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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공항 가는 길

2019-07-03

대부분의 사람은 여행의 설렘을 안고 공항에 간다. 그러나 김신욱에게 ‘공항 가는 길’은 일터와 다름없다. 그는 공항을 오가며 공항 주변의 낯선 모습들을 사진에 기록한다. 공항 내부가 아닌, 주변 풍경을 통해 그가 말하자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Terminal 5〉, 2015, Digital Inkjet Print, 100x130cm

 


〈Myrtle Avenue〉, 2017, Digital Inkjet Print, 80x100cm

 


〈Birdstrike〉, 2017

 


〈Sri Lankan wedding shoot〉, 2017, Digital Inkjet Print, 100x130cm

 

 

실패와 좌절
김신욱 작업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극적’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작업 태도와 형식이 달라지는 변곡점이 여러 번 관찰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몇 가지 작업을 꼽자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풍경을 드러낸 〈The Night Watch〉, 집 앞 정원에 있는 잔디를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옮겨 심은 〈Grass Messenger〉, 재개발로 인해 예전 모습을 잃어가는 돈의문 일대를 기록한 〈Paradise〉 등이 있다. 이와 함께 공항 근처에서 촬영한 사진을 통해 ‘확장과 개발, 중심과 주변의 이분화라는 현대사회의 민낯’을 보여주고자 한 〈Unnamed Land: Air Port City〉도 있다.

 

김신욱을 ‘2017년 KT&G SKOPF 올해의 작가’로 이끌었던 〈Unnamed Land: Air Port City〉를 ‘관조적이고 유형학적 성격이 짙었던 예전 작업’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상황에 깊게 개입하는 스냅 형식의 사진이 등장했고, 개인적인 경험(관심 학문, 취미 등)에 머물러 있던 작업이 사회적인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까지 이르렀단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 모멘텀은 바로 ‘실패와 좌절’이었다. 본디 그는 피사체와 데면데면한 사이를 유지하는 작가였다. 시쳇말로 ‘인싸(무리에 잘 섞여 노는 사람)’ 체질이 아닌지라 피상적인 현상에만 집착했다. 게다가 촬영도 인적이 드문 밤거리에서 진행했다(공항 작업의 모태라 할 수 있는 〈Night Spotting〉이 그렇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벽에 가로막힌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미지가 미흡해 보였고, 원하는 작업 맥락이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좌절감도 컸다. 그에게 작업이란 세상을 배워나가는 ‘수행’과 같은데, 작업이 자신을 옭아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김신욱은 승부수를 던졌다. ‘적당한 거리두기 기술’과 작정하고 거리를 두기로 한 것.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낮에 사진을 찍어보았고, 모르는 사람에게 말도 걸어보았다. 이를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지금의 ‘공항’ 작업이다.

 

이방인 그리고 비장소
공항과 공항 주변의 경계는 뚜렷하면서 동시에 모호하다. 공항 내부가 긴장과 설렘,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지만 영속되지 않는 공간이라면, 공항 주변은 최첨단 기술과는 대비되는 평범한 일상(혹은 과거에 멈춰있는 듯한 풍경)이 연속되는 공간이다. 흥미롭게도 최근 극명한 온도 차를 보이는 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공항 확장 사업으로 인해 주변 지역이 기술과 자본에 잠식된 탓이다. 분명 다른 공간인데, 한쪽으로 흡수 통일되는 것 같다. 아마 ‘비대칭적인 권력관계’에서 기인하는 현상일 테다.

 

각설하고, 공항 주변의 삶을 기록한 〈Unnamed Land: Air Port City〉는 우연히 시작된 작업이다. 현재 런던에 거주 중인 김신욱은 ‘공항 픽업 서비스’ 일을 하고 있다. 공항과 관련된 모든 것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러나 사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항의 모습이 아니다. 그가 수천 번 공항을 오가며 느낀 것은 ‘이질감’인 듯하다. 공항의 화려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새겨놓고 그의 작업 - 스리랑카 부부의 웨딩사진 촬영, 개발사업에 반대하는 포스터, 주택가 위를 가깝게 날고 있는 비행기 - 을 보면 더욱 극명해진다. 더욱이 공항은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도시 외곽지역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공항 주변 지역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공항이라는 메가 프로젝트가 지역의 정체성을 지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런던에서 김신욱은 이방인이다. 소외감과 혼란스러움은 당연하고 일상적인 감정이다. 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내가 있는 장소가 달라졌다고 이러한 감정의 층위를 넘나드는 것일까. 김신욱의 전체 작업을 훑어보았다면, 공통적인 주제가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런던이라는 장소에서 경험한 개인적인 것들이 마크 오제(Marc Augé)가 말한 ‘비장소(실제 거주하는 곳이 아닌, 잠시 거쳐 지나가는 장소로 관계성, 역사성이 없다)’라는 사회적 개념으로 확장되는 모양새다. 아쉬운 점은, 지난 전시에서 내세운 ‘비장소’와 ‘이분화’라는 담론이 작업에서 쉬이 읽히질 않는다는 것. 특히, ‘히드로공항’ 사진이 그렇다. 공항 주변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순간의 감정과 시선에 따라 파편적으로 담아냈다는 느낌이 강하다. 작가는 다양한 현상을 이미지로 보여줄 뿐, 해석은 비평가와 보는 이에게 맡긴다는 전략인 듯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신작인 ‘인천공항’ 사진은 이러한 흐름과 궤를 달리한다. 개발로 인한 환경문제와 역사성 상실을 표면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다소 모호한 태도를 보이던 ‘히드로공항’ 작업과는 다른 결이다. 지금으로서는 그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또 다른 승부수 중 하나일 것이라는 긍정적인 추측을 해 본다. 다만, 시리즈 간의 이질감이 계속되면 ‘비장소’를 이야기하는 전체 작업의 성격 역시 ‘비장소’적이 될 것 같다는 점은 우려가 된다. 앞으로 새로운 공항에서 작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하니, 이 지점에서 이미지 사이의 부착력과 응집력을 짚고 넘어가는 것은 어떨까 싶다.

 

김신욱 공항이라는 장소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 주변 공간과 상황을 통하여 역설적으로 공항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장소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한다. 그동안 ‘장소’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두고 작업을 해왔다. 계원예술대학 사진예술과를 졸업한 뒤 영국 Goldsmiths에서 Fine Art 학사 과정을, RCA에서 Art Photography 석사 과정을 마쳤다. www.shinwookkim.com

 

에디터_ 박이현 
디자인_ 서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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