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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아 가 며’-주찬석 회화展
미술

문의요망

마감

2007-09-04 ~ 2007-09-11


낯설게 하기-제유적 데페이즈망 ● 주찬석의 이번 전시 타이틀 '살아가며'의 연작들에는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의 만남이 교차한다. 달리 말하면, 그의 작업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나게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찬석은 일상의 익숙한 이미지들을 '낯설게 하기'(verfremdung) 전략을 통해 작품 안에 자리 잡게 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심리적인 거리감을 갖게 만든다.




주찬석_살아가며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91×117cm_2007


원래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가 쉬클로프스키의 문학 형식 구성(plot) 이론으로부터 유래한 용어인 '낯설게 하기'는 예술의 장에서 브레이트 식의 '소격효과(alienation effect)'를 창출한다. 즉, 예술 수용자들로 하여금 예술에 대한 시각적, 청각적, 심리적인 상태의 즉각적인 몰입을 방해하고 사유의 과정을 잠입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낯설게 하기는 미술의 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라서 모더니즘 시기의 초현실주의 미술에서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을 통해 유행되었다. 초현실주의 시인 로트레아몽이 노래했던 '해부대 위에서 벌어지는 재봉틀과 우산의 기이한 만남'과 같은 '사물들의 낯선 만남'을 주도하면서 소격효과를 창출해 온 것이다. 마그리트 회화에서 익히 보아온 이러한 데페이즈망 기법은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낯설게 하기'를 성취시키는 조형태도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주찬석_살아가며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91×117cm_2007


주찬석의 회화에서, 낯설게 하기의 전략은 이러한 데페이즈망 기법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전치(轉置)'로 번역 가능한 데페이즈망이란 용어는 원래 '환경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어떤 사물을 일상의 환경으로부터 새로운 환경으로 전치시켜 사물 고유의 성격을 벗어나면서 성취시키는 만남의 현상학'이라 정의할 만하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기계부속과 꽃, 달팽이와 나뭇잎, 개구리와 바다와 같은 형식으로 개별 이미지들이 각자 다른 환경들로부터 와서 하나의 화면 안에서 만나고 있다. ● 그것은 사물의 부분이 그 사물 전체를 가리키는 제유(提喩)적 전략으로 주찬석의 개별 이미지들은 그것의 대표성으로 확장되는 제유적 상징이 된다. 그러니까 주찬석 작품에서, 기계부속과 꽃은 문명과 자연으로, 달팽이와 나뭇잎은 동물과 식물로, 개구리와 바다는 생명체와 환경으로 확장되는 제유적 상징체이자 제유적 데페이즈망인 것이다. 한편, 실물의 크기를 확대와 축소의 방식으로 변조하는 태도도 낯설게 하기의 전략을 강화시켜낸다. 이를 통해 관객은 익숙한 이미지들을 즉각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이들의 낯선 연결고리와 그 의미를 사유하게 되는 것이다.




주찬석_살아가며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50×200cm_2007


주찬석의 회화에서 '낯설게 하기'의 전략으로 실현된 데페이즈망 기법은 실상 1회 개인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틀, 호수, 붓, 폴리코트로 만든 마스크 등 '발견된 오브제(objets trouves)'를 작품 안에서 '만들어진 오브제(objets crees)'로 치환시켜 오브제의 원래적인 속성을 변모시키면서 데페이즈망을 실현한 것이다. 회화에서 데페이즈망을 통한 낯설게 하기 전략은 사물 고유의 상투적 이미지를 전복시켜 또 다른 의미들로 되살려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오브제와 페인팅이 만나는 주찬석의 리얼리즘적 화풍에서는 그것이 더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어 보인다. ● 가두기와 열기-다중 프레임 이번에 출품하는 작품들은 이전의 오브제가 탈각되고 이미지들이 전면에 나서는 까닭에 프레임 안을 더더욱 주목하게 만든다. 회화에 있어 프레임은 출발과 종결의 지점이다. 재현의 대상을 사각형으로 된 시선의 틀 속에 가두는 시작이자 조형과 표현의 제스처를 액자의 양식으로 마무리하는 지점이다. 그러니까 프레임은 근본적으로 그 내부로 무엇인가 묶어두려고 하는 '가두기'의 역할을 수행하는 회화적 장치이다.




주찬석_살아가며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00×73cm_2007


그런데 우리는 주찬석의 회화가 이중, 삼중의 프레임으로 구성되어 있는 까닭으로, '가두기'라는 기본적인 역할을 넘어 '열기'의 역할마저 실행하는 새로운 지점을 흥미롭게 관찰하게 된다. 주찬석은 회화, 사진, 창틀의 프레임 형식을 다층적으로 적용한다. 그는 일차적으로 미적 대상을 화면 안에 가두는 회화적 프레임을 작동시킨다. 때로는 여기에 풍경이나 사물을 찰칵하는 셔터의 움직임과 함께 찰나에 가두고 마는 사진적 프레임을 부가시키기도 한다. 현상된 사진에서 발견하게 되는 인화지의 하얀 여백을 의도적으로 그려 넣는 것이 그것이다. 게다가 작가는 사진적 프레임을 다시 액자 형식의 창틀 이미지로 둘러싸서 프레임을 중층화시켜 내기도 한다.




주찬석_살아가며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91×72.8cm_2007


반대로, 사각형 프레임이 중첩되는 내부로 마치 화면을 파먹은 듯 동그랗게 열리는 비사각형의 변형 프레임은 프레임 내부에 형성되는 또 다른 프레임이 된다. 그러니까 주찬석의 회화는 다중 프레임으로 '가두기의 장치'가 중층화되어 있는 것이다. ● 그런데 다중 프레임안의 이미지들이 어떻게 '열기'를 실현시킬까? 일견, 주찬석의 이러한 복층의 프레임은 만화에서 보듯이 프레임과 프레임이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단절된 이미지들을 내러티브 구조로 연결시키는 '연속적 기능(sequential function)' 을 감당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주찬석의 다중 프레임이 만화의 다중 프레임과 다른 지점은 개별 프레임의 이미지들이 서로 상충, 대비되거나 비연계적, 비연속적이라는 데 있다. 따라서 개별 프레임의 이미지들은 익숙하지만 비연속적인 개별 프레임 속 이미지들의 만남은 '낯설게 하기'를 촉발시킬 따름이다. ● 그렇다면 비연계적, 비연속적 상태로 가두어진 개별 프레임들의 '열기'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주로 '끈'과 같은 매개체 이미지가 등장함으로써 가능해지거나 이미지들이 프레임의 경계 위로 걸터앉으면서 촉발되어진다. 실제 그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끈'의 형상이 프레임 밖으로 넘어 들어와 프레임 안과 밖을, 또는 하나의 프레임과 또 다른 프레임 사이를 연계하려는 소통의 제스처를 보여준다. 한편, 돼지나 개구리와 같은 이미지들이 프레임의 경계 위에 걸터앉게 되면서 프레임 내부와 외부의 소통을 도모하기도 한다.




주찬석_살아가며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53×45.5cm_2007


살아가며 - 이미지의 알레고리와 삶의 리얼리티 그의 회화에서, 여러 패널들이 복잡하게 연결된 쉐이프트 캔버스(shaped canvas) 형식이나 복층적으로 구성된 다중 프레임의 장치는 우리들 일상의 복잡다단한 관계지형을 알레고리화한다. 개별 프레임은 나와 너, 주체와 타자, 인간과 환경, 인간과 문명 등 하나의 그룹과 또 하나의 그룹으로 경계를 짓는 '가두기의 장치'이자 상호간 '만남의 주체'들로서 알레고리화된다. '알레고리(allegory)'란 추상적인 개념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다른 구체적 대상으로 표현하는 우의(寓意)의 방식이듯이, 그의 개별 프레임의 이미지나 그것들의 낯선 만남은 우리의 일상과 삶에 대한 훌륭한 알레고리이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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