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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현 정
미술

무료

마감

2009-10-07 ~ 2009-10-13


전시행사 홈페이지
www.mokinmuseum.com/


박현정 개인전



전시기간 : 2009.10.07 (수) ~ 2009.10.13 (화)

입장료/관람료 : 무료

관람가능시간 및 휴관일 : 오전 10시 ~ 오후 7시

전시장 홈페이지 주소 : http://www.mokinmuseum.com/




박현정-꽃을 바치다


박영택(경기대학교교수,미술평론가)


꽃은 의식이고 예배이자 축원이며 기원이자 소망과 주술로 가득하다. 옛사람들은 죽은 이를 위해 꽃/종이꽃을 바쳤고 산 자들의 생의 기념과 장수를 축원하는 자리, 집안의 경사에 들이는 밥상에도 꽃을 꽂고 그 밥상을 받는 모든 이들의 머리에도 꽃을 꽂았다. 일찍이 신라의 화랑이나 원화 모두 꽃관을 썼고 농악대도 꽃관을 두르고 과거에 급제해도 어사화를 꽂았다. 죽음을 의식했고 따라서 매장풍습을 했던 네안데르탈인의 무덤가에도 꽃을 뿌린 그 아득한 흔적이 남겨져있다고 한다. 그러니 꽃이 인간의 삶에서 기호적 역할을 한 것은 너무도 오래된 일이다. 우리 선조들은 꽃을 ‘밝다’ 라고 말한다. 꽃에서 우주의 조화로움과 평화로움, 완벽함을 떠올렸던 것이다. 알다시피 꽃은 원추로부터 시작되어 스스로 한 바퀴 원을 그음으로써 한 개의 아름다운, 완벽한 형상/ 꽃을 만들어낸다. 꽃의 향기는 그 꽃잎들이 한바퀴 원을 그리게 될 때 비로소 풍겨나오는 것이다. 수직이나 수평운동과 달리 이 원은 순환과 완벽함을 스스로 증거한다. 그러니 꽃의 이치를 헤아린다는 것은 결국 우주 만물의 이치와 조화를 깨닫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에게 꽃은 일종의 종교이자 상징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같은 꽃을 누군가에게 바친다는 것은 멋있고 아름다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꽃상여를 장식한 아름다운, 서글픈 꽃을 잊지 못하고 굿판이나 모란꽃 가득한 민화를 잊지 못한다. 베겟모에 촘촘히 자수된 꽃 역시 그렇다. 그 꽃들은 한결 같이 남루하고 슬픈 생애의 아픔을 이기고자 하는 바램을 기원하며 축원한다. 인간적인 생의 본능을 간절히 기원하는욕망이 꽃으로 표현되었고 그 꽃에 모든 것을 걸었던 애절함이 그토록 화려하게 피었다.


오랜 만에 접하는 박현정의 그림에는 꽃이 가득하다. 가위로 오려낸 종이 꽃들이 화면에 붙여졌다. 가위나 조각칼을 사용하여 한지를 오려 붙여 완성한 전통적인 전지공예를 연상시킨다. 채색과 먹의 농담과 붓의 지나간 자취를 부분적으로,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종이의 편린, 조각조각들이 오려지고 잘려져서 화면에 올라왔다. 그 조각들이 사람의 형상과 나무와 새, 적조한 풍경을 안긴다. 산과 나무, 사람과 새, 꽃과 풀의 형상을 지닌 것들이 광막해 보이는 배경을 뒤로하고 호젓하고 고요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기와 수공예가 구분없이 섞여있고 앞, 뒤로 칠해지고 붓이 지나간 흔적과 손톱이나 또 다른 도구가 여러 효과를 자아내면서 겹성의 소리를 낸다. 발화한다. 그것은 종이로 이루어진 회화, 콜라주이자 종이조각이고 종이로 구성된 저부조다. 납작한 종이의 표면 위로 슬쩍 융기되어 부푼 부위(칼로 이루어진 윤곽선)는 평면 회화 안에서 입체적으로 돌올하다. 모필의 부드럽고 유연한 맛에 반해 이 칼 맛은 단호하고 힘이 있다. 판각에서 접하는 칼의 기운이나 목판의 기세가 느껴진다. 한결같이 기(氣)가 느껴진다고 할까. 촉각적이면서 붓으로는 낼 수 없는 선의 효과, 맛이 먹의 번짐과 함께 뒤섞여 흐른다. 우리 전통미술에 대한 익숙한 체험과 안목, 두툼한 체득과 이해가 이 같은 효과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바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림에 대한 인상은 무척 쓸쓸하고 호젓하다는 것이다. 조금은 익숙한 풍경이지만 빈 나뭇가지, 산과 언덕, 날아다니는 새, 호젓하게 소요하는 듯한 한 사람의 모습이다. 광막하고 황량한 풍경 속에 누군가가 등을 보이고 걸어가거나 서있다. 부유한다. 그 위로 새들이 덧없이 날고 바람이 거칠고 홀연 해가 지는 듯 하다. 산수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산수화를 보면 더없이 외롭다. 그림 보는 이에게, 세속에 사는 우리에게 등을 보이고 산을 향해 걸어가는 한 남자의 뒷모습은 현실계와 단호한 이별을 통해 자기 세계로 가고자 하는 이의 구원같은 길을, 그 여정을 보여준다. 산 속의 누군가를 찾아거거나 그 산에 핀 매화나 난을 향해 혹은 산 그 자체의 품으로 돌진하는 기운과 생의 의미가 서늘하게 감촉된다. 속세와의 인연을 과감히 끊어내고 사라지는 이의 뒷모습은 깨달음을 찾고자 하는 이들의, 공부하는 모든 이들의 모습이다. 생각해보면 죽은 이들 역시 그러한 모습을 잔상처럼 안기고 흩어진다. 죽은 이들은 결국 산에 묻힌다. 하늘에 보다 가까이 가 닿은 산 속에 은거하고 휴지하는 것이다. 산 자들은 산을 찾아 죽은 이를 추모하고 그에게 꽃을 바치고 그 같은 의식을 통해 순간 죽은 이와 연동된다. 죽은 이는 산 자의 기억 속에서 부유한다.


작가는 몇 해전 부친의 사망,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길을 추모하며 화선지를 한 장 한장 오리고 붙이면서 꽃을, 그림을 만들었다. 비로소 그림들이 한결같이 쓸쓸함, 모조의 슬픔 같은 것들을 안기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작가는 새의 형상을 재현해 인간 삶의 찰나적인 순간을 보여주고자 했으며 나이테를 품고 있는 나무의 형상을 통해서는 인간 삶이 남긴 길고 질긴 자취를 표현하고자 했다. 종이를 오려 꽃을 헌사하고 추억을 기술하고 죽음으로 인한 여러 상념을 도상화하는 일이다. 아울러 그 행위는 아버지의 저승길에 꽃을 뿌려드리며 그 이별을 고하는 의식과도 같은 행위인 셈이다. 개인적인 슬픔과 상실을 위안하고 치유하는 행위이자 기억을 통해 죽은 이의 망실을 지연시키는 일이다. 또한 죽음을 관망하면서 보편적 인간 삶의 한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종이를 오려내고 잘라내는 일은 덜어내고 지우면서 표현하는 일이다. 공들여 오리고 정성껏 자르는 행위는 시간을 견디고 상처를 봉합하는 일이다. 온 마음을 다 바치는 의식이다. 작가는 무의식적으로 꽃을 오려낸다. 종이의 편린들을 가지고 조각조각 이어서 어떤 장면을 안긴다. 연결해나간다. 그것은 다분히 치유적이다. 납작한 종이의 표면에 오려낸 조각들이 올라와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 주는 단어, 음성, 발화의 매개들이 되었다. 그로인해 다양한 마음과 몸짓이 외화된다. 이렇듯 작가에게 그림 그리기는 자신의 내면을 호명해 그것들에게 하나의 몸을 성형해주는 일이다. 손의 수고로운 노동과 지극한 시간의 견딤을 통해 비로소 가능한 어떤 경지가 어른거린다.


1. 박현정_사라짐_장지에 먹, 주묵_150 X 140cm_20092.





2. 박현정_거울_장지에 먹, 수간채색_140 X 70cm_20093.





3. 박현정_잠_장지에 먹, 오일파스_140 X 70cm_20094.





4. 박현정_할아버지_장지에 먹, 주묵_71 X 38cm_20095.





5. 박현정_해질녁_장지에 먹, 주묵_150 X 70cm_20096.






6. 박현정_꽃을 바치다_장지에 먹, 아크릴릭_90 X 120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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