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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아름다움 너머 가슴 아린 슬픔

2019-02-21

아름다운 듯 슬프다. 익숙하기만 했던 산과 바다, 하늘과 땅의 모습이 이렇게 가슴 저리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크리스 조던(Chris Jordan)의 작품에는 이토록 아름답지만 슬픈 자연이 담겨있다. 바로 눈앞에 펼쳐진 듯 생생한 숲의 모습, 충격적일 만큼 슬픈 새의 죽음, 신용카드, 잡지, 플라스틱 숟가락 등 수많은 이미지를 붙여 만든 우주,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에는 알면 알수록 더욱 놀라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크리스 조던이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변호사로 활동하다 사진작가의 길을 택한 미국의 사진작가 크리스 조던은 사진, 개념미술, 영화, 비디오아트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현대 세계의 주요 담론을 다루어왔다. 보이지 않았던 문제들을 시각화해온 그는, 특히 환경과 기후 문제를 주제로 아름다움과 그 이면의 불편한 진실을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전하고 있다.

 

2월 22일부터 5월 5일까지 성곡미술관에서 ‘크리스 조던 : 아름다움 너머(Chris Jordan : Intolerable Beauty)’가 열린다. 크리스 조던의 국내 최초 대규모 개인전으로, 아름다워 보이지만 슬픈 현실을 담고 있는 사진, 영상, 영화 등 65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백열전구들(Light Bulbs)〉, 100x133cm, Archival Pigment Print_PLEXIGLAS. XT (UV100), 2008 ⓒ Chris Jordan.

아름답고 신비로운 우주처럼 보이는 이 사진은 비효율적인 전기 사용으로 매 분마다 미국에서 낭비되는 전기의 킬로와트 수와 동일한 320,000개의 백열전구로 만든 이미지다.

 

 

전시는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섹션 ‘떠나온 곳은 다르나 우리는 하나’에서는 현대판 티탄족의 위기를 그린 작가의 대표작 등, 이번 전시의 주제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20세기 환경학의 최고의 고전인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모티브로 레베카 클락과 공동 작업한 〈침묵의 봄(Silent Spring)〉을 비롯해 아름다운 장미창을 형상화한 〈만다라〉 영상은 인류는 그물망처럼 연결돼, 떠나온 곳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임을 가시화한다. 

 

〈슈마바 숲(Sumava)〉, 140x233cm, Archival Pigment Print, 2018 ⓒ Chris Jordan

 


〈슈퍼마켓 종이가방들(Supermarket Bags)〉, 140x186cm, Archival Pigment Print, 2007 ⓒ Chris Jordan

매시간 미국에서 사용되는 갈색 종이 슈퍼마켓 백 114만 개로 이뤄졌다. 

 

 

두 번째 섹션 ‘멀고 가까운 숲’에서는 슈마바(sumava) 숲의 모습이 펼쳐진다. 작가는 숲을 실제처럼 재현하기 위해 카메라의 성능을 최고조로 끌어올려 촬영했고, 이 작품들은 깊은 숲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주며,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룬 모습을 통해 생태계의 경이로운 질서를 보여준다. 톱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산, 대나무 숲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종이 백인 작품은 인간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숲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미드웨이 시리즈 중에서(Midway: Message from the Gyre)〉, 64x76cm, Archival Pigment Print_PLEXIGLAS. XT (UV100), 2009~ ⓒ Chris Jordan 
인위적인 연출 없이 촬영된 사진이다. 새의 배속이 플라스틱으로 가득 찼다.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들은 많았지만, 이렇게 가슴을 아리게 했던 작품은 없었다.

 

 

세 번째 섹션 ‘바다로부터 온 편지’는 태평양의 아름다운 섬 ‘미드웨이(Midway)’에서 바다에 살고있는 생명체들의 슬픔 가득한 이야기를 전한다. 사진 속 새의 배엔 일부러 배열해 놓은 듯 색색의 플라스틱 조각들과 비닐끈이 자리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새의 어느 부분 하나에도 손대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를 촬영한 사진이다. 날지 못하고 모래사장에서 생을 다할 수밖에 없는 참혹한 알바트로스의 모습에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비너스(Venus)〉, 140x242cm, Archival Pigment Print_PLEXIGLAS. XT (UV100), 2011 ⓒ Chris Jordan

 

 

네 번째 섹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는 눈에 보이는 형상 너머 보이지 않았던 불편한 진실을 전한다. 전시장에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등 우리에게 친숙한 명화 장면도 등장한다. 2006년부터 제작하고 있는 ‘숫자를 따라서(Running the Numbers)’ 시리즈로, 멀리서 보는 것과 전혀 다른 수천, 수만 개의 작은 이미지를 하나하나 조합해 만든 작품들이다. 〈비너스(Venus)〉는 10초마다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비닐봉지 240,000개로 제작된 것으로, 비너스가 흘리고 있는 눈물 역시 비닐봉지로 이루어져 있다. 

 


〈핸드폰(Cell Phones #2)〉, Atlanta, 90x183cm, Archival Pigment Print, 2005 ⓒ Chris Jordan

 

 

다섯 번째 섹션 ‘견딜 수 없는 아름다움’에서는 ‘견딜 수 없는 아름다움(Intolerable Beauty)’ 시리즈를 통해 아름답지만 견딜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담아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검은 덩어리, 사각 박스들, 하얀 평면 등은 산업폐기물로, 작품들은 모노크롬 회화 같아 보이기도 한다. ‘아름다운 것’과 ‘견딜 수 없는 것’을 양립해 추상을 만든 작가는 작품을 통해 아름다움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단순하고 명백한 메시지를 전한다. 

 

〈알바트로스의 꿈(Albatross’s Dream)〉, CF13089, Archival Pigment Print_PLEXIGLAS. XT (UV100), 56x67cm 2012 ⓒ Chris Jordan

 

 

마지막 여섯 번째 섹션 ‘알바트로스의 꿈’에서는 작가가 8년 여간 미드웨이 섬을 오가며 작업한 알바트로스 영화와 사진 작품들이 전시된다. 크리스 조던이 알바트로스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전 과정을 살피며 8년에 걸쳐 완성한 영화 〈알바트로스(Albatross)〉는 알바트로스의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현실을 시처럼 기록한 것으로, 해양 오염으로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먹이로 착각해 먹고,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알바트로스에 대한 작가의 애도의 작업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사진을 통해 이미지 너머의 실상을 보여주는 크리스 조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인류가 직면한 이 크나큰 문제에 대해 묵직하고 울림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깨닫고 노력하기엔 너무 늦은 이유, 반드시 변화해야만 하는 그 이유를 말이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성곡미술관(www.sungkok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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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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