는 음과 뜻에 푸근함이 더욱 짙어지는 것 같아서다. 유머는 덤이다. 

 

역서사소는 디자인을 통해 사투리를 알리고,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역서사소는 전라도 지역의 사투리를 디자인화해 사투리의 맛과 멋을 알려주었다. ‘여간좋은 오월’, ‘징해 팔월’, ‘욕봤소 십이월’과 같은 문구로 그 달을 충분히 전하는 심플한 달력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 없었다. ‘니만 생각하믄 내맴이 겁나 거시기해’, ‘나으 가슴이 요로코롬 뛰어분디 어째쓰까’라 쓰인 재치 있는 엽서는 발랄하면서도 정감있다. 

 

의미있는 날을 사투리로 전하는 일력

 

 

다양한 사투리와 함께 매일을 맞이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일력은 전라도 사투리를 통해 의미 있는 날들을 기록하고 있다. 몰랐던 단어를 알게 되는 것도 좋지만, 사투리를 통해 그날을 기억하는 역서사소의 방식이 하루하루 달력 뜯는 재미를 더한다.

 

덕분에 다정하고 부드러운 전라도 사투리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사투리로 인물에 대해 알아가는 것처럼, 사투리를 통해 지역의 감성에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디자인을 통해 지역의 언어를,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말하는 역서사소. 김진아, 김효미 대표가 전하는 역서사소의 이야기다.

 

(왼쪽부터) 역서사소 김진아, 김효미 대표

 

 

두 대표님과 역서사소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역서사소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저희는 같은 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선후배로, 전라도 광주지역에서 시각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던 중 우리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보고자 역서사소를 론칭하게 됐어요. 

 

나만의 브랜드를 갖는다는 건 여느 디자이너들의 꿈이자 희망일 거예요. 저흰 새로운 것을 개발하기보다 우리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고, 모든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했는데요, 그러다 우리 지역의 언어인 ‘전라도 사투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재미있고 다양한 사투리의 뜻을 알리기 위해 저희 지역의 언어 ‘사투리’를 선택하게 됐어요.

 

‘역서사소’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나요?
‘역서사소’는 ‘역서-여기서, 사소-사세요’로, ‘여기서 사세요’라는 전라도 말이에요. ‘역서사소’라는 이름은 또 다른 뜻을 갖고 있는데요, 해 반짝 뜰 역(晹), 서로 서(胥), 일(힘쓰다) 사(事), 웃을 소(笑)라는 한자를 사용해서 ‘해 반짝 뜰 날 우리 함께 모여 웃자’라는 의미를 담았어요. 

 

우리가 사는 지역의 언어를 상품화하다 보니 ‘여기서 꼭 사라’라는 재미있는 브랜드 네임을 만들어 보고자 했어요. ‘역서사소’를 접하는 많은 분들이 ’재밌다’, ‘좋다’, ‘이게 뭐야’ 등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데, 재미있는 말속에 깊은 뜻이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어요. 

 

역서사소의 베스트셀러 사투리달력. 해당 월의 사투리를 달력 하단에 소개하고 있다. 

 

탁상용 달력에는 외출중, 출장중, 식사중, 휴가중 상태가 전라도 사투리로 재미있게 표현돼 있다. (사진출처: www.buyhere2015.kr)

 

사투리달력 뒷면에는 일러스트를 넣어 다양하게 할용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출처: www.instagram.com/buy.here2015)

 

 

가장 인기가 많은 제품은 무엇인가요?
‘사투리달력’과 ‘사투리고백엽서’예요. 사투리달력은 심플하지만 매달 느끼는 감정을 전라도 사투리와 절묘하게 매치시킨 제품이에요. 해당 월의 사투리를 달력 하단에 소개하고 있어 소비자들은 새로운 사투리의 의미를 알게 되죠. 처음에는 ‘무슨 뜻이지?’ 하시다가 아래쪽에 나와있는 설명을 보시고는 많은 분들이 웃음을 지으시는데, 그 모습에 저희도 뿌듯함을 느낄 때가 많아요.

 

또,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뒷면에 그래픽 디자인을 넣은 점이나 제본 형식이 기존의 달력들과 달라서 인기가 좋아요. 관공서나 이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 타지 분들께 선물하기 위해 대량으로 구매하시는 경우가 많았는데, 마치 저희가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대표가 된 것 같아 더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어요. 

 

사투리 고백엽서. 사투리로 표현된 고백 문구가 재치를 더한다. 

 

 

사투리 고백엽서는 사투리로 표현한 고백 멘트가 담긴 엽서들인데, 이 엽서들로 위트 있게 고백을 할 수 있어요. 많은 분들이 쑥스럽고 간지러운 고백 문구 대신 이 엽서로 마음을 표현하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사투리일력. 200여 개의 사투리 단어와 뜻이 기록돼 있다. 

 

 

일력은 매일매일 새로운 문구와 사투리 단어를 만나는 재미를 주는데요.
12개월 달력에 소개되는 열두 단어만으로 우리 지역의 말을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좀 더 많은 지역의 말과 의미를 담고자 사투리일력을 제작했어요. 

 

일력에는 약 200여 개 이상의 사투리 단어가 기록돼 있는데요, 알고는 있지만 쉽게 지나치는 단어들과 기억해야 할 날들을 우리 말로 기록했어요. 언어라는 고유문화를 보존하고, 사투리와 의미를 같이 새겨서 알리고자 기록형으로 제작했고요. 우리가 아는 말들 외에도, 생소하지만 새로운 단어를 알아가는 재미를 주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후면은 사전 같은 느낌으로 디자인했어요. 

 

일력과 달력은 사투리의 뜻을 알리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사투리는 사용되는 그 지역의 말인 동시에 그곳의 시간이 만든 문화라고 생각을 해요. 단어의 뜻을 알리면서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문화를 함께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를 위한 작업 과정에서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다 사투리 아니겠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우리 지역의 말과 옛말에는 외래어가 변형되거나 섞인 부분들도 많았다는 걸 알게 됐고, 이러한 부분을 우리 지역의 바른 말로 바꾸고, 표기법이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에 오랜 시간을 들였어요. 

 

이는 곧, 사투리를 쓰면 촌스럽다는 부정적인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하고, 사투리가 사라져 가는 우리말의 일부이자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지역의 말이며 언어문화임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 생각해요.

 

전라도 지역의 사투리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사투리도 등장하는 것 같은데요.
전라도 사투리뿐만 아니라 제주도, 경상도의 사투리 고백엽서도 출시가 됐어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과 더불어 각 지역의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의미를 가진 사투리를 좀 더 공부해서 다양한 언어들로 구사된 제품군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언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컬러와 폰트에 집중해서 디자인한다. 

 

 

디자인에 있어 가장 중점을 두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저희 디자인 콘셉트이자 모티브는 ‘말’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은 화려하고 디자인적 요소가 많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데, 저희는 지역 언어 즉, 사투리를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 언어만을 강조하고, 그 언어를 돋보이게 하고자 컬러와 텍스트(폰트)에만 집중해서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화려함을 보여주기보다는 활자 하나하나가 잘 읽히도록 해서 많은 사람들이 언어에 공감하고, 말의 속뜻과 감성을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저희 역서사소 디자인의 주요 요소라고 생각해요.

 

텍스트로 디자인을 하시는데에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어려운 점을 꼽자면, 우리 지역의 말이긴 하지만 정확하게 전달하면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그래픽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극명한 컬러감이나 말의 감정이 느껴지는 폰트를 고민해 디자인하고, 디자인의 요소가 잘 표현되도록 종이 선정과 인쇄 기법에 있어서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역서사소의 캐릭터 투리투리프렌즈 시리즈. 말을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캐릭터가 등장하는 ‘투리투리프렌즈’도 선보이셨는데요. 
투리투리 시리즈는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라는 속담에 착안해서, 우리의 말을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로 개발하게 됐어요. 우리의 말(마리앙), 이야기를 하는 입(리비), 전달하는 새(피피)와 쥐(마우) 그리고 이를 듣는 귀(이이), 이렇게 총 5마리의 캐릭터가 등장해요. 


캐릭터라고 하면 대부분 동물을 의인화하거나 사람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모습들을 떠올리실 텐데, 저희는 이야기를 하고 전달하는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서 캐릭터를 제작했어요. 

 

지금은 캐릭터의 확장을 위해 각 캐릭터들의 성격에 따른 콘셉트를 구축 중에 있고요, 앞으로 투리투리프렌즈의 활약이 클 것으로 생각돼요. 

 

지금 시점에서 역서사소를 돌아봤을 때 처음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요?
처음에는 다른 지역분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지역의 언어를 알리고자 자주 사용하는 말들로 작업을 했는데, 이젠 재미 위주 보다는 우리 전라도 지역의 깊숙이 남아있는 사투리 부분을 공부하면서 많은 분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언어들로 저희의 말을 알리고자 해요. 

 

역서사소의 매장. 역서사소의 캐릭터 투리투리프렌즈로 외관이 장식돼 있다. 

 

역서사소 매장에서는 사투리를 활용한 역서사소의 다양한 제품들을 만날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지난 5년 동안 역서사소의 사투리 달력을 많은 분들께서 좋아해 주시고, 공감해 주셨는데요, 어떻게 하면 우리 지역 언어를 더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 그에 대한 보답을 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있어요. 

 

그를 위한 첫 번째 작업으로, 2020년도 투리투리프렌즈의 제품개발 확장을 위해 ‘이모티콘’ 출시를 앞두고 있어요. 기본 활자가 아닌 각각의 성격을 가진 캐릭터들이 우리말을 전달하는 스피커로써 활약할 예정이에요. 

 

또, 현재 선보이고 있는 문구 상품들을 외에 다양한 생활용품을 개발해 보고 싶어요. 지역에서 활동하는 제품 디자이너 또는 저희와 취지가 맞는 기업 및 브랜드들과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앞으로도 다양한 우리 지역의 언어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일상 속에 잘 스며들 수 있도록 다양한 제품으로 고객들에게 찾아가고자 해요.

 

요즘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언어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고 해요. 제주도 방언 역시 사라지고 있는 언어 중의 하나인데, 지역 언어 사용은 줄고, 표준어, 외래어 등의 사용이 많아지는 것이 그 이유인 것 같아요. 사전적인 의미로 표준어는 ‘한 나라에서 공용어로 쓰는 규범으로서의 언어’라고 하지만, 그 지역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지역의 표준어’라고 생각해요. 

 

‘세상을 바꾸는 사투리’라는 슬로건으로 역서사소를 시작했는데요, 사투리를 통해 지역의 삶과 역사를 알고 서로를 알면 지역감정도 완화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저 촌스럽기만 한 사투리가 아니라 사투리 또한 우리가 지키고 보존해야 할 우리의 언어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고요. 무엇보다 지금껏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지역을 지켰던 요소들 중 하나, 지역의 역사를 써 내려온 그곳의 언어는 꼭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이 곧 역서사소의 목표이자 계획입니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역서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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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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